2009년 1월 13일 화요일

왜 지금 미네르바를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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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꼬아 보는 것인가?


다시 가로등이 켜졌다. 물기가 서린 창문이다. 바깥이 춥긴 추운가 보다. 손바닥으로 휘이 창에 낀 성에를 지운다. 가로등 유리도 좀 추운가 보다.

이제사 MBC 9시 뉴스를 챙겨봤다. 두 가지 고민이 읽혀진다. 소위 <검찰 미네르바>인 구속된 양반과 진위여부의 실체를 다루는 사이에서 있는 하나의 고민, 그리고 이 구속행위가 집행된 위법성의 조작여부에 대한 무리수를 지적하는 것이다. 후자는 당연히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지금 7.30, 12.29자 이진법의 표현이 직간접으로 재정부에 의해 뒤집혀지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다르게 게재된 글의 사실성 여부, 그러니까 유언비어가 아니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재정부의 의견만 보면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고, 이제 20억불 추가손실이라는 것도 증명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그러니 두 가지가 다시 비난 받는다. 사이버의 표현자유에 대하여, 그리고 무리한 견강부회의 법적용과 그러한 꺼리 찾기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어찌 되었건 <상징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위의 모든 일들에 상징성이 부여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할 <팩트>가 존재한다. <검찰 미네르바>로 불리는 사람이 신동아에 원고를 쓴 적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기자님들이 조사해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건 논리적 모순에 바로 빠지게 된다는 걸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MBC뉴스에서 찾지 못한 숨은그림찾기를 한 번 해본다.

12.29의 글 가운데는 이런 한 토막이 존재한다.

"하지 마라니까 내부 참고용으로 만들어논 걸 잡지사에 가져다가 팔아먹는 놈이 있지 않나. 들 쑤는 놈이 있지 않나. 에이고"

아마 <-폐업-> 이렇게 붉은 글씨로 크게 했던 그 대목의 어느 단락이었던 듯 하다. 구속의 사유가 된 글과 함께 일련으로 쭉 이어진 내용이다. 이건 어떻게 해석되나? <검찰 미네르바>(편의상 계속 이렇게 표현한다)는 12.29의 글은 자신의 글이라고 했다. 이 글도 그 사람이 쓴 글이다. 그럼 해석은?

1. 내부 참고용이 있다. (단수가 아닌 복수의 집단이 존재한다?)
2. 잡자시에 팔아먹은 놈이 있다. (그는 알고 있다. 누구인지?)
3. 들 쑤는 놈이 있다.(혹은 있었다) (그는 알고 있다. 누구인지?)

이렇게 논리구성이 되는 것이다. 그가 쓴 글이므로. 그런데 자기가 쓴 글이 아니다. 자기는 모른다고 해버렸다. 이상한 논리적 모순이 자리잡게 되는 셈이다. 혹자는 초기에는 이렇게 말했다고도 한다. (나는 확인해보질 않았다.) 이를테면 기자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밀치고 이야기 듣는 과정에서 들은 말일는지도 모르겠다. "제안이 왔는데 자기는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최종적으로 다 바뀌었다. 난 모른다는 것으로.

이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논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숨은그림을 찾을려고 해도 하나씩 빼고 보태고 해보는 과정이 존재한다. 그게 분석이니까.

지금 이 사안 자체가 1) 표현자유, 2) 무리한 위법성 조각에 대한 논란, 3) 사회 내부의 갈등, 4) '그'에 대한 진위여부, 5) 왜 이렇게 하는가에 대한 이유 모색이라는 다섯 가지의 진행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유의를 해야 한다. 5 가지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건 틀림이 없다.

나는 사실 이 문제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마냥 국회사태 이후, 그리고 한일정상회담 이전의 시간대에 딱 맞물린 것이 찜찜하다. 아무리 새해를 시작하는 때라고는 하지만, 일이 벌어져도 너무 한꺼번에 많이 벌어져서 드럼통에 이것 저것 다 때려넣고 휘이 저어버리니 뭐가 중요한 것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가 되는 국면이다. 매일 사건에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니 정신이 없다. 가라앉기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하나 하나 정리할 건 정리하는 정신머리가 참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로등 불빛 한 번 구경해야겠다.


아고라 / 담담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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