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3일 금요일

용산 참사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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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와 이은재의 무식한 솔직함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가지고 정리해 보지요.

첫째, 경찰특공대 투입은 철거민들의 시위가 과격해지기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점. 따라서 철거민들의 시위가 격렬해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특공대를 투입해야 했다는 경찰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둘째, 경찰이 이미 현장에 다량의 시너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특공대 투입을 강행했다는 것. 현장에 허연 통이 있지만 그게 시너인지 몰랐다는 경찰의 발표 역시 그들이 작성한 문서를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세째, 특공대 투입은 김석기 총장의 지시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신은 '보고'만 받았다는 김석기 청장의 변명은 그 자신의 서명이 적힌 문서를 통해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왜 경찰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경찰 자신이 자신들의 잘못을 잘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통해 제기되는 책임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화재의 위험이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특공대를 투입하여 여섯 명이 사망하는 참극을 빚은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혹은--아무리 작게 잡아도--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합니다.
만약에 김석기 서울청장이 촛불시민이었다면, 저렇게 나다니지 못할 겁니다. 미네르바에 적용하던 검찰의 서슬퍼런 잣대의 10분의 1만큼만 적용해도, 김석기 청장은 벌써 긴급 체포되어 곧바로 구속영장을 받았겠지요.
이것은 그저 옷을 벗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넘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MB 경찰의 인명경시 철학입니다.
먼저,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기본적 의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철거민들의 과격농성과 전철연의 배후조종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댑니다. 한 마디로 참극의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돌려 물타기를 하려는 거죠.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결국 철거민이 과격농성을 하면 이번과 동일하게 대응하여 이번과 동일한 참극을 연출하는 것을 앞으로 마다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되지요.
또 농성의 주체 중에 전철연 회원이 있다면, 역시 이번과 똑같이 대응하여 이번과 똑같은 참극을 연출하기를 계속하겠다는 얘기죠.
이건 뭐, 생명을 바라보는 나치 수준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신지호 의원의 말은 역설적으로 정부여당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경찰특공대의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거민의 농성을 '도심 테러'로 규정합니다.
그런 무모한 병력의 투입을 정당화하려면, 당연히 '철거민 = 테러리스트'라는 등식이 성립해야 합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테러리스트의 인명까지 고려할 의무는 없거든요.
작전 수행 과정에서 테러리스트 다섯 명이 사망한 것은 법적,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거죠.
신지호 의원의 시각으로 볼 때, 이번 작전은 경찰 한 명의 희생으로 테러리스트 다섯 명을 소탕하고, 열댓 명을 체포하는 대한민국 경찰 역사의 빛나는 업적일 겁니다.

그런데 경찰의 인명경시 철학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MB 경찰은 작전에 투입되는 대원들의 생명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전현직 경찰관 모임의 회장이 '김석기 청장이 개인적 출세욕 때문에 부하를 희생시켰다'고 비판했더군요.
경찰특공대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기(共器)가 되어야 하는데, 이들을 김석기씨는 경찰청장 영전 기념으로 정권에 과잉충성을 보여주는 소품으로 활용했다는 거죠.
경찰 특공대는 작전이 무모해 보인다고 투입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명령이 떨어지면 수행할 의무만을 질 뿐이죠.
그 결과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됐습니다. 그는 굳이 안 죽어도 될 죽음을 죽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나요?

물론 특공대원은 작전을 펴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을 했을 때에는 당연히 거기에는 명예와 존경이 따라야 햡니다.
그런데 그 분은 어떻게 희생됐습니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작전을 펴다가 희생된 게 아니라, 국민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모한 작전을 펴다가 희생된 거죠.
희생은 했는데, 그 분의 명예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죽은 다음에 일 계급 특진시키고, 훈장 하나 달랑 안겨주면 끝인가요?
내 아들이, 내 남편이, 내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얘기할 때, 그 희생의 목적이, 그 죽음의 의미가 좀 더 숭고하면 안 되나요?
왜 죄 없는 특공대원들이 경찰 수뇌부의 깨끗하지 못한 욕망과 현명하지 못한 결정의 오명을 함께 뒤집어 써야 하나요?

철거민들은 불에 타서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특공대원도 거기서 희생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 둘이 부딪혀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재개발하면 부자는 대박 나고, 빈자는 쪽박 차고, 지주는 떼 돈 벌고, 세입자는 거리에 나앉는 상황. 개발의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거기서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정의롭게 조정하는 법적, 제도적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경찰특공대에 맡겨 둘 일이 아니죠.
이것이야말로 언론에서 사회적으로 의제화해야 할 일이고, 그것을 받아서 정치인들이 입법이나 행정적 결정으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요? 그들은 지면을 통해 부동산 대박의 꿈을 부추기고, 땅 가진 자들, 지자체의 관료들, 건설업자들의 지저분한 유착을 옹호하는 일만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농성의 폭력성을 강조하며, 경찰과 집권여당의 책임을 물타기하는 데에 여념이 없지요.
이 참극을 보고도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이 사태가 행여 제2의 촛불사태로 번질까', 혹은 '야당에게 여당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것뿐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태가 앞으로도 도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데, 그들의 머릿속에 재개발로 인해 쫒겨나는 세입자의 처지는 아예 들어있지 않지요.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정치적 처지뿐입니다.

한편,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 왔나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 물리적 갈등을 되도록 의회 내에 끌어들여 해결하려고 하기는커녕, 문제를 그대로 방치만 해 왔습니다.
본의 아니게 '법을 준수하느냐', '생존하느냐'의 갈림길에 선다면, 누구라도 생존하는 쪽을 택할 겁니다.
그렇다면 생존권이 법적 테두리 내에서 보장될 수 있게끔 하는 게 정치의 목적이며, 임무겠지요.
그들의 생존권을 법적 테두리 바깥으로 몰아내놓고,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그 놈의 법만 지키라고 강요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 지금 정부여당에서 펼치는 이른바 '떼법' 캠페인의 본질입니다.
정치권, 특히 정부여당이야말로 이번 참극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차라리 착한 한나라당 의원입니다.
이은재 의원이던가요? 이 참극을 바라보며 기껏 한다는 소리가, '떼를 써서 보상비 받으려는 심리가 문제'라나요?
신지호 의원의 망언과 마찬가지로, 이 이상한 의원의 말 속에도 진리는 담겨 있습니다.
즉, 그녀의 망언 속에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나라당 주류의 시각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지요. 그들은 정말로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이 되어 기껏 저런 망언을 늘어놓고 자신이 뭘 했는지조차 모르는 이은재 의원의 가공할 미련함은, 어떻게 보면 진솔함의 미덕일 수도 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만, 할 수 있나요? 원래 대한민국의 현실은 초현실인 것을....

어떻게 이런 참극을 바라보면서 저런 반인간적 망언을 버젓이 늘어놓을 수 있을까?
신지호 의원이나 이은재 의원이나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기준은 만족시켜줄지 모르나, 사회학적 기준에는 크게 미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씩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의 불행이지요.
하여튼 이 두 분은 진지하게 인간학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훌륭한 인류학적 샘플입니다.
두 분을 연구하면, 짐승과 인간을 잇는 진화과정 속의 잃어버린 고리를 규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진보신당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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