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8일 월요일

김인국 신부의 평화방송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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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 신부 "정운찬,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을…"


평화방송 출연 "화염병이 용산 원인" 발언 반박…"유가족들 눈물 닦아 드려야"


2009년 09월 21일 (월) 12:33:34
최훈길 기자 (
chamnamu@mediatoday.co.kr)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가 21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용산 사고는 화염병이 직접 원인" 발언 대해 "따질 건 따지고 달랠 거는 달래야 하는데 이 분이 하는 말씀은 가끔 네비게이션이 바보 같은 소리 할 때 같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김신부는 이날 오전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정 후보자의 '화염병' 발언에 대해 "오늘과 같은 이런 거짓말은 용서가 안 된다"며 "아니 자기가 수사관도 아닌데 어떻게 속 내용을 다 알아서 그런 무서운 말을 확신을 담아서 결정적으로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 김인국 신부.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신부는 "△정말 화염병이 참사의 원인이었다면, 희생자들이 불에 타 죽었어야 하는데 왜 시신이 그렇게 무참히 훼손되었을까. △이빨은 다 부서지고 두개골은 처참하게 함몰이 되고, 불에 타 죽었다는 사람의 손목과 발목은 왜 풀이 잘리듯 그렇게 싹둑 잘렸을까. △검찰은 왜 부검을 한다면서 희생자들의 살점과 내장을 다 드러냈을까. △극한의 망루에서 살아 내려온 사람이 나중에 주검이 되어서 나온 이유는 무얼까"라고 물으며 "하도 이런 일들이 기가 막히니까 유가족들이 시신 사진이라도 공개해서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거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김신부는 "'화염병 투척이 원인일까' 아니면 '과격 진압이 원인일까' 원인이 서로 갈린다. 그러면 어떤 게 진실인지 가려야 한다"며 "이런 결정적인 의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서 '수사 기록은 개인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내놓을 수 없다'는 이런 엉뚱한 소리를 자꾸 늘어놓으시면 큰 죄에 더 무거운 죄를 보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신부는 정 후보자가 검찰 수사 기록 공개를 사실상 거부한 것을 두고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으면 진실이 대번에 가려지고 그렇게 되면 유가족들이 승복을 하든지 명예회복을 요구하든지 해서 장례를 치를 수 있는데 왜 그 손쉬운 해법을 외면하는 건지 묻고 싶다. 총리 후보자 한 번 대답해 보세요"라고 촉구했다.

김신부는 정 후보자의 '가족과 조합간에 당사자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최선'이라는 답변에 대해서도 "일은 정부가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조합이랑 해결하라? 아니 그런 생각이면 왜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망루에 올라간 지 겨우 하루 만에 특공경찰들을 몰고 가서 그런 무서운 짓을 벌여놓고 이제 와서 조합하고 이야기하라고요? 아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고 밝혔다.


김인국 신부는 또 "수사 기록 내 놓으시고, 시비를 가리시고, 그래서 '유가족을 달래든지', '벌 주시든지' 해서 종결을 지어야지 추석이 내일 모레인데 아직까지 이렇게 끌고 있는 게 이게 인륜에 맞는 일입니까"라며 "설령 유가족들의 주장이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무시하시면 그거는 참 잘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인국 신부는 "(용산참사는)정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걸 드러내면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대통령부터 정말로 진심 어린 친서민 행보라면 가셔야 한다. 가셔서 유가족들 눈물 닦아 드리셔야 한다. 안아주셔야 한다. 그리고 시비를 가려보겠다고 하셔야 한다. 혹시 또 정부에 책임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왜 그걸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운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후보자는 용산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살인진압 경찰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국민들께 사죄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매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농성자들이 다량의 시너를 투기한 상태에서 경찰특공대를 향해 투척한 화염병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최초입력 : 2009-09-21 12:33:34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부치지 않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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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지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이슬에 새벽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 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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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1일 일요일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립니다

대통령님 서거 전 유시민 님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립니다

민주공화국 시민 2009/04/20 posted by 유시민


봄비가 내립니다.

농민들이 반기고, 산불 끄느라 고생하는 소방방재청 직원들이 반기고,

물 부족 걱정이 많은 수자원공사 임직원들도 반기고,

농민들을 걱정하는 모든 국민들이 함께 반기는,그야말로 귀하고 고마운 단비입니다.


지난 주말,

봉하마을에 가기로 오래 전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오는 게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거기 나타나서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히고 그 사진이 신문 방송에 나가고

왜 왔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온갖 고약한 소설이 난무하는 것이

저에게 좋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에 못오게 하신 것이겠지요.

저는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문재인 실장님 혼자 변호인으로서 사저를 출입하시는 것을 보면서

친밀한 사람들이 방문하여 인간적인 위로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찾아뵙겠다고 부득부득 우기지는 못했습니다.

산과 들에는 나무와 풀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봄비가 내리는데

제 마음 속에는 가누기 어려운 슬픔의 비가 내립니다.


대검찰청 중수부 밀실에서 진행되는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검찰이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흘려 내보내면

날마다 모든 신문방송이 달려들어 수 천개의 관련기사를 쏟아내는 광경을 본 지가

벌써 2주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적이 아니라 전쟁포로라고 할지라도

적장에 대해서까지 이토록 졸렬한 방법으로 모욕을 줄 수는 없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철저하게 법률적 대응을 하고 계신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그분은 지금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않은 무력한 개인에 불과합니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전직대통령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전직대통령을 전직대통령답게 예우하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여사님, 그리고 다른 가족과 친인척들이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합당한 권리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윤리적인 잘못이 있었다면 그에 따르는 비판을 받아야 하고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역시 그에 따르는 합당한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전직대통령은 법 위에도 법 아래도 있지 않으며,

"법앞에서 평등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진실은 검찰의 불법적 '피의사실 유포'와

일부 언론의 소설 쓰기식 보도의 홍수를 넘어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전임 대통령 모욕주기 공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이 공작의 칼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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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9일 금요일

노무현 대통령님 계시는 하늘에 부쳐

- 봉하마을 게시판



노무현 대통령님 계시는 하늘에 부쳐

한세상 그리울 존경 하올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것에 너무도 비통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납니다. 그래도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올바른 사람 사는 세상의 삶에 가치와 정체성의 정신을 담아 앞으로 살아갈 남은 삶도 잘 살아보려 노력할 것입니다.

존경하올 노무현대통령님 대통령님과의 만남과 추억을 그냥저의 가슴에 묻어두고 싶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대통령님이 계신 하늘에 이 편지를 부치고자 노무현 대통령님과 지난추억을 몇 자 적어 올립니다.

대통령님과 저와의 인연은 대통령님이 인권변호사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저의 기억으로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학생들이 투옥되고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 이후 1981년 부산의 부림 사건으로 무료변론을 맡으시면서 노무현대통령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 저는 부산의 당감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던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지요.

당시의 우리나라 시대상황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암흑의 시대에 노무현대통령님과 당감성당 송기인 신부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뇌하는 삶의 만남에서 저도 그 긴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당감성당은 이 땅의 양심 있는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모여 시국강연회와 노동자들의 노래극 문화공연을 개최하며 한 달에 한번 월례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그 성당의 청년연합회 회장을 하고 있었고 당시의 강사로는 문익환 목사님 기자출신 이부영씨 오원춘 사건에 연류 되었던 전국가톨릭농민회 정호경신부님, 함세웅신부님 가톨릭 노동청년회 황상근신부님등이 초청되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우리가 함께 인식하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내기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의 이런 월례강좌는 늘 긴장되고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 강좌는 얼마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장기집권과 군부독재에 반대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특히 부산의 청년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집회 시위 등으로 감옥으로 유치장으로 붙들려간 이들에게 인권변호사로서 치열하게 활동했던 노무현대통령님 기억이 납니다.

이때 노무현대통령님과 송기인 신부님이 부산지역의 지식인과 청년학생들, 시민들의 민주주의 운동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절감하시고 마침내 1985년 5월3일 마침내 부산 민주시민협의회를 만들었고 이 기간에 노동현장의 노동자들과 청년학생 등의 인권회복을 위하여 부단한 활동을 하셨지요. 특히 1987년 6월 항쟁 때에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대청동가톨릭센터에서 시국토론회와 가두행진을 도모하며 치열한 나날을 함께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확하게 어느 날인지 날짜에 대한 기억은 없으나 이것만은 선명합니다.

하루는 가톨릭센터에서 국제시장으로 맨 앞에서 행진을 주도하시며 농성을 하던 중 경찰의 최루탄이 소나기 내리듯 퍼붓는 아스팔트 도로의 한복판에서 모두 몸을 피해 도망가고 남은 사람 딱 한사람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 다시 대열을 이루기 위하여 노무현대통령님을 뵈오며 가슴시리도록 눈물 나게 했습니다. 우리만 살겠다고 도망치고 대통령님 혼자만 남게 두고 도망간 나는 그날따라 왜 그렇게도 국제시장 사거리가 넓어 보였던지 송구하고 죄송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 홀로 그 자리에서 총알받이하며 앉아 계시던 그분은 이제 어디 계시는지요?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노무현대통령님은 늘 무거운 십자가를 혼자 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상임집행위원장으로 선두대열을 이끌며 그토록 치열했던 6월 항쟁은 끝나고 “나는” “아니” “우리는” 이 땅의 민주진영은 한때 각자의 진로에 대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잠시갈등도 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민주진영의 많은 사람들과 민주시민들의 갈망을 담아 내키지 않은 정치활동에 또 다른 결단을 하셨지요.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정치에 대중이 민중이 가난한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주저하지 않으셨던 노무현 대통령님은 또 그렇게 큰 걸음을 성큼 나서셨지요.

마침내 1988년 노무현대통령님은 정치활동으로 저는 빈곤지역의 빈민 활동가로 자리를 옮겨오면서 자주 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하여 때로는 알음알음으로 전해지는 사람들을 통하여 소식은 늘 듣고 있었지요. 사람 좋아하시고 사람 속에 있는 것 더욱 좋아하셨던 노무현 대통령님!!! 몇 번의 무모한 도전으로 차돌 같은 바윗돌을 깨뜨려 보려 애쓰시는 대통령님을 먼발치에서 늘 한걸음 물러나 뵈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시던 이 땅의 가난한사람 노동자 도시빈민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대통령이라도 된 듯 그리고 우리 편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아니 우리 편이 아니라도 이념이 같지 않아도 한 올바른 인간이면 모두 품어 안 어셨던 노무현대통령님!!!

2002년 대한민국대통령당선 이후 청와대 입성으로 저는 아~이제는 대통령님을 정말 뵐 수 없겠구나. 아니~그전의 노무현 변호사님을 뵐 수 없겠구나 생각했지요. 청와대 입성 후 2004년3월12일 노무현대통령님은 탄핵을 맞았을 때에 저는 실감했지요.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의를 받쳐줄 힘이 빽도 없구나!! 가슴 치며 한탄하고 지내던 어느 날 청와대 노무현대통령님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게 되었지요. 이때에 부민협동지회가 초청을 받았지만 지금 이렇게 어려운 때 대통령님을 뵈러 가야 하느냐 아니면 가서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등 한동안 우리 안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결단은 이렇게 어려운 때 위로를 해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는 희미한 마음을 안고 청와대를 가기를 결정하여 저도 여기에 포함되어 갔습니다. 부산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계신 청와대 가던 날 우리들 부민협동지회 안에 두 가지 고민이 있었지요.


그 하나는 대통령님께 가서 위로만 하자 가장 힘든 시기인듯한데 우리마져 따져 물으면 되겠느냐 또 다른 한쪽은 아니다 그래도 바깥소식을 정확하게 전해드려야 할 것 같다.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우리의 근성이 어디를 가겠습니까. 그래도 몇 가지만이라도 속 시원히 질문해 보자 그렇게 결정하며 우리는 청와대로 대통령님을 만나러 갔지요.

그때가 아마도 2004년 5월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통령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모두 사라 진줄 알았떠이 다~ 살아있었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잠시지만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지요 그리고 대통령님도 우리도 만감이 교차하여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순서에 따라 청와대의 한 참모가 나서 사회를 보는가 싶더니 우리들의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당시질문내용인즉 모두 기억하기는 어려우나 정확하게 기억이 남는 질문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역시 경제문제였습니다. 경제가 왜 이리 어렵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통일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세 번째 질문은 군사문제는요?

그리고 용산기지 문제는 우리누구도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노무현대통령님께서 직접언급하시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용산기지는 미군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영토인것 처럼 살았는데 그냥 맨입에 안 떠난다. 그래도 돈 주고 샀다. 서울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

이어진 대통령님의 설명은 우리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어 졌지요. 경제문제에 대하여 대통령님께서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소득 재분재 정책으로 무조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정정도 개입하여 기업이 더 이상 뇌물이나 리베이트 없이 투명하게 경영하여 노동자들에게 복지와 임금이 되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쉽지는 않다. 중산층과 부유층이 계속 재분배의 원칙에 대하여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그래도 계속 설득해 갈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모두 이것도 급하고 저것도 급하며 재촉 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회의 논의도 있어야하고 때로는 국민의 동의도 얻어야 하고 모든 부분은 순서가 있다.

다음으로 통일문제는 남북한이 계속노력하고 있다. 군사문제는 국가기밀이므로 여러분들께 설명 드릴수가 없다. 군작전권은 몇 년 안에 자주국방체계를 갖추어 우리나라가 군작전통치권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이어지는 대통령님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바깥소식 들려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 걸로 안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이슈화만 하지 말고 대안까지 좀 고민해서 달라는 말씀까지 덧붙이시고 “자 이제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모두 어떻게 살았노” 궁금했다. 그 말씀에 모두 웃었지요! 함께 갔던 부민협동지회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안부를 물어보시며 음식을 차려놓지 말고 드세요 라며 대통령님이 제의를 하시자 모두 또 한바탕 웃었지요!

두루두루 안부를 물어 시고 난 다음 함께 간 회원 한사람이 대통령님 혹시 청와대 계시면서 힘드시면 대통령님이 쓰신 책을 보십시오. 그리고 꼭 성공한 대통령님 되십시오. 라고 하자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는 듯 머뭇거리시던 대통령님은 성공한 대통령되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성공한 대통령 될 수 없을 것 같다. 대통령님의 그 말씀 중에 우리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날 대통령님과 헤어져 청와대를 나오면서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만이라도 우리만이라도 위로만 해 도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정해진 시간은 끝나고 노무현대통령님을 가까이에서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지는데 대통령님은 우리에게 또 한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랑 뒤풀이 가고 싶은데 내가 그럴 수 없는 처지라서 미안하다. 내가 여러분들 뒤풀이 따라가면 비서진도 경호원도 퇴근시간이 늦고 신세지는 것이라 여러분 부디 건강하고 임기마치고 부산가면 편하게 막걸리 한잔하며 못 다한 이야기 그때 실컷 하자는 말씀을 끝으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대통령님은 숙소로 우리는 부산 오는 대절버스로 오르며 참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부산에 도착하여 며칠 후 대통령님께 건강하시라는 짧은 내용의 편지한통을 보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조금 더 잘 써서 보낼 걸 하는 회환이 남습니다.

그 이후 편하게 한잔하며 이야기 하자던 노무현대통령님과의 약속은 끝내 지켜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봉화마을을 내려오신 처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관광객이 줄을 이었고 조용해지면 한번가자며 차일피일 미루다 마침 검찰 조사 문제가 터졌고 조금 조용해지면 정말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만 노무현 대통령님은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존경하올 노무현 대통령님~~대통령님이 떠나신 뒤 일주일의 장례기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지치기도하고 부산으로 봉화로 헤집고 다녔습니다. 부산역빈소에 가도 봉화마을 빈소를 가도 마치 연극을 하고 있나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우리들은 노무현대통령님이 바라시던 삶에 정체성을 찾아 더욱 열심히 살아 그 정신만은 놓지 않으려 마음을 다 잡아봅니다. 대통령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에 작은 힘을 보태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삶에 노력을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고 행복한 자유를 찾아 훨훨 사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리며 2009년 6월18일


최수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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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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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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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7일 수요일

'단짝' 원창희 회장이 회고하는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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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 사람들에게 고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물으면, 대부분 주저없이 원창희(63) 오앤엔통상㈜ 회장을 꼽는다. 16일 원 회장의 부산 사무실을 찾아가 그에게서 '친구 노무현'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 노무현의 참모습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들려준 원 회장의 회고담을 가능한 그대로 소개한다. 부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상고 취업반 졸업 뒤 취직…"왜 월급 차이 납니까" 항의 뒤 사표
1963년 부산상고에 입학해서 내 친구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났어요. 그 사람은 키가 작아서 제일 앞줄에 앉았죠. 같은 반도 아닌데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놀러왔어요. 표정이 참 밝았죠. 명랑하고 농담도 잘하고.
2학년이 되면서 노무현 그 친구는 취업반으로 진학하고, 나는 진학반으로 갔어요. 졸업하고는 잠시 헤어졌죠.
친구는 부산에 있는 삼해어망이라는 조그만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그런데 월급을 받으니까 대졸 신입사원의 절반 밖에 되지 않더랍니다. 하루는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따졌대요. "다 같은 일을 했는데 왜 월급이 차이가 납니까"라고. 사장이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않으니까 직장을 그만둬 버렸어요. 6개월만에요.
"고시에 붙을 때까지는 절대 안나올 끼다"
그리고는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울산으로 가서 막노동을 했어요. 당시 울산에는 온통 공사판이었으니까. 영남비료 공장을 짓는 데서 일을 했는데,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공사장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병원에 쫓아갔더니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서 제대로 말도 못해요. 글을 써서 말을 하더군요. "부산 중부산세무서에 근무하는 큰형님(노영현·사망)에게 연락해서 이불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퇴원하고 나서 울산 시장통에서 술을 마시며 "고시에 붙을 때까지는 절대 안나올 끼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고향으로 갔어요. 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한 것은 큰형님 영향이 컸어요.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세무공무원이 됐거든요. 노 대통령이 공부할 때도 형님이 봤던 책으로 했어요.
10명서 20만원씩 모아 요트 만들었더니 '호화요트'로 둔갑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친한 친구 네명이서 부부동반으로 다달이 계모임을 했어요. 하루는 친구가 모임에서 요트 이야기를 꺼내더라구요. "200만원만 주면 부산 구포에서 에프알피(FRP·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 요트를 만들어 주는데, 1인당 20만원씩 10명이 모아서 요트를 한대 만들자"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끌어모아 요트 2대를 만들었어요. 일요일이면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요트를 탔죠. 당시 한국해양대, 부산수산대 등 대학에도 요트 동아리들이 있었는데, 정작 학생들은 요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생들과 함께 요트를 탔어요. 그러면 학생들은 김밥이나 막걸리를 준비해오고. 그런데 이게 나중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호화요트로 둔갑을 했더라구요.
그 당시 노 대통령은 일본을 왔다갔다 하더니 일본 요트강사 자격증을 따왔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요트강사 자격증을 땄다"라며 자랑하고 다녔죠.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요트용품 제조업에 큰돈을 투자했다가 날리기도 했어요.
1980년 쯤이었을 거예요. 하루는 권양숙 여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요즘 건호 아빠가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집에 형사들도 찾아오고, 정보기관에서도 찾아오고. 한번 알아봐주세요."
민주화 운동 '시기상조' 충고하자 "우리 각자 인생 앞으로 가자"
그래서 친구를 광안리해수욕장 횟집에서 만나 물어봤죠.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푹 빠져들어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당시 제조업을 하고 있던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나는 열심히 설득을 했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그런 것도 하는 것이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등등. 몇시간을 이야기하고 횟집에서 나왔는데, 헤어지면서 그러더군요. "우리 각자 인생 앞으로 가자." 서로의 인생살이가 다르니, 각자 자신의 길을 가자는 말이었죠.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확고한 신념이 이미 선 사람을 더는 말리지 못했어요.
결국 1987년 구속도 되고 변호사 자격도 정지됐죠. 하루는 밤에 전화를 해서 "친구야, 먹고 살 일이 캄캄하다. 너그 회사에 취직 좀 시켜도. 먹고 살게"라며 한숨을 쉬더군요.
생각은 DJ에 공감…정치입문은 YS밑에서
1988년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내가 "변호사 자격도 정지되고 할 일도 없는데, 니가 추구하는 것을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하면 어떻겠노"라고 권했어요. 그렇게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죠. 그런데 친구는 "디제이(김대중)와 와이에스(김영삼)를 비교해 볼 때 디제이 생각에 훨씬 공감한다"고 하더군요. 그건 내가 말렸죠. 부산에서 정치에 입문하려면 무조건 와이에스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디제이와 와이에스 양쪽에서 모두 친구를 영입하려고 애썼는데, 결국 와이에스의 도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어디에서 출마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와이에스에게 부산 아무 데나 달라고 했다"고 해요. 그리곤 부산 동구로 자원해서 갔죠. 부산 최고의 강자인 허삼수가 버티고 있었는데. "군사 독재정권의 최고 실세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논리를 폈죠.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조직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죠. 당시 내가 부산상고 53회 동기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졸업 20주년 기념행사를 한 직후라 동기생들의 연락처를 많이 갖고 있었죠. 그래서 동기생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소주 한병을 사더라도 동구 산복도로 구멍가게에 가서 사면서 노무현에게 한표를 찍어달라 부탁하라고. 정말 열심히 했고, 그렇게 해서 노무현 의원이 탄생했어요.
청문회 스타 된 뒤 의원직 사퇴서…최형우·김동영 등 만류로 번복서
그리고는 청문회 스타가 됐죠. 주위에 친구들이 "너 이제 대통령해도 되겠더라. 국회의원 중에 니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더라"며 부추겼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무척 힘들어했어요. 전국 곳곳에서 밤낮으로 민원이 들어왔어요. 노무현 정도라면 무엇이라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유명하기만 할뿐 초선 국회의원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심한 무력감에 빠져 정말 힘들어했어요. "국회의원 그만두고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훨씬 보탬이 되겠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경남 거제도의 무인도로 친구를 데려가서 텐트를 치고 이틀 동안 쉬다 왔어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생각을 했죠.
그런데 돌아와서는 국회의원 사퇴서를 내고 잠적 해버렸어요. 권여사는 말할 것도 없고, 와이에스까지 전화를 해서 친구를 찾아달라고 하더군요. 일주일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틀 뒤 새벽에 권 여사가 전화를 해서 "새벽에 건호 아빠가 돌아와서 지금 자고 있는데, 좀 와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김해공항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어요. 우연히 그 비행기에 문재인 변호사도 탔어요. 목적지가 같더군요. 친구 집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까 민주당 의원 12명이 찾아왔어요. 최형우, 김동영 의원 등이 있었죠. 서명만 하면 되는 사퇴 번복서도 만들어 왔더군요. 의원들이 친구에서 설득을 하는데, 그때 친구의 어머니와 장모가 함께 부엌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설겆이를 하고 있었어요. 마음이 참 안됐더라구요. 내가 담배나 한대 피우자면서 친구를 밖으로 불러 냈어요. 사표를 내면서 어머니에게 뭐라고 했냐고 물으니 "몸이 아파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자식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둔다는데 말릴 부모는 없겠지만, 앞으로 너그 어머니하고 장모는 오래 못살거다. 니가 이러는 것을 보면서 어찌 오래 살겠노. 친구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때 최형우 의원이 쫓아나와 "친구 이야기가 백번 맞다"며 우격다짐으로 번복서에 사인을 받아냈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당시 원내총무이던 최형우 의원이 친구에게 갑자기 큰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번복서를 쫙쫙 찢어버려요.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노 의원. 어차피 사인한 것, 내가 불러줄테니 자필로 번복서를 써주소"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필로 번복서를 썼고, 최형우 의원은 그것을 들고 돌아갔어요. 김동영 의원은 밥을 사겠다며 우리를 식당으로 데려갔어요. 김동영 의원이 식당에서 하는 말이 "야당 오래하면 친구들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고, 결국 가까운 친구들의 껍데기까지 벗기게 된다"며 정치인생의 회한을 털어 놓더군요.
부산시장 출마전 캐나다 여행…환경보호 눈떠
1992년도에 부산 동구에서 다시 출마했는데, 떨어졌어요. 언론에서 호화요트 기사를 낸 것이 이때였죠. 빈민가 밀집지역에서 분위기가 확 돌아섰지요. 1995년에는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 또 떨어졌어요.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부인 앞에서 각서까지 썼다더군요.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기 전인 1994년 여름 내가 제안을 해서 친한 친구들끼리 부부동반으로 10명이 열흘 동안 캐나다에 여행을 갔어요. 예전에 함께 계모임을 하던 친구가 캐나다 캘거리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거든요. 노 대통령은 일본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간 것이죠. 이때 친구가 환경보호에 눈을 떴어요. "이렇게 큰 나라도 자연을 보호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조그만 우리나라는 정말 열심히 자연을 지켜야 하겠다. 야생동물을 지키는 것도 그렇고, 여기가 정말 모범사례다"하면서 쉴 새 없이 환경보호를 강조했어요.
골프장도 이때 처음 갔어요. 해양수산부장관이 되고 나서 처음 골프를 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전에 캐나다에서 한번 골프를 쳤죠. 이때까지 노 대통령은 골프에 대한 거부감, 나쁜 시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캐나다의 골프장을 가보고는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도 골프장을 만들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권여사도 "우리도 귀국하면 골프를 배워요"라고 친구에게 권했죠. 실제로 권여사는 귀국해서 골프를 배웠는데, 친구는 바빠서 배우지 못하다, 해수부장관이 된 뒤에 배웠죠. 장관이 된 직후에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야 머리 좀 올려도"하더군요. 정식으로 골프에 입문하겠다는 것인데, 당시 내가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창원에 있는 동기생인 강태룡 회장에게 연락해 대신 머리를 올려주게 했지요.
2001년 들어 하루는 그래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렸죠. 안된다고. 그런데 경선을 거쳐서 하기 때문에 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대통령 후보는 될 수도 있겠다며 웃고 말았죠. 그런데 진짜로 출마 선언을 했어요. 결국 나는 모든 일을 전폐하고 도왔어요. 동문들에게도 도움을 청하고요. 모두가 열성적으로 했어요.
내가 또 물었어요.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냐고. 그런데 이렇게 답을 해요.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 경호원 한두명만 데리고 대학로에 가서 포장마차 아무 데나 들어가서 닭똥집에 소주를 마시는 대통령. 옆자리 손님과 편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 나누는 대통령.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국민들은 그런 권위 없는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권위를 확 낮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당선되고 나서도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안해요. 주변 사람에게 고맙다는 전화라도 해라고 시켜도 하지 않아요.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했죠. 결국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한해 후배 최도술씨에게 시켜서 감사편지를 사람들에게 보내게 했어요. 그제서야 사람들 마음이 많이 녹았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가식으로 생각하더군요. "고마움은 마음 속에 가지고 있어야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정치인은 그러면 안되는데 아쉽더군요. 그 바람에 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죠.
그런데 대통령에 취임한 뒤 동기생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일이 있었어요. 한사람 한사람과 옛날에 함께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다른 친구가 쓴 연애편지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신기할 정도였죠.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면 서로 통하는 신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언론권력의 폐해 누가 막겠느냐"
대통령에 당선되고 부산에 처음 왔을 때 롯데호텔 객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어요. "청와대 들어가면 우리는 영영 못만나는 것 아이가? 앞으로 우찌 연락하모 되노?"하고 물으니까 "내 수행비서한테 전화해라. 내가 24시간 안에 니한테 전화하모 되는 것 아이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약속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어요. 내가 전화를 걸면, 몇시간 뒤라도 반드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고?"하고 물어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 잠깐 하고, 힘내라 하고 그러는 것이죠. 그런데도 반드시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가 정말 고마웠어요.
친구는 남에 대해 폄하나 나쁜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가능한 남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죠. 누가 다른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 하면 "아니다. 장점이 더 많다"고 했죠. 그러면 말한 사람이 머슥해져요. 언론에서는 말을 함부로 상스럽게 한다고 비판했지만, 본인은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게 쉽게 말하는 것을 즐겼죠. 한마디를 해도 가슴에 와닿는 말, 평범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말을 한 것이죠.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말을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많이 말렸어요. 언론과도 잘 지내라고 했어요. 그런데 "언론권력의 폐해를 누가 막겠느냐. 내보고 대통령 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본인의 소신을 꺾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방언론도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언로를 만들려고 했죠.
퇴임하기 1년 전쯤에 내가 물었어요. 집도 없는데 다음에 어디에서 살 거냐고.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더군요. 내가 그랬어요. 부산에 내려와라. 살아보니까 부산이 제일 살기 좋더라.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은 대통령이니까 부산으로 내려와서 살면 좋지 않느냐. 옛날에는 선비가 벼슬에게 물러나면 고향으로 내려가 후진을 양성하고 고향을 지키고 그러지 않았느냐고 했죠. 그랬더니 친구가 "야, 니 말이 맞다. 부산에 집을 한번 알아봐도" 하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봉하마을로 결정했죠.
"나는 그 시계 구경도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 검찰 수사가 진행될 때는 매일 찾아가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는데, 친구가 전화로 그래요. "기자들이 많으니까 찾아오면 괜히 얼굴 꺼실린다. 오지마라."
돌아가시기 열흘 전에 한번 보고싶다고 연락이 와서 생선회를 준비해서 부부가 함께 봉하마을로 갔어요. 두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했죠. 일부러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힘이 없어 보였어요.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더군요. 중간중간에 일어나서 잠시 몸을 풀고 다시 앉곤 했어요. 오래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이제 갈란다" 했더니 "그래 가라. 나도 글 써야 한다"고 했어요. 권여사가 "내가 이 양반 힘들게 만들어 미안해요"라고 하더군요. 친구는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았다고 언론에 보도된 1억원짜리 시계에 대해 "나는 그 시계 구경도 못했다"하면서 "내가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 하더군요. 친구는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거짓말을 못해요. 그 친구가 몰랐다면 진짜 몰랐던 거예요. 돈 받은 사실을 말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권여사가 말을 못한 것이죠. 시중에서는 부부간에 모를 리가 있나라고 하지만, 그게 상식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렇지 않았어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던 날도 찾아가서 만났어요. "정치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 주변 친구들 주머니나 털고"라며, 나를 가리키며 측근들에게 "저기 골병 든 친구 하나 있네"라고 하더군요. 옛날에 김동영 의원이 했던 말인데, 그 말을 결국 친구가 하게 되더군요.
정치인에게 후원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경제적으로 도와줄테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손 벌리지 말고 정치에 전념하라는 것 아닙니까? 언론에서 줄곧 박연차씨와 강금원씨를 노 대통령의 후원자라고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와서 왜 이럽니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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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0일 수요일

이제 '사람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2009년 4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의 글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처음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설마’했습니다.

설마 하던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용서 바랍니다.’ 이렇게 사과드리려고 했습니만, 적당한 계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형님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감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00만불, 100만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정치를 떠난 몸이지만, 제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 지금까지 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것은 피의자로서의 권리였습니다.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피의자의 권리는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가는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 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면목도 없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저는 그 인연보다 그의 자세와 역량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를 더욱 초라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욱 노엽게만 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에게도 동의를 구합니다. 이 마당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사람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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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지 마라

2009년 3월 24일 밤 노무현 대통령의 글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 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 이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거짓말의 수렁 -거짓말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유권자나 참모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거짓말, 근거 없는 보도, 풍문에 상처를 입고 진실을 밝혀 보겠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곧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보면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차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거짓말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소재로 우스개꺼리를 만들어 웃고 즐기고 돈벌이까지 합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저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양심도 인격도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의 수렁 -돈정치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조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후원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지역을 관리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한참 부족합니다. 원외 정치인의 사정은 참담하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가끔 뭘 먹고 사느냐? 세금은 얼마나 냈느냐? 이런 질문이라도 받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원외 정치인은 둘러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게는 연금제도도 없습니다. 결국 노후는 대책이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샘이 깊은 후원자라도 있는 복이 많은 정치인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어디 많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만 정치를 하는 나라 정치가 과연 잘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언젠가 정치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글로 써볼 작정입니다.-

사생활의 노출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인 일도 정치인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의 자유도 없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골프를 치는 일도 세상 분위기와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실수가 아니라도 실수가 됩니다. 저격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검증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보호의 한계가 너무 모호하여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전투구의 저주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당을 서로 나누어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치는 무너집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독재 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 직장생활도 못하게 했습니다. 야당은 정치는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했습니다. 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인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패자라도 정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라고 싸움이 항상 규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입니다. 욕설, 몸싸움, 거짓말, 중상모략, 뒷조사 이런 악습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 지고 국민들로 부터는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 가난 -좀 막연한 짐작입니다. 이미 그런 처지에 빠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돈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통의 정치인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편이나 관계도 과거와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은 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저의 말대로 정치할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정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자고 권유를 하고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떤 정치인이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변명으로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도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별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 상한다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이야기는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없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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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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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전태일의 분신항거 뒤로 이소선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소선에게 중요한 거는 살아야 할 때 어떻게 살 것이고, 죽어야 할 때 어떻게 죽느냐다.

전태일 이후로 숱한 사람이 소외된 사람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항거하였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이소선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였다.







이소선이 지난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소선은 긴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봉화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냐?”

네다섯 시간은 가야 한다는 말에 이소선은 덕수궁 앞으로 가자한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몸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이소선이 덕수궁 앞 분향소로 가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

“야, 분통이 터져서라도 덕수궁으로 가야겠다. 뭐, 국민장이라고? 지랄한다. 칼로 찔러야만 죽인 거냐? 잘못했으면 조사해서 밝히고 처리하면 되지, 검찰이라는 것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만 새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론 불러 모아놓고 이리 씹고 저리 볶아대는 게 검찰이 할 짓이냐? 이건 죽게 만든 거야. 이명박하고 검찰이 죽게 만든 거 아니냐? 이제 와서 사과도 안 하고 국민장 한다고. 순서가 맞지 않잖아. 말로만 국민장 한다면 다냐? 경찰차로 분향소 똘똘 가로막고, 이게 무슨 국민장이냐. 이명박이 죽게 한 거 먼저 사과하고 시민들 참여할 수 있게 경찰차 치우고 나서 국민장을 하든 시민장을 하든 해야지.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이리 주책없고 도리도 없는 대통령 첨 봤어.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저기 장자연인가 연예인 죽을 때도 진실도 못 밝히는 것들이 만날 죽은 사람 얼굴만 떡 하니 갖다 놓고 씨부리다 말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랄한다고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

이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분향소에 가는 게 맞겠다고 한다. 25일에 이소선은 덕수궁 분향소 고인의 영정 앞에 앉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위에서 한 말보다 더 ‘세게’ 욕까지 덧붙여 말했다. 말을 마치고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나도 잡아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선에게는 가신 님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가득하다. 1987년 옥포 대우조선소 이석규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이소선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하지 않았던가.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사건 때도 마찬가지고.

“이석규 할 때, 노무현 변호사 할 때야, 장지로 출발하기 전에 변호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 2만원을 내가 홀랑 뺏지 않았냐. 변호사니까 돈 없어도 갈 수 있잖아, 하며. 내가 한푼도 없었거든. 장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고성 삼거리에서 경찰이 몰려나오니까, 변호사가 나한테 내가 나가서 알아볼 테니 내 짐 좀 가지고 있으라며 차 밖으로 나갔는데 경찰한테 딸랑 잡혀가지 않았냐. 나는 얼른 산 속으로 도망가고. 나중에 대통령 되고 나서 무슨 기념식에서 만나니까, 이러는 거라.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그래서 대통령님 이런 데서 주책없이 옛날 일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했어. 그라니까 그런가, 하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참 인간적으로 격식 없이 좋은 분이었는데….”




<오도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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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9일 화요일

조기숙 前 청와대 홍보수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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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조기숙(前 청와대 홍보수석)


청와대 근무 시절, 권 여사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대통령님과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까지도 대통령님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나나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셔서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는데, 어떤 때는 너무 너그러우셔서 어떤 모습이 진짜 대통령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나의 대답은 비교적 단순했다.
“대통령님은 원칙주의자이시므로 행동원칙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공적인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심하게 꾸지람을 하시지만, 대통령님 개인에게 잘못한 사적인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것 같아요.”
나는 참모들 중, 대통령과의 인연이 가장 짧은 사람이다. 일면식도 없이 언론활동을 하다 부름을 받았으니 대통령과 함께 한 세월이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대통령을 잘 이해하는 축에 들었는데, 아마도 리더들의 성격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의 성격을 진단해서 대통령님과 여사님 앞에서 성격유형을 읽어 드렸을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점을 치는 것처럼 잘 맞느냐며 두 분이 무릎을 치며 크게 웃으셨다.
권 여사님은 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맞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정확한 것 같아요. 옛날에 고시 공부하실 때에는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해도 막 기어가서 난감했는데 대통령님은 괜찮다며 건호를 무릎에 앉히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고시공부를 하셨어요.”
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대통령님의 면모를 그 때 처음 알았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 쓰고 싶지 않다"
한 참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통령님 후보 시절에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TV토론 질문을 미리 얻을 수 있었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주었다며 노무현 후보만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냐고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님께 드리며 이것 보시고 토론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다가 정말로 불호령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당시 대강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후보가 질문을 미리 보든 안보든 그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 TV토론을 잘 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앞으로 다시는 내게 그런 것 가지고 오지 마라.”
크게 꾸중을 들은 참모는 다시는 정정당당하지 않은 일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를 떠나기 한 달 전쯤, 딱 하루 지각한 날이 있었다. 새벽 1, 2시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동이 트기 전 집을 나서야 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하루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침 7시쯤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보좌관은 오전에 아무 스케줄이 없으니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대통령님과 신년사 준비회의가 9시에 있어요.”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해서 내가 곧 떠난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전해 11월부터 떠날 준비를 했던 터라 나는 2006년 1월 말 예정이었던 신년사 준비팀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함께 독회를 하고 연설을 다듬는 일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홍보수석실의 책임자였고 그 일은 우리의 주요업무가 아니었던가.
순간 앞이 캄캄했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불명예를 어찌할 것인가. 실수가 거의 없었던 비서가 왜 하필 그 중요한 회의를 기록해두지 않아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집이 경기 일산이다 보니 아무리 급하게 서둘러도 회의실 앞에 당도하니 15분이 늦었다.
회의 도중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도저히 대통령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먼저 들이 밀면서 대통령과 멀지 않은 좌석에 살그머니 앉았다. 고개는 아래로 숙인 채 살짝 눈만 들어 대통령을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보내셨다. 순간 그 미안함이란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이유

대통령은 참모의 잘못은 크게 꾸짖으셨어도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가끔 여론의 질타에도 참모를 해임하지 않고 감싼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김선일 사건’이 터졌을 때, 전 국민이 분노했고 여론은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일단 사건을 수습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보자고 말씀하셨다. 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드높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어떤 원칙을 가지셨을까?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잘못인 경우에는 인책할 수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남을 질책하거나 용서할 때 사용하는 잣대였다. 개인의 불성실과 불찰로 인한 심각한 과실이 아닌 경우엔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을 일이 아니며, 더구나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모면을 위해 참모를 제물로 삼는 일엔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다.
또 아무리 개인적 실수라 하더라도 공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겠지만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도 그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모면을 위해 책임을 묻는 일에는 대단히 엄격했다.
나의 발언에 대한 수구언론의 왜곡, 물어뜯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처럼 거짓말 한 번 안해 보고 교과서처럼 살아온 사람은 수구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내 발언으로 인해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거나 난감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단 한 번도 질책하신 적이 없었다.
서거하시기 얼마 전에도 내가 대통령을 옹호한 발언이 조선일보의 왜곡으로 대통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공개 카페에 해명 글을 올리자, 실수한 나를 더 위로하셨다.
“나보다 더 아파하는 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참모로 가까이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당신에겐 티끌만큼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아 혹시 오래된 대통령 동지들이 나를 소외시키고 힘들게 할까봐 대통령은 나를 표나게 편애하셨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내가 한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몇 번씩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대통령께 이렇게 외치며 소리 놓아 울고 싶다.
“대통령님 빽 믿고 언론의 비판과 왜곡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었는데, 대통령님 없는 세상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저의 넋과 정신적 지주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 좀 해주세요~.”
대통령은 내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안 오겠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다 상처만 입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통령의 청와대’를 증언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영광이라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빨리 님의 시대를 증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태어나도 대통령님 참모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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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중....]

대선 토론회에서 사전에 질문을 빼냈다가 불호령을 들은 그 참모가 바로 접니다.조기숙 수석이 오래 전에 잊었던 일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2002년 SBS토론회 때 일입니다.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빼내 답변을 준비 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듣고 있었지요.저는 노무현 후보의 성격을 알기에 질문 전체를 빼 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또 당시 이회창 대세론과 방송사들의 보수 경향으로 인해, 우리가 질문을 사전에 빼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당시 담당 PD가 이미 모든 질문을 알고 있던 상대 후보와의 형평성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그래서 일말의 희망을 갖고 담당 PD에게 미리 부탁을 했습니다.“전체 질문이 아니더라고 1-2가지 난해한 질문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그가 방송 시작 10분 전에 질문 하나를 휴대 전화로 알려 주더군요.모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준비한 질문이었습니다.알려 준 질문을 제가 봐도 질문 자체가 난해 하고, 무엇을 물어 보는지 모르겠더군요.그래서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무현 후보에게 넌지시 질문 메모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조기숙 수석 말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습니다.“사전에 질문을 알려 주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알고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상대가 알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정직하게 선거 운동을 해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정직하게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었습니다.그러나 5년 내내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정직성을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았습니다.퇴임 후에는 이명박-검찰-조중동의 파상 공격에 파렴치범으로까지 몰렸습니다.살아있는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그는 결국 자결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엉이 바위 위에서 투신하기 전, 노 대통령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자신의 진심을 몰라 주는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까.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통한의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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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6일 토요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유시민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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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다 라고 얘기 할 때...
"당장 뭐가 잘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뭐가 되기를 바라고 희망을 찾으면 앞이 참 깜깜해 보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 내일 모레 당장 뭐가 잘 될 것이고... 믿을 수 있는 게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이 밤인데...
아직 밤이 열 한 시 밖에 안 됐습니다.. 빨리 날이 새야 되는데...여섯시간은 기다려야.. 날이 샐겁니다.
그러니까 해 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요... 하여튼 그 깜깜한 시기를 견뎌야 합니다.
날이 밝았을 때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밤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보면 지난번 6년전 대통령 선거는 사실 좀 말이 안되는 선거였습니다.
이길수가 없는 선거였는데 이긴 선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987년 선거가 가장 암울한 기억입니다...1987년 12월 17일 밤.. 개표방송 출구조사 나왔을 때...
노태우 후보 압승!! 38% 득표 200만표 차이로 당선됩니다.
참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양김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구로구청 마당에서 부정 투표함이라고 발견된 거... 사람들이 농성할 때...그거 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6월 항쟁 힘들게 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가고 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어 놓으니까...
"그걸 쿠데타 2인자한테 갖다 바치는 국민이 어디있냐?"
국민이 원망스러웠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여야 정권교체도 한 번 했고 그 정권을 5년 더 연장했고...보수정권의 역 정권교체가 일어났습니다.
1987년도에 노태우씨가 당선되는 것을 봤을때 그 절망에 비하면 지금의 절망은 별거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속았을 수도 있고요...저는 낚였다 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조차도 낚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47 대운하에 낚인겁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역정권교체를 너무나도 원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딱 부합되는 인물이 이명박후보아닙니까?
747 대운하 이건 말도 안되는 공약이지만...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지지를 받아
대선 1년 반 전부터 1등해서 대선까지 간 것입니다.
한 시기의 대중의 소망과 판단이 그 쪽으로 움직인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걸 깨고 나올 수 있는 것은 국민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잘되니까 부럽습니다....오바마...
오바마 대통령 될때 여러분 다들 좋아 하셨을겁니다...
오바마 당선 되었을 때 저도 좋았습니다... 미국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우리한테도 희망이 있는거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 국민 대단하다! 저 무명인사를... 4년 전만 해도 전당대회장에서 자리도 못 받아 밖에서 겉돌던... 촌뜨기를...
워싱턴 백악관 가는 길도 잘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미국 국민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벌써 6년 전에 한 겁니다... 자기 국민이 한 것은 우습게 여기고...
광신도니 뭐니 하면서...외국에서 한 건 엄청 띄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이 한 것이 2002년 노사모가 한 것과 똑같은 겁니다...
노사모가 한 것은 일시적으로 갑자기 뭉친거고... 오바마를 만들어 낸 네트워크는 민주당의 오랜된 풀뿌리가 만들어 낸 거고...
그 차이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더 위대하죠~
약체 선수들...연봉 다 합쳐 70억 밖에 안되는 선수를 데리고가서 WBC 결승전 올라 간 게 더 위대하지...
연봉 합쳐 천 몇 백 억되는 선수로 우승한 게 더 값진가요?
아무런 사회적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결집해서 그만한 일을 한 것이 제가 볼 때는 더 대단합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역사의 대단함은 광신도 노빠 이렇게 해서 엄청 비하하면서...
그거 보다 더 늦게 그와 비슷한 것을 한 외국에 대해서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엄청 띄웁니다...
미국대통령한테 잘 보이려 그러는지...
진보는 진짜 좋아서 띄우고... 보수는 잘 보이려고 띄우고... 전부 다 띄웁니다...
한심해 보입니다. 왜 우리는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
지금 미국 행정부에서 하려는 게...참여 정부가 5년 내내 고민했던 내용들입니다...
사람 중심 투자 이런 것들... 국가 비젼 2030....
그거 나왔을 때 대한민국 진보지식인들도 전부 다 발로 밟았습니다...
그거하고 거의 내용이 비슷한 미국의 오바마 경제고문이 쓴 책 이런 건 막 띄웁니다...
왜? 우리나라 것에 대해선 거의 비슷한 기조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의 정책은..
보수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라고 해버리면 모두 다 동조해서 본 척 만 척 하면서...
왜 미국에서 나온 것은 그렇게 띄울까?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부시 8년이 필요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과정이 부시 8년입니다.
이라크 전쟁....911 테러... 아프간 전쟁...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고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Ground Zero가 되게 그 사태를 일으키고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하고 세계를 금융공황으로 빠뜨린 이 모든 것들이 부시 8년동안 일어났고..
그 바탕위에서 오바마가 탄생한겁니다...
그런 8년속에서도 득표율을 보면 53:47... 5% 차이 밖에 안됩니다..
미국 국민이 한 일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8년 동안 그렇게 당하고 그것도 못한다면 미국 국민은 자격이 없는 겁니다.
미국 국민은 민주주의 본산에 해당하는 현대의 민주 국가로서 해야 마땅한 최소한의 것을 한 겁니다. 미국 국민은...
그렇지만 위대한겁니다... 위대한 선택을 준비하는 과정이 부시의 8년이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의 1년 이라는 것은 조족지혈입니다... 아직까지는...
국민 대중이 한번 한 판단을 바꾸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일들이 필요한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명박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30% 미만이라고 해서 판단을 바꾼 게 아닙니다.
지금도 2007년 2008년 대선과 총선의 흐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을 바꾸는 데는 많이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세월 동안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지난 1년동안 벌어진 일들은 별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냐? 그렇지 않습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밤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아침이 오는 게 반갑습니다.
어찌보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침을 간절히 바라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투표도 계속 안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자각이 싹트는 날이 옵니다.
지금은 이 소중한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중은 누가 계몽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합니다.
자기자신의 개인적 집단적 경험을 통해서
또는 개별적 학습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자기 스스로를 계몽해 나가고
자기 스스로 깨우쳐 나가고
자기 스스로 자기 발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담해 보이지만 이것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물대포 쏘고 일요일날 아침에 기자들 잡아가고 그래도
거꾸로 달아 매고 고춧가루 물을 먹이지는 못합니다...
박정희씨나 전두환씨가 대통령 때 했던 일에 비하면 거의 장난감 총을 다루는 수준입니다.
앞으로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휠씬 암담해 보이는 사회현상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희망이 없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 자꾸 밤이 깊어가면 더욱더 찬란한 새벽이 오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짜증내지말고
숨 길게 내 쉬고 길게 들여 마시고
걸어 다닐 때도 천천히 걸어 다니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뛰어 다니면 밤이 길텐데 밤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질긴 놈이 이깁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든 진보의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희망이라는 것도 숨을 얼마나 길게 쉬느냐에 따라서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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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금요일

용산참사현장 오늘 아침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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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40673&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영결식 아침 mb의 경찰과 용역의 만행 - 용산참사현장 강제철거


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치뤄지던 날 아침, 용산에 경찰과 용역이 들이 닥쳤습니다.
아침 7 시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미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말씀의 전례를 하던 중 7시 15분 쯤에 들이 닥친 용역들에 의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용역들이 철거를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은 공무 수행중이라 하였지만 집달관은 집행 명령서를 적법한 철차에 의해 전달하지 않았고, 그저 용역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고, 용역 뒤에 숨어서 이를 웃으며 지켜 보았습니다.
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신부님.
이런 신부님을 용역들이 발과 무릎, 엉덩이로 깔고 뭉개서 진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이를 말리려는 사람들의 손목을 비틀었습니다.
용역에 의해 사람들과 신부님이 법에 보장된 보행의 자유를 침해받고, 용역의 손에 밀려서 바닥에 넘어지고, 짖밟히고,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하자 경찰은 용역에게 모든 것을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신부님 살려달라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소리 쳤지만, 경찰은 모든 것을 용역에게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경철이 자리를 떠나자 용역들은 더욱 강경하게 나오더니 급기야 신부님과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휘둘렀고, 용역 반장은 용역들에게 반항하는 새X들은 다 패버리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민 모두의 시선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에 쏠려있던 날 아침. 용산 철거민들은 또 다시 경찰과 용역의 손에 의해, 경찰의 의도적인 폭력의 묵과 속에서 또 다시 상처 입었습니다.
아침 8시 20분경 약 50분간에 걸친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모두가 몸으로 울었던 아침이었습니다.
P.S-용역분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해 드렸습니다. 공권력의 비호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렇게 고작 한 시간 열심히 일(?)하고 하루 일당 6~7 만원 받는다니 참 고효율, 고소득 직종인듯 합니다.

관련 게시판 링크
http://cafe243.daum.net/_c21_/bbs_download?grpid=1HSOD&fldid=CF79&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4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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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현장 못 보고 빈 손 상경

http://news.nate.com/view/20090528n15387



국과수,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팀 급파

검찰의뢰 없어 현장도 못 보고 '빈손' 상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법의학팀을 현장에 급파했지만, 아무것도 못한 채 빈손으로 올라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국과수는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혹시 있을지 모를 시신검안, 현장 감식, 부검 등을 대비해 김해로 급히 내려갔다. 그러나 사건을 지휘한 창원지방검찰청의 요청이 없어 시신은 물론 투신 현장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현재 경찰 수사와 관련해선 담당 경호관의 진술 번복 외에도 투신 직후 현장감식 결과 미공개, 사건 관련자 등 증거 확보 부실 등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 직후 법의학팀 꾸려 현장에 급파"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23일 (검찰의) 요청은 없었지만,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인 만큼 시신 확인(검안), 현장 감식, 증거(확보)를 위해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 하지 않겠나 하는 판단에 국과수팀이 내려가 대기했다"며 "그러나 검찰에서 아무런 의뢰가 없어 그냥 돌아왔다"고 밝혔다.
강희락 경찰청장도 당일 국과수 측에 "국과수에서 현장에 내려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과수는 서정석 법의학부장을 중심으로 법의학과 3~4명으로 팀을 꾸려 내려보냈고 이들은 오후 4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상황이라 우리로선 완벽하게 준비를 해갔다"며 "(검찰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검안과 현장조사까지 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엿새째인 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을 마친뒤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그러나 당일 사건을 지휘한 오자성 창원지검 공안부장은 아무런 요청도 하지 않았다는 게 국과수 측 설명이다. 결국 국과수 법의학팀은 부엉이바위 등 투신장소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우리가 현장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검안, 현장 감식 등을) 의뢰하지 않았다"며 "이미 검안을 해서 발표를 한 상태였고 국과수에서 먼저 (검안, 현장 감식 등을) 하자고 제안할 수는 없어서 대기하다가 밤 10시 막차를 타고 그냥 올라왔다"고 말했다.
당시 검안은 국과수팀이 도착하기 앞서 낮 12시 20분부터 약 30분간 병원 지하 1층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이뤄졌다. 검·경 관계자와 허기영 부산대 법의학 교수, 정재성 변호사(조카사위) 등이 입회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이미 검안이 끝났더라도)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중대한 사건이니 검찰이 요청을 했다면 우리로선 당연히 검안이나 현장조사를 했을 것"이라며 "(의뢰하지 않은) 이유는 검찰에 물어야지 우리로선 알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검찰 "수사 종결되지 않은 상황... 밝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선 시신 상태, 투신 장소의 혈흔 여부, 외투나 등산화가 벗겨져 있었던 이유 등을 둘러싸고 의혹이 꼬리를 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현장이나 시신도 보지 않고 판단해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언급을 삼갔다.
의문은 검찰에 쏠린다. 왜 국과수에 시신 검안이나 현장 감식을 의뢰하지 않았는지다. 검찰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라 밝힐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창원지검의 한 관계자는 당일 국과수에 검안이나 현장조사를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재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고 검시(내용)도 사건의 일부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이해해달라"며 답변을 피했다.
한편, 서거 사건을 수사 중인 경남지방경찰청은 서거 이튿날인 지난 24일 "부엉이바위 45m 아래에서 수거한 등산화와 윗옷, 머리카락, 혈흔 등을 국과수로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부산에 있는 국과수 남부분소에서 감식 중이며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창원 지검은 대체 무슨 연락을 받았길래 대기하고 있던 국과수를 그냥 돌려보냈나?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면 국과수 투입하는게 당연한건데 그냥 돌려보내다니????????
누군가의 압력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 아닌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ㅅ ㅂ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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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7일 수요일

경찰 "盧전대통령 투신후 최소 28분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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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盧대통령 투신후 최소 28분간 방치"


(창원=연합뉴스) 김영만 박창수 기자 =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후 서거 사건을 수사 중인 경남지방경찰청이 노 대통령이 총 31분간, 투신 후 발견되기까지 최소한 28분간 경호를 받지 못했다고 확인했다.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은 27일 오후 경남청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과 동행한 이모 경호관이 오전 6시14분 정토원에 심부름 갔다가 6시17분 돌아온 후 노 대통령을 발견한 오전 6시45분까지 총 31분간 경호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23일 6시17분에 투신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 28분간 부엉이 바위 아래에 방치돼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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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목격자 증언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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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투신 목격자 있었다

이모씨 부부, 부엉이 바위 바로밑 고추밭 매며 들어

"비명소리는 없어" 경호원이 부축하는 장면 봤다"


"'툭' '탁' 하는 소리에 이어 '쿵' 하는 꽤 큰 소리가 들렸어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서거한 23일 새벽 상황을 목격했다는 최초의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행적에 대한 경호관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최초 목격자가 나와 의혹 투성이인 경찰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봉하마을 주민인 이모씨(60)와 김모씨(58) 부부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며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시50분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추밭에서 밭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씨 부부는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씨는 "부엉이 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며 "그때는 그들이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날 3명의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 수색작업을 했다는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시10분에서 20분' 이내로 추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은 6시30분 전이었을 것으로 기억해냈다. 밭일을 끝내고 귀가한 시간이 6시30분 전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씨 부부는 또 경호원이 최근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뒤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밭이 등산로 바로 입구에 있는데,당시 등산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http://news.cyworld.com/view/20090527n17279?mid=n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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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 단독 "이 경호관 정토원장에게 거짓진술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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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호관 사건은폐 기도(종합)
http://www.bbsi.co.kr/news/news_view.asp?nIdx=395967&NewsCate=4

[엥커멘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경호를 맡았던 경호관이 상황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확인돼 노 전 대통령의 사망과정을 둘러싸고 경찰의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경남지방경찰청에서 박찬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함께 수행했던 이 모 경호관이 사실을 계획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불교방송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정토원 관계자는 불교방송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모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전화를 걸어와 사건은폐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 모 경호관이 "만약 경찰 조사가 시작되면 자신이 노 전 대통령 심부름으로 정토원에 들른 사실이 없다"고 진술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토원 관계자는 이후 경남지방경찰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달했고 이운우 경남지방경철청장은 상당히 당황해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은 즉각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고이 과정에서 이 모 경호관의 거짓 진술이 확인됐습니다.

이 모 경호관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정토원을 들렀는지 여부에 대해 처음엔 함께 지나쳤다고 했다가 이후엔 한두차례 다녀왔다고 하는 등 계속 엇갈린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초기 수사에서 경호실패 문책을 두려워해 이 경호관이 계속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오늘 오후 경남지방경찰청에서3차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지만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장소와 거리,위치가 정확하게 밝혀질지 의문입니다.

경찰은 경호관 이 모씨의 진술이 오락가락 하자 이를 토대로 진행해 온 수사를 전면 재검토해 다각화 한다는 방침입니다.

경찰의 전면 재수사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의문을 풀어줄지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남지방경찰청에서BBS 뉴스 박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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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사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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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사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교신)기록과 진술 등을 바탕으로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사저 뒤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경호관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홀로 있다가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남경찰청장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노 대통령, 정토원에 들렀나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노 대통령은 오전6시14분께 경호관과 함께 부엉이 바위에 도착해 3분가량 앉아서 담배 얘기 등을 한 뒤 경호관에게 200m가량 떨어진 정토원(사찰)의 원장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심부름을 보냈다.또 경호관은 부엉이 바위로 돌아와 없어진 노 대통령을 찾다 30분 가량 뒤인오전 6시45분께 추락지점에서 쓰러져 있는 노 대통령을 발견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이날 정토원에 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토원에서 음식공양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최근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사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경호관도 경찰에서 한 1,3차 진술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토원에 들렀다"고 밝혀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있다.

◇ 투신 때 경호관 없었나

경찰은 노 대통령이 경호관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혼자 있다가 투신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하지만 경호관은 경찰에서 한 최초진술에서 "노 대통령이 투신하기 직전까지20여분간 노 대통령과 함께 부엉이 바위에 있었고, 인근 등산로를 지나는 등산객의 접근을 제지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노 대통령이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주장했다.경호관은 2차 진술 때는 번복했지만 3차 진술에서 재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처럼 경호관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는데 경찰이 무엇을 근거로 노 대통령이 혼자 있다가 투신했다고 추측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경찰 설명대로 경호관이 심부름을 간 사이에 노 대통령이 투신했다면 불과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다녀온 경호관이 노 대통령을 발견할 때까지 30분 가량 무엇을 했는지도 명쾌하게 설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경호관이 노 대통령을 업고 갔다?

경찰은 경호관이 투신한 노 대통령을 업고 필요한 장소로 옮긴 뒤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하지만 추락환자에 대한 구급조치 요령을 모를리 없는 대통령 경호관이 119 구급대에 신고하지 않고, 낙상한 노 대통령을 들쳐 업고 옮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높은 곳에서 떨어진 환자를 들것 등으로 안전하게 옮기지 않고, 함부로 옮길 경우 오히려 환자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게 구급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당시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전직 대통령의 안위를 책임지는 경호관이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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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위협을 당한 경험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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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은행 안전관리파트에서 약 100여명의 경비원을 통솔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몇년전 어느날 제가 직접 저희 은행 빌딩에서 투신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치우고 이후 그 사태를 직접 제손으로 수습한적이 있는데. (참고로 저희 은행은 지상에서 옥상까지 100미터 입니다.) 모 대학생이 아무런 유서없이 저희 은행 옥상에서 추락하여 100미터 아래에 있는 지상으로 투신하였을때 보통 빌딩에는 기류가 흐르게 마련입니다. 빌딩을 감싸고 도는 바람은 장난이 아니죠, 빌딩 끝에서 떨어져 아래에 있는 트럭을 박살내고(그 트럭은 전파되었음) 그 사람은 떨어질당시 빌딩에 흐르는 기류 때문에 약 10미터 좌측에 떨어졌는데, 몸은 앞으로 해서 뛰어 내렸는데 뒤집어져 누워있는 상태로 수평으로 떨어져 뒷머리가 반절이 부서져 시체를 끌어내릴때 정말 가볍더라고요. 조사계 형사에게 물어보니 머리가 무거워 높은데서 떨어질때는 몸이 뒤집어진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저희 빌딩은 100미터 정도되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옥상에 올라가면 성인인 저도 간신히 버틸정도로 바랍이 많이 분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트럭위로 떨어질때 엄청나게 많은 충격을 받았겠지요, 그 트럭엔 철제 책상이 많이 실려 있었는데 완전히 파손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바람이 많어 약 10미터 좌측으로 떨어지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그 시체위에 걸쳐졋던 잠바는 (아주 얇은) 벗겨지지도 않았으며, 그 사람이 신겨져 있던 신발도 그댜로 였습니다. 머리가 부서진것말고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요. 그 사람의 바지뒤에 지갑을 꺼내 그 사람의 신분증을 제가 직접 꺼내 신분확인을 할정도였으니까요.

세상에 바지뒤에 끼워져 있던 지갑도 그대로인데 불과 45미터(30?)에서 떨어진 그 분의 잠바가 벗겨지고 신발이 벗겨 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물론 주어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조폭한테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둘이 었는데 정말 그때 살기란게 정말 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런 내색도 없이 겉으로는 살갑게 말하며 같이 걸어가느데 정말 본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로 안심을 시킨후 지나가는데 마침 주변에 제가 알고 있는 유력한 인사의 관사가 눈에 뛰어 순식간에 달려가 그 집 초인종을 엄청나게 누르고 대문을 꽝광 두드리니 그냥 저를 유심히 바라보다 돌아 가더군요..

그 사람들이 가자마자 저는 집으로 돌아가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이란 분들에게 다 전화를 했지요...

그 다음부터는 저에게 다가오지 않더군요...

그분도 틀림없이 그것을 느꼈겠지요. 그래서 일부러 정토원으로 갔으나, 그 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뒤돌아 나와(흔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아무일 없다는 식으로 산을 향해 갔을 것입니다. 단 하나의 희망을 가슴에 안은채.......



그래서 그들은(THEY) 실수를 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시나리오에 넣지 안았던 돌발상황이 발생하였으나,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것..

(전세계적인 시나리오가 이미 있어 그것에 대해 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벌였던 것이었겠지요. 파탄이 나린란것을 알고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실은 그저 시간이 흐르면 퇴색될 뿐이니까요.







그냥 주어 없이 써내려간 소설일 뿐이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 빨리 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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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지점에 혈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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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전문의가 본 시해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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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영병원에서 CPR(심폐소생술)을 했다고 그랬는데.....
상식적이라면 CPR의 기본은 기도 확보가 첫번째이다....
그럼 당연히 양산 부산대 병원에 도착할 당시에 기관 삽관이 되어 있어야 하고, 의사 한명이 붙어서 ambu를 짜는 상태로 앰블런스에서 내려야 한다....
아무리 가망없는 상태에서 심장은 멎어도 기도확보는 무조건 한다....
보호자가 올때까지 인공호흡기는 달고 있다가 보호자가 오면 인공호흡기 떼고 사망선고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양산 부산대 병원 도착할 당시 앰블런스에서 내리는 장면에서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얼핏 보아서 잘 못봤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그 장면 보신 분이나 동영상 있으신 분 확인 부탁합니다....)


2. 옷을 세영병원 옷으로 바뀌었다는 게 이상하다.....
CPR 상태에서는 절대로 옷 갈아입히지 않는다....
옷 갈아 입힐 시간 있으면 foley catheter (소위 말하는 소변줄) 꽂는다.....
뭐 다리쪽에 외상이 있는지 확인 할려고 바지를 찢고 갈아입혔다면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세영병원 의사의 말을 들어보면 두부외상에만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노통이 입고 있던 바지가 어디로 갔나?? 그게 궁금하다..... 혹시 타살흔적이 남을까봐 버렸나???


3. 왜 양산 부산대 병원으로 갔냐는 점이다......
너무 멀다....
상태 안좋은 분이라면 거기까지 가는 동안 죽는다.....
그럼에도 거기를 고집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
왜 앰뷸런스로 가면서 의사는 같이 안 탔나?? 그건 당연한 기본인데......
혹시 같이 타고 갔지만 기사에 보도가 안되어서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가???


PS: 자꾸 글이 밀리네요..... 공감하시면 퍼다날르셔도 무방합니다....

[댓글]

동감합니다... 의료적 부분에서도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하다못해 AN들도 안하고 실습 학생들도 하지 않는 일들을 관계자들이 많이도 했더군요...

전문의가 아니라 1년차 간호사만 있었다고 해도 저렇게 이상하게 만들어놓기 힘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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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썼다 지웠던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의혹 몇 가지....


썼다 지운 이유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서 지웠습니다만.....
제가 다시 찾아 보기엔 너무 힘들어서 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동영상 찾아서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1. 기관내 삽관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당연히 기관내 삽관이 첫번째 입니다....
심장이 죽어도, 심지어는 죽은 상태에서 와도 (DOA라고 하죠) 기관내 삽관은 무조건 합니다....
인공호흡기는 폼으로라도 걸어놨다가 보호자 오면 인공호흡기를 떼면서 사망선고 하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앰뷸란스에서 내리는 모습에서도 기관내 삽관이 되어 있고 ambu를 짜는 모습을 보질 못했습니다.....

여러 님들 확인 작업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제가 허위사실 유포 일테니깐요.....


#2. 병원복으로 갈아입힌다???
CPR같은 응급상태에서 다리쪽은 minor한 부분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대퇴동맥같은 큰 혈관의 문제가 아닌이상.....
생명과 관계된 부분은 다 가슴과 복부쪽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급박한 상황에서 바지를 벗기고 병원복으로 갈아입혔다??? 말이 안됩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foley (소위 소변줄)을 꼽죠.....

왜 노통의 바지를 벗겼나???? 궁금하네요....

#3. 왜 양산 부산대 병원인가????
양산 부산대 병원이 노대통령이 서거함으로서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죠.....
이제 개원한지 몇달 되지도 않는 병원에...... 고속도로를 타고 40분 이상 가야되는 병원으로 말이죠......
그것도 CPR 상태에서 이송한다고 하면 의사가 앰뷸런스에 같이 타고 ambu를 짜면서 가야 되는 상황에서 40분동안 앰부를 짜면서 그쪽으로 갔다???
조금 이상하죠......
전 그때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속보를 보고 의아해 하다가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부산대병원엔 미안한 말이지만.....
"벌써 돌아가셨나 보다.... 돌아가신 김에 병원 띄워도 줄 겸 그쪽으로 가셨나 보다...." 라고요....


글을 지웠던 이유는 제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라서 그렇습니다....
앰뷸런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캡쳐된 동영상을 다시 보고 확인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네요.....
못찾겠습니다......

[댓글]

이제 개원한지 몇달 되지도 않는 병원에...... 진짜 이상하단 말이죠........

개원한지 얼마 안된다?...이거 결정적 아닌가요?...이메가와 관련된 병원일 가능성이 크네요...

가능할듯..원장의 계좌를 보면 확실할듯하네요...최근 인수한 부동산이라든가

어제 양산 부산대학병원 다녀왔습니다 근데요 이상하게도 병원 어디에도 노대통령의 흔적 하나도 없고 구멍가게 앞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던데 역사적인 그곳에는 플랭카드는 고사하고 근조리본 하나 단 인간들이 없었습니다!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병원장님!돈이 없어서 플랭카드 안거신건 아니죠?아님 어떤이유가 있는건가요!

이 뉴스 한번 참고해보십시요..처음에는 마산 삼성병원을 가려다가 갑자기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경로를 바꿨답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614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어느 역대 대통령이 퇴임후라도 종합건강 검진 받은적 있었나요?이건희 같은 사람도 자기 종합병원 믿지 못해 미국 까지 가서 검사및치료후 흴체어 타고 오는 세상에!양산 부산대병원 관계자 당신들 지금 밝히지 못할 비밀이라 있는거요!

원래는 마산 삼성병원으로 간다고 세영병원에서 그 쪽으로 연락을 해서 삼성병원에서 노통이 온다. 아픈가 보다. 고혈압인가. 이렇게 자기들끼리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말없이 부산병원으로 간거죠.

[단독] 경호관 사건은폐 기도(종합) [ 앵커멘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경호를 맡았던 경호관이 상황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확인돼 노 전 대통령의 사망과정을 둘러싸고 경찰의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경남지방경찰청에서 박찬민 기자가 보도합니다.[리포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함께 수행했던 이 모 경호관이 사실을 계획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불교방송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정토원 관계자는 불교방송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모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전화를 걸어와 사건은폐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고 밝혔습니다 ... 불교방송 메인에 걸려있는데 접속자가 많은지 늦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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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새로운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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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명병원의사의 인터뷰도 단서가 있습니다.

1. 두부에 심한 손상이 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2. 다른 부위의 상태는 경황이 없어 살펴보지않았다...
3.자세한건 더이상 언급할 입장이 못된다...

의사로서 할수없는 말들로 보입니다.
30여분 이상 환자 검사하면서 두부손상외엔 살펴보지않았다??
그리고 바위투신자살이라면 뼈가 다 으스러져 심폐소생술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리고 의사면 그냥 환자의 상태를 검진한대로 얘기하면 되는거지
누가 협박을 했는지 더이상 말할 입장이 못된다고 몸을 사리는지...??

(2) 최근 정부의 특혜를 받은 연합뉴스 서울번호판의 취재차량이
세영병원에 7시 30분~8시 사이에 세워져있는걸 출근길에 목격했다는
한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 시간대면 대부분의 언론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거나
속보보도가 없었던 아주 사건초기때입니다.
경호원도 경황이 없어 119에도 연락하지않았을 정도로 경황없던
경호원이고... 겨우(?) 청와대에 보고한 직후의 시간대죠...
경황이 없어 권여사에게도 아직 알리지않은 시간대입니다...
어떻게 연합뉴스는 세영병원에 노대통령이 실려온걸 알았던걸까요??
더더우기 최근 정부의 크나큰 혜택(?)을 입었던 연합뉴스는
조중동이상의 정부기관지로 전락한 언론이었다는게 더더욱 절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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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의문사, 32 가지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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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놓쳤다 못찾겠다" 무언가 낌새를 차리고 도망갔다는 의미. 언론은 계속 1명의 경호원만 있었다고 했는데 최소 보고하는 자와 보고받는 자 2명 이상이라는 뜻. 그렇다면 사고 발생시 왜 1명의 경호원이 업어서 내려왔을까.
2. 새벽에 같이 등산가자고 부른 권여사를 따돌리고 급하게 먼저 출발 아마도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부인이 위험에 처할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낀건 아닌지.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으나 옷 입을때 그냥 먼저 성급히 따돌리고 나간건 아닐런지.
3. 문서작성시간 문서파일은 시간설정변경으로 간단히 저장정보를 왜곡할 수 있음. 예를 들어 밤10시에 작성한 것도 시간을 바꿔놓으면 새벽 5시로 저장됨
4. 바탕화면 문서 최근 기술로는 원격조종이 가능함. 즉 제3의 컴퓨터에서 유서파일 작성 뒤 노대통령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는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음.
5. 유서를 발견한 경호원 이것은 평소에 노 대통령의 사재를 자기 방 드나들듯 다닌다는 이야기? VIP가 보이지 않는다고 덜컥 사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확인? 상식적으로 자살을 예감한다면 유서를 찾기위해 노트나 책상서랍을 뒤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6. 유서의 신뢰도 법적 효력 이런것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오래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아침일찍 일어나 깨끗이 속옷을 갈아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종이에 적어서 살포시 올려놓고 가지 않는가? 실제로 자살과 관련한 여러 사례와 연구를 보면 자살을 앞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등 여러가지 징후를 보인다(군대 다녀온 사람은 알것임)
7. 손목골절 추락하며 손이 먼저(만세자세) 바닥에 닿았다는 의미. 자살하는 사람이 왜 충격을 저지하려는자세를 취하였는가
8. 혈흔 30미터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의 착지지점과 피투성이가 돼어있을 그의 잠바, 그리고 그 시체를 업고 왔다는 경호원의 옷.. 어디에도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9. CCTV 미공개 사저와 정문, 경호원 별채등 CCTV 출입기록만 공개되면 거의 모든 비밀은 풀리게 되어있다. 특히 유서를 쓰러 갔다는 시간의 실내CCTV 기록만 공개되면..
10. 정토원 정토원 보살의 말로는 경호원이 혼자 올라왔다고 하며, 결정적으로 경호원을 만나 잠시같이 산행을 한 목격자의 진술.
11. 시체의 상태뼈마디가 다 으스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를 40대 경호원이 업어서 하산.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시신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고 온화했다.
12. 사건전날 사건전날 담당 경호원이 바뀜. 그리고 사건 전날 이례적으로 경호원들을 일찍 퇴근시킴.
13. 발표시간 OO일보에서 9시17분에 9시30분 서거로 기사가 뜸. 또한 최초 음독사로 의심된다는 기사도 있었음.
14. 자살발표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부검이나 일체의 구체적인 정황조사없이 모든 언론이 자살이라고 일제히 방송.대부분 속보는 사건사실만 최초보고 한후 후속보도나 추가보도를 하는데 당일 언론은 이미 오전에편집영상 및 각종 분석까지 준비된 듯 내보냈음
15. 화장 고인은 2004년 장기기증 서약을 하였음.
16. 이동시간과 시체이동 45세의 경호관이 63세의 노인을 업고 하산해서 차량에 싣고 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걸린시간이단 20분. 팔팔한 20대의 나이에 20kg대 군장들고 산타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것.
17. 경호원의 진술 경호원은 일관되게 자신이 행동했던 것을 증언한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걸' 증언하고 있다.즉, 그는 산 아래나 다른 위치에서 노대통령을 지켜본 경호원이고 산위-노대통령의 옆에 있던경호원은..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18. 경호원의 초기대응 자신이 경호하는 VIP가 낙상을 당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리시버를 통해서 다른 경호원이나사저로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119도 부르지 않았다. 경호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최초 보고를 한 뒤 사저의 다른 경호원 도움없이혼자 병원으로 이송했다. 물론 응급조치는 하지 않았으며 골절환자를 개인도수운반으로 날랐다.

19. 새벽에 경호원와 맞닿은 등산객 경호원이 VIP를 놓친 상황이라고 하면 "노 대통령 못 보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하지만 그는 놓친 VIP를 찾는 것이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있냐는 질문에 그냥 등산하러왔다고만 대답

20. 조선일보 홈페이지 로고 홈페이지 왼쪽 위 노무현대통령 서거 애도하는 로고 logo_090522.gif 를 보면서거일은 5월23일인데 파일명은 5월 22일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2963&hisBbsId=best&pageIndex=1&sortKey=&limitDate=-30&lastLimitDate=

21. "쿵 쿵" 하는 두번의 소리 중간에 한번 부딛히고 나중에 한번 더 부딛히는 바운드되는 소리일 수도 있고, 둔기로 한번 맞고 추락할 때 한번 부딛히는 소리일 수도 있고. 참고로 사인은 두개골 손상. 그러나 손목골절도 있음.
22. 혈흔의 다른 미스테리 현장에는 혈흔이 없었뜨나 현장에서 떨어져 발견된 상의에는 혈흔이 있었다. 상의는 왜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을까? 살해당한 사람이 두명이었을 가능성. 예를 들어 그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그 상황을 저지하려고 시도하던 제3의 인물의 상처가 상의에 묻을수도.
23. 시체의 상태 30미터의 절벽에서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사실상 두부는 거의 파손될 수 밖에 없음. 추락시체 목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도 시체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하는데, 시체의 모습은 '편안히 잠든' 모습이라고 함.
24. 잠바와 등산화 왜 잠바와 등산화는 사망장소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이 되는지? 피가 뭍어 있는 상태라면 사후에 벗겨진 것이라는데. 등산화는 그냥 벗기려고 해도 잘 안벗겨지는 신발인데.. 사후에 그냥 슬리퍼 벗겨지듯이 등산화가 벗겨질수가 있는가?
25. 다른 경호원들의 동향 사고직후 사저내에 있던 다른 경호원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그리고 그들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은? 최초 산에서 무선으로 보고를 받았으면 VIP를 병원까지 옮기기 위해 산으로 뛰어 올라가던지 아니면 산아래에서 접선해서 같이 병원에 가야하는게 최우선이 아닌지?
26. 경의의경의 진술 경비의경이 사저에서 올려다 보니 부엉이바위에 노통이 경호원 둘과 같이 있는 걸 봤다고 진술했다고 OO뉴스에 뜸. 그 뒤로 그 기사가 사라짐.
27. 기자들의 부재 평소 사저주변에는 파파라치 처럼 많은 기자들이 새벽에도 항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음. 특히 마을 뒷산은 사진 앵글이 잘 잡혀서 사진기자들이 상주했던 장소이기도 함. 그러나 권양숙 여사 소환일이었던 사건 당일 사저앞에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었음.
28. 유서내용의 부실성 현학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평소의 어투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쓰고 있음. 특히 평소에 늘 언급하던 부인, 가족(자녀), 국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문맥상 뜬금없이 화장하라는 말을 강조함
29. 경호원의 행동 경호원이 경호대상자 놔두고 담배가지러 갔다 올까요? 라고 물어봄. 경호원을 아는 정토원장에게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함. 하지만 이 두가지 사유도 경호원이 vip를 놓쳤다고 가정하면 모두가 거짓말이 됨 (참고로 위 경호원이 사건 전날 교체된 경호원이라면 정토원장이 경호원을 알아본다는 것도 말이 맞지 않음)
30. 목격자의 부재 그러나 이런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호원들과 경비의경, 유가족, 등산객,정토원등의 목격담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거나 은폐되고 있음. 신변안전확보가 필수적임.
31. 부엉이바위에 관한 대화내용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유래와 부엉이가 사느냐는 질문을 경호원에게 했다고 하는데어렸을적 봉화마을 뒷산에서 살다시피 한 노통이 그걸 전날 새로 온 경호원에게 질문함?실제로 현재 동영상 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의 유래에 관한 설명을 하는 동영상도 있음.
32. 주차장 오보? 사건당일 오전 8시 30분경 생방송 도중 노무현 전대통령의 시신이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다고 방영이내 중간에 고함치면서 차단됨

- CCTV 내역 전부 공개하라
- 경호원의 신상을 안전하고 공개된 곳으로 이동시켜라
- 시신 화장 및 장례를 연기하고, 즉시 사체부검을 실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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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타살 의혹에 관한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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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토 20:53

역시 나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군!친필유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파일유서.그것도 서거 당일날 몇시간 전에 작성.내용은 급조한 것이 확연히 들어나도록 짧고,조잡한데 제목은 길기도 하지! 파일명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영혼에 베인 습관은 변할 수 없는 것!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인터넷을 좋아했어도 나이가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유서를 한글타자로 남겼다는건월드컵 경기를 본 날 야구 꿈을 꿨다는 얘기만큼 독특하군!내가 범죄심리학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죽기 바로 직전 유서를 남기는 자살자들은 99.9% 손목을 긋거나,목을 메지!음독자살을 하거나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유서를 당일날 작성하지 않아!왜냐하면 음독과 투신이란 방법에는 사전준비(약,장소)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가서 뛰어내리는 것 같지?그건 나이아가라 폭포나 금문교 같이 물이 끌어당길 때의 얘기이고 사람은 점찍어 두었던 익숙한 장소로 걸어가게 되어 있어!결국 음독과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사전에 계획했단 얘기이고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는다는 뜻이지!기네스북에 오른다면 가장 긴 유서제목이 되겠군!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르나?만약 진짜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자살하러 나가기 전에 급히 작성한 유서의 제목이라면 그 제목은 분명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였을거야!유서제목이 신기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바람을 대변해주는군!정말 신기한 일이지!유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는데 왜 유서제목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까?세상은 속여도 나는 못속이지!

2009.05.23 토 12:45

그자가 어떤 인생을 살았건,이유가 무엇이건,죽음으로 무엇을 말하고,이루려 했건 자살은 옳지 못한 것이다.게다가 자살이란 선택을 한 당사자가 전직 대통령이라면 그건 더욱 더 옳지 못한 행동인 것이다.무슨 일이건 일어날 수 있으니 세상이다.충격받을 일도 아니고,감싸고 이해해줄 일은 더더욱 아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짜 자살을 했다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으며,책임감이 결여된 비겁한 도피일 뿐이다.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발표를 믿지 않는다.차분히 유서까지 남기고 준비된 자살을 할 사람이 조용히 집에서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뒤로 한 채하필 단 한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뒷산으로 향했다는 얘기는 마치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 바로 앞에 있는 물병뒤에 숨어있던 간장을 마셨다는 얘기처럼 비논리적이다.물론 목이 마를 때에도 물대신 콜라나 우유를 선택할 수는 있다.두명의 경호원을 대동했다거나 조용히 혼자 산에 올라가 뛰어 내렸다면 자살발표를 믿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일기가 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아니다.내 머리가 지금보다 조금 나쁘다면 그렇게 의심하겠지![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동한 단 한명의 경호원] 이란 정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상상을 사전에 불식시킬 역 알리바이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로 얼마전 헬기를 거부했다.노무현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함께 죽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거부한 것이다.그리고 정확하게 한달전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났다.어떤 방향으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예감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그때는 그랬다.아침먹고 멀쩡히 출근했던 가장이 들어올 때는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어제 웃으며 안부 전화를 했던 아들이 오늘 사망했다는 전화가 걸려오던 시절이었다. 다시 역사가 되돌려지고 조만간 최루탄이 컴백하신단다.그때처럼 의문의 죽음이 생겨나는 것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노무현 죽이기' 를 하더니 진짜 죽인 것일까?그런 귀여운 질문은 하지 말아라!답은 나도 모른다 이니... 분명한건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끝까지 살아 남으려면 강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영원히 둘로 갈라져 둘중에 하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만 할 운명인가 보다.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국민에게 불행을 헤쳐나갈 용기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이다.

2009.05.24 일 16:08

역시나 의학적 정황들도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네요!올해 63세의 당신은 일명 자살바위라 일컬어지는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에서 추락했어요!그곳은 30대인 내가 떨어진다 해도 즉사할만큼 위험한 장소이죠!암벽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뛰어 내리지 않아요!인간은 암벽을 보면 반사작용으로 주춤하게 되기 때문에 자살자는 무의식적으로 먼곳을 보면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리죠!그렇게 뛰어내려 바위에 닿는 1차 충격으로 뼈가 부서지면서 장기가 파열되는 거예요!하지만 당신의 직접 사인은 두개골 골절 등 두부의 손상 이예요!즉 당신은 떨어져서 구른게 아니라 구르면서 떨어진 것이죠!스스로 뛰어 내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밀쳤다는 얘기예요!당신은 분명 평소의 트레이드 마크대로 양팔을 위로 들고 손을 흔들다가 뒤에서 미는 충격으로 푸쉬업의 자세로 암벽을 짚으며 굴렀어요!그 충격으로 양팔이 골절된 것이죠!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이 당신을 살게 했지요!스스로 뛰어내렸다면 즉사했을텐데누군가 뒤에서 밀어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암벽으로 부터 최대한 자신을 방어했죠!경호원은 분명 거짓증언을 하는게 아니예요!처음 떨어졌을때 당신은 분명 살아있었어요!의식이 분명했고,경호원과의 대화도 가능했어요!당신의 정확한 투신 시간은 23일 오전 6시 45분이었어요!당신은 멀쩡했고,경호원은 당신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했기에 경호원은 초인적인 일념으로 당신을 들쳐업고 달려 자동차를 이용해 30분만에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한 거예요!여기까지가 1단계예요!문제는 병원을 옮기는 과정이죠!당신은 처음 도착한 세영병원에서 청와대에 보고를 한 직후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23일 오전 7시 34분 까지 당신은 경호원 한명이 부축해 병원을 데려올 수 있을 만큼 멀쩡한 상태였어요!김해의 세영병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시골병원이 아니예요!충분한 의료시설을 갖춘 현대식 병원이죠!그런데 당신은 이상하게도 조금의 의논도 없이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마치 그곳이 당신이 죽어야 할 장소인 것처럼...결국 당신은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부산대 병원 도착 1시간만에 숨을 거두었죠!정말 신기하죠?젊은 사람이 실족을 해도 즉사를 할 만한 암벽에서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하려 뛰어 내렸는데척추등 모든게 멀쩡해서 경호원 한명이 살릴려고 번개처럼 날라다 병원에 모셔다 놓았더니죽지도 않았는데 청와대로 보고부터 하고 당신은 도토리 키재기같이 비슷한 병원으로 응급처치 기능도 없는 조그만 앰블런스에 실려 느릿느릿 옮겨져마치 죽을 장소에 도착한 사람처럼 쓸쓸히 눈을 감았죠!그 나이에 자살하려고 암벽에서 뛰어 내렸는데 어떻게 몇시간 동안이나 살아있었나요?그래요! 당신은 옛날부터 초인이었으니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죠!당신 죽으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군요!요즘 대한민국에 쓸만한 조폭이 없어요!특A급들은 다 연희동으로 갔거든요!대통령씩이나 지냈으면서 당신은 왜 세상을 몰랐나요?그들은 알고 있었는데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갔을 때는 사설경호부대를 운영해야 안전하다는 것을경호원은 분명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만 기억의 퍼즐조각들을 잃고 있어요!선진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당장 최면수사에 들어갈 겁니다.당신의 죽음은 타살일 가능성이 90% 를 넘어요!타살이 아니라 해도 이건 분명 의문사라고 봐야죠!당신이 죽어서 누가 이득이냐구요?그럼 당신이 살아있다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김해세영병원에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40분동안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가요?맘먹고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이 암벽에 머리를 부딪히면 절대 3시간이나 살아 있을 수 없어요!그것도 그 자리에서 당장의 치료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말이죠!풀밭에 떨어졌다 해도 피가 흥건해서 혈흔을 일부러 고생해 찾을 일도 없거니와 투신자살을 한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옮기면 옮긴 사람의 옷에 피가 가득 베이게 마련입니다.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이 품고 있는 블랙박스를 보여주세요!어떤 것이 먼저였습니까?암벽에서 굴러 떨어져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있던 당신.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이 나중 아니었던가요?아니면 머리를 둔기로 맞고 떨어진건가요?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를때 많이 노리는 곳이죠!암벽에서 구른 사람이 왜 하필 머리 위쪽 부분에 11cm 정도의 찢어진 상처를 남겼나요?머리가 찢어지는건 각목으로 맞았을 때이죠!먼저 때리고 암벽에서 굴리는건 조폭들에겐 이미 고전이 된 살해 방법입니다.


2009.05.24 일 05:41

후후후~ 왕거니가 하나 걸렸군!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문사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증거는 바로 경호원이 증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몽고인이 아닌 이상 300미터 밖의 사람을 보고 사람이 지나간다라 말하지는 않지!산에는 나무가 있고,5월은 나뭇잎의 무성함이 절정에 달할 때.아무리 높은 산정상에 서있다 하여도 사람을 보는 것은 바로 밑의 코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곧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바로 아래쪽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는 뜻!
첫째 부엉이 바위의 구조는 뒷편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쪽면으로만 투신이 가능한 구조.결국 그 얘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래를 보며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라고 말을 하면 경호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자 여기선 두가지 상황이 성립되지!먼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벽 가까이로 걸어가면 직책상 요인보다 뒷편에 서있는 경호원은 직분상"각하 위험합니다." 라고 만류하게 되고 (뛰어내리는 것이 불가능 해짐.)다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발걸음으로 이동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간 것이라면이는 100% 경호과실인 것이지!즉 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 내렸다는 증언은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뒷쪽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 다음 그 자리에 앉아 책한권을 읽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야!경호원은 분명 바로 뛰어내렸다고 증언했지!부엉이 바위의 높이는 30미터.30미터 절벽위에서 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저기 지나간다던 그 사람이 그걸 몰랐을리가 없지!봉화산이 서울 시내에 위치한 남산이었다면 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은 겁많은 도시청년일 수도 있지!무서운 생각에 그냥 도망갔을 수도 있어!그러나 경남 김해의 가파른 암벽 및을 꼭두새벽부터 혼자 걸어가던 그 사람이 소심한 여고생일리는 없는 것!30미터 절벽위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는건 전혀 설득력이 없어!
정리하자면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내렸다는 경호원의 증언은 100% 거짓이며,이 경호원이 인생을 종칠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혼자서 노 전대통령을 수행하며 초긴장을 했을 텐데그런 경호원이 달음박질 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면그건 경호원이 노 전대통령을 죽였다는 얘기나 진배없는 것이라는 것!사고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목격자부터 찾는 것은 수사의 기본.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서거 직전 전직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언급한 '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목격자)은 왜 수소문해 찾지 않나?"
어째 일제시대부터 우매한 대한민국 국민들 쉽게 속여가며 권력을 유지해오다 보니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부 닭대가리로 보이던가?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가끔은 돌연변이로 대한민국에 나같은 사람도 태어나는 것이거든차라리 "저기 비행접시가 날아가네!" 라 말하고 경호원을 따돌렸다 주장해라!


2009.05.25 월 15:50

이놈들이 전직 대통령을 폭행 살해하고서 대국민 사기극을 꾸미고 있네!그러나 트릭은 아무리 치밀해도 결국 깨어지게 마련이지!김해 세영병원 손과장이 말한 세영병원의 도착시간은 오전 7시경.경남지방경찰청이 24일 오전 2차 브리핑을 통해 밝힌 노 전 대통령의 투신시간은 오전 6시 45분.양쪽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결국 거짓말은 경호과장이 하고 있는 것이지!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단 20분만에 도착했다는 얘기인데경호과장도 부엉이 바위에서 굴러 내려왔나?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 +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차로 가는 시간 + 차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 = 20분? 절대 불가능 하지!노전대통령이 오전 7시 35분에 김해 세영병원을 출발해 양산 부산대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13분이야!엠블런스에 싣고 도로를 달려가도 40분이 걸리는데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며,놀라서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고가 안나면 다행인 상황에 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그 절반인 20분이 걸렸다고니가 무슨 슈퍼부엉이냐? 아니면 본래부터 죽일 계획이라 심장이 평온했던 것이냐?혹시 너도 고향이 봉하마을이라 세영병원 가는 길을 통달했던 것이냐?아니면 범행전에 미리 동선 코스를 답사해놨던 것이냐?봉하마을 택시기사가 가도 니보다는 느리겠다.결국 답은 하나.최종적으로 일을 마무리한 장소가 부엉이 바위 아래가 아닌 세영병원에서 가까운 장소였다는 뜻이지!
더 간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줄께!거기에 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과장과 노전대통령만 왔던 것이 아니라경호실 차량에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했다고 증언하고 있어!이건 무엇을 증명할까?이동시간이 플러스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사저를 나갈 때는 둘이서만 나갔는데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해서 세영병원에 왔다는 말은결국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싣고 사저에 들러 비서진과 경호팀을 태웠던지,아니면 이과장이 무전을 해서 비서진과 경호팀이 사고장소로 왔다는 뜻이지!어때? 부엉이 바위 꼭대기에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20분이 아니라이 시간만 해도 20분은 걸리지!결국 답은 하나.틀린 그림을 찾았나?그렇지 바로 그거지!노전대통령과 이모과장은 차를 타고 나오지 않았어!즉 이모과장이 무전을 해서 사람들을 불렀다는 뜻이지!다음 과정을 볼까?심장이 멈추도록 만들어 주지!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렇게 발표했지!"수행 경호과장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유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동행한 이과장으로부터 무전을 받은 문 비서관에게 연락을 받은 사저의 박모비서관 이었어!이거 완전한 그림이 나오잖아?이과장은 현장에,박모 비서관은 사저에,그럼 문 비서관은 어디에 있었던 건데?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동시간이 빨랐던 것!)그리고 노전대통령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고 노전대통령의 컴퓨터 바탕화면부터 확인한 박 비서관은 뭐하는 새낀데?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닌가?세상에 어떤 상식있는 인간이 전직 대통령이 암벽에서 추락했다는 무전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부터 확인하나?상식적으로 경호원이라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거 아닌가?방으로 들어가려면 권여사에게 먼저 알렸어야지!처음부터 컴퓨터 조작하는게 임무가 아니라면 어떤 미친놈이 추락했다는 무전받고 노전대통령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부터 확인해?이건 완전히 책을 나눈 조폭들이야!현장(행동대원)조,운송대기조,마무리조.
다시 현장으로 이동해 볼까?너희들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했지!거기엔 노전대통령을 진짜 지켜주려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경비3초소에 있던 순진한 전경 1명이 오전 6시 20분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보고했어!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전경,그리고 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을 보고받은 경호실 요원들이 모두200미터 뒤 30미터 암벽에서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보지도,듣지도 못했다고?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며느리 들인가?
세영병원으로 가보지!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노전대통령은 피범벅 이었어!게다가 피가 많이 묻은 노전대통령의 상의 또한 발견됐지!어머!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노전대통령은 피범벅이 되어 세영병원에 실려오고,노전대통령의 피묻은 상의는 발견이 되었는데어째 현장에서 노전대통령의 혈흔은 하루가 지나도록 발견을 못한거야!아직까지도 어디서 얼마만큼의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정통한 소식이 없네!참 신기하기도 하지?피범벅이 된 사람,피묻은 상의가 벗겨진 사람이 왜 현장엔 그토록 혈흔찾기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답은 하나.노전대통령은 그곳에서 살해된게 아니었기 때문이지!
후후후~ 범인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줄 아는 놈이었지만 법의학 상식이 부족한 놈이었어!암벽에서 추락을 해도 상의는 벗겨지지 않는 단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멍청한 범인은 노전대통령이 이곳에서 굴렀다는 증거를 꾸미기 위해 상의와 등산화 한짝을 이용했지!그런데 바보같은 놈이 상의의 위치를 잘못 잡은 거야!상의는 낙하지점으로부터 11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어!나무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상의가 벗겨져 11미터 밖으로 도망가 버리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왜 11미터 일까?답은 두개야!하나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상의를 던진 것이지!둘은 다른 곳에서 급하게 그 지점에 상의를 갖다 놓느라고 아무데나 놔버린 것이지!
경찰은 상의가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졌을 것이라 말했어!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결국 경찰도 추락하는 동안은 상의가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추락하는 동안에도 벗겨지지 않던 상의가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져?그렇다면 그것은 떨어진게 아니라 일부러 벗긴 것이지!범인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는 이유는 단하나.피해자가 항상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물건을 노릴 때이지!
여태까지 내가 올렸던 모든 추론들을 종합해 볼 때이 사건을 대충대충 넘겨 빨리빨리 끝내기 위해 국민들을 속이려고 하지만미리 서로 입을 맞춘 것이 아니고 사건의 진행동안 변수가 생겼기 때문에여기저기서 말이 어긋나고 있는게 분명해!먼저 노전대통령을 수행한 경호과장의 진술은 100% 신빙성이 없으며그에 따라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23일 오전 6시 45분에 뛰어 내렸다는 부분부터 다시 재고가 되어야 해!일단 떨어진건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게 밀려 떨어진 것인지,아니면 위협을 피해 뛰어 내린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아!분명한건 단 한가지 사실 뿐이야!노전대통령과 이모경호과장이 단둘이 사저를 나갔다는 것!그게 산책이었는지,그 방향이 부엉이 바위였는지,둘이서 밖으로 나간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무 것도 결론을 내릴 수 없어!
개판.수사법이 바뀌어야 해!사건이 일어나면 지방경찰은 국과수가 올 때 까지 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일체의 출입을 금지 시켜야 해!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동네경찰이 수사를 한다는게 말이 되나?정말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다면 사저의 경호원들은 바로 통제에 들어가야지!23일 오전 6시 45분 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들락거리고 사건현장을 오갔나?무개념.그 자체가 이미 범행인거야!


2009.05.25 월 08:32

난 대한민국 경찰의 노력과 양심은 믿지만 실력은 인정할 수가 없어!노력이고 양심이고 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지능이고,실력인거야!미국이나 영국의 수사팀이 와서 조사후 자살발표를 하기 전에는내 홈피에서 만큼은 타살로 잠정 결론 내리겠다.
추리는 상상이 아니라 검증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인과론이야!추론을 음모론이라 칭하는 무식한 나라는 미개한 후진국 한국이 유일하지!내가 가진 최고의 의문점은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마음먹고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 위에서 뛰어 내렸는데과연 3시간 동안이나 특별한 조치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게 가능할만큼 살아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야! (그것도 사인이 두부손상인데 말이야)지금 많은 네티즌들이 가장 의문을 갖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이 추락했으면 척추를 비롯 온몸의 뼈가 다 절단이 났을텐데그런 사람을 어떻게 경호원 혼자 업고 가서 승용차로 병원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그건 아주 간단한 문제야!즉 척추도 온몸의 뼈도 멀쩡했다는 뜻이지!추락해서 절단난 사람을 어떻게 혼자 업고 갔느냐? 가 아니라 멀쩡했으니 혼자 데리고 간 것이지!여기선 두가지 결론이 성립되는 거야!하나는 자살하려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몸을 보호해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둘은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암벽에서 추락한게 아니라는 것이지!봉화산은 경남 김해에 위치한 시골산이지만부엉이 바위는 사저에서 2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알잖아? 당시 사저 주변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특종거리와 볼거리를 노리고 있었는지그런데 30미터 높이에서 먼지가 아닌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어!시골마을 고요한 아침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굴러 떨어져도 그 소리는 상당한 파장력을 소유하지!사람은 자살을 한다 해도 긴 비명은 아니라도 충격으로 인한 단말마의 소리라도 내지르게 되어 있어!아무도 보지 못했고,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덧붙여 새로운 사실 하나가 나왔지!권양숙 여사도 산행에 동행하려 했어!분명 혼자 올라간 남편이 궁금해서 봉화산 쪽을 수시로 쳐다봤을 거야!아니 일부러 쳐다보진 않았다 해도 신경이 봉화산 쪽으로 쏠려 있었겠지!왜 암벽에서 떨어진 사람이 머리가 깨져야지 하필 정수리 부분에 찢어진 상처를 남기나?궁금하면 머리통을 바위에 박아 보라고 과연 정수리가 찢어지나?박은게 아니라 맞은 거야!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것은 어떤 분야로도 논리적인 설명이 안돼!범죄 심리학적으로 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명 몇주전부터 계속 우울한 기미를 보였다고들 증언했어!그런데 유서를 자살하러 나가기 20분전에 남기나?법의학적으로 살펴 볼까? 3백미터 암벽에서 추락해도 점퍼는 벗겨지지 않아! 점퍼가 벗겨지려면 팔을 벌려야 하는데 추락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팔을 웅크린다고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나뭇가지 정도에 걸릴 거 같나?걸리더라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점퍼가 찢어지지!나무에 걸렸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았어야지!나무에 걸려 살아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점퍼를 벗어 버리고 도망치는데 쫓아가서 각목으로 후려쳤다면 말이 되지!지능이 모자라기 때문에 추론이 나오면 소설을 쓴다고 빈정대는 거야!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이번 사건이 얼마나 허술한가를그려 원래 계획대로 죽었어야 하는데 안죽었으니 어쩌겠나?범인은 목표가 어긋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후회가 밀려 오는거야!죽일 사람이 멀쩡하니 최선을 다해 살리는 수 밖에그런데 살아있던 사람이 진짜 죽었어! 언제?청와대에 전화하고 병원으로 이동해서 도착하는 동안에40분전엔 가망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옮기는데40분뒤엔 이미 심폐소생술도 못할만큼 저승사람이 되어 버리나?누굴 바보로 아나?그건 니들같은 닭대가리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것이고죽을 사람이면 세영병원에서 죽게 내비두고 사저의 권양숙 여사한테 먼저 전화를 하는게 순서이고옮겨서 살 사람이 40분만에 송장이 됐다는건 옮기는 40분동안 죽였다는 뜻이지!처음부터 세영병원은 예정에 없던 돌발수였지!암벽에서 추락해도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변수였으니까원래 계획은 암벽에서 추락. 즉사하거나 의식이 없었다면 바로 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그러니까 니가 바보인 것이지!청와대에 중간 보고는 왜 하나?그러니까 니가 똥줄타는 아마추어인 거야!봐라!청와대에 보고를 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완전히 서거한 다음에 하는 것이 정상이지!그게 아니고 그토록 급하게 먼저 해야 했다면 떨어지자 마자 했어야지!세영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는건 뭔가?일이 틀어졌단 얘기 아닌가?마지막으로 내가 여기다 싸인하나 해주지!난 이모과장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 3 의 인물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임무를 완수하면 니놈은 살 수 있을 것 같나?니놈도 삼년안에 죽을테니 두고 보라고그리고 집착해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내가 아무리 베플을 즐겨한다 해도 이런 내용을 공론화 시키지는 않으니까중요한건 어떤 글이냐 하는 것이지,어디에 쓰면 어떠한가?내가 쓴 글은 돌고 도는 동안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엔 들어갈 사람 귀에 다 들어가더라고


2009.05.25 월 03:54

많은 사람들이 고 안재환 씨의 누나를 욕했지만난 안재환 씨의 누나와 타고난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그분이 동생의 불행과 의문의 죽음을 해결할 수 있기를 아직까지 응원하고 있다.
무기력하고 무지하며 가증스런 인간들.그게 한국인들의 공통점이다.국장? 꼴값떨고 있네!자살한 전직 대통령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국장을 치르나?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로 끝나면 노무현의 명예는 없는 것이다.노무현이 죽음으로 누가 이득을 보냐고?노무현이 자살을 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노무현 자신이다.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측은하고,불쌍한 대통령으로 남는 것은 명예가 아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분향소를 찾아가지만 그 눈물과 발걸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국민들이 흘렸던 그 눈물과 발걸음이 아닌 것이다.노무현의 죽음이 서거가 되고 노무현의 명예가 지켜지기 위해선 그의 죽음의 본질적 원인 자체가 격상 되어야지장례형식 따위가 격상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명복은 무슨 얼어죽을허구한 날 명복을 빌면 죽은 사람이 살아오나?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죽은 다음에 눈물 흘리고,아쉬워 하고,명복 빌고 다 부질없고 가증스런 짓거리들이다.진짜 애정은 그런게 아니다.진짜 애정은 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진짜 애정은 떠난 자의 영혼이 잘됨을 비는 것이 아니라 떠난 자의 이름이 잘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진짜 애정은 잊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 하는 것이다.진짜 애정은 분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루트를 답사하는 것이다.사랑은 주먹으로 발로 심장으로 하는 것이지! 세치 혀로 하는게 아니다.장난하나?노무현이 담배 못피워 한맺힌 사람인가?유시민이 대표로 한대 피게 했으면 됐지!뭘 줄나라비를 서서 담뱃불을 붙여놓나?한국인들은 그저 모든게 형식. 오직 같잖은 형식일 뿐이다.
모든 추측을 미루고서 라도 본래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지금이야 공식발표가 나왔지만이 나라는 어찌된게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도 전까지 사람이 죽기만 하면 무조건 다 자살이다.야 이거 진짜 죽어도 한국에서는 죽지 말아야지!나처럼 자살을 혐오하는 사람이 어느날 죽어도 이 나라에선 바로 자살로 종결 처리될 것이다.그리고 지금이라도 절대 자살을 안할 사람들은 미리미리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그건 절대 자살이 아니라고 알려두어라!그래야 당신이 죽었을때 주변 사람들이 자살이 아님을 알거 아닌가?이 나라에선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다간 어느날 억울하게 죽어도 당신은 분명 자살자로 처리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가 죽어도 이토록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지는 않는다.언제 제대로 된 수사라도 한번 해보았는가?이건 완전히 "죽었다. 끝났다." 이다.당연히 죽을 사람이 죽은 것처럼,이미 죽어있던 사람인 것처럼그렇게 지지자들 마저 집단최면에 홀린 듯이 총체적 무지에 빠져 깊은 영혼의 웅덩이를 헤메고 있다.
무기력한거 착한거 아니다.대가리 나쁜거 자랑 아니다.남들하고 똑같이 사는거 올바르게 사는거 아니다.세상에서 제일 못된 새끼들,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새끼들이 바로 음모론을 펴지 말라는 놈들이다.사이버수사대는 인터넷에서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 는 놈들을 전부 잡아다가 조사를 해야 한다.역사는 증명한다."대대로 입다무는 것들 치고 죄없는 놈 없다."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머리가 좋은 죄 뿐!무식한 인간들이 내글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내글이 틀린 글이 되는 것은 아니요,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이명박 대통령은 3년 뒤에 이민갈 계획인가?한나라당은 3년 뒤에 대통령 후보 내세우지 않을 작정인가?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오히려 정부여당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엔 한점 의혹도 없는 객관적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이건 타살이 아니라도 의문사이다.제대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물어보라!예순 넘은 우리 어머니도 노무현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 했다.이 나라엔 젊어도 늙은 놈들,무기력하고 무식하고 착한척 하는 역겨운 위선자들로 가득차 있다.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라면 인터넷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닥치고 명복이나 빌어 줍시다."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놈들 글과 내글은 이미 문장의 레벨 자체가 다르다.사람들이 니놈보다 할일이 없어서 의문을 제기하겠는가?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대충 대충 좋은게 좋은거 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들을 전부 쓸어내야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걱정마라!니가 죽었을 때는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줄 테니...


2009.05.26 화 05:21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아마추어가 노전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제 무덤을 파고 있네!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5일 발표하기를노전대통령이 서거 당일(23일) 정토원에 갔었다고 말을 했네!
대한민국엔 범죄심리학자가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이렇게 완벽한 증거가 나와도 그냥 자살로 처리하고 화장을 해?봐라!정토원이란 곳은 노전대통령이 뛰어 내렸다는 부엉이 바위에서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야!그리고 노전대통령과 경호과장이 정토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 30분.그런데 내가 앞선 글에서 분명히 언급했었지!경비3초소에 있던 전경 1명이 오전 6시 20분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보고했다고그렇다면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자살하는 사람이 일단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정토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부엉이바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렸다고?푸하하하~ 플로리다에서는 그렇게 증언하면 정신병동행이다.자살하는 63세의 전직대통령이 혼자도 아니라 경호원을 대동하고 일단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전경에게 자신이 부엉이 바위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다시 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정토원으로 내려가서 "저 자살하는거 맞습니다." 하고 흔적을 남겨주고또 다시 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뛰어 내렸다고?천만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첫째 자살자가 자살할 장소에 왔다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그곳을 찾아와 자살을 했다는건 범죄심리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얘기이고,둘째 무슨 유격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몸도 안좋았다는 63세의 노인이 험한 산길을 25분안에 왕복했다는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봐라! 오전 6시 20분에 부엉이바위 -> 오전 6시 30분에 정토원 -> 오전 6시 45분에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컨디션도 안좋은 63세의 할아버지가 무슨 바쁘게 자살할 일이 있었나?만약 진짜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왔다 내려가 정토원에 들러 다시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자 말했다면그순간 바보가 아닌 정상적인 경호원이라면 모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거야!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노전대통령을 그대로 절벽가까이 가도록 놔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중대한 경호과실이지!
이 트릭을 깨주지!너희들은 언제나 한명이야!대동한 경호원도 한명,부엉이 바위위에 있는 노전대통령을 목격한 전경도 한명.내가 저번글에 언급한대로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게 아니었어!처음부터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가지 않았어!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위에 가지 않았다면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없어지기 때문에세영병원에 얼마나 빨리 도착했건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지!6시45분에 투신을 했는데 세영병원 도착시간은 7시라는건 도저히 말이 안되지만6시40분에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폭행을 당했다면 세영병원 도착시간이 7시라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것이지!처음 계획은 노전대통령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 버리는 것이었지!그래서 뛰어내렸다는 정황을 만들기 위해 전경 한명이 목격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그런데 변수가 생겼어!자신의 위험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갑자기 정토원으로 발걸음을 돌려버린거야!확실한 공포가 엄습해 올 때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만위험이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 피해자는 싸인을 남기는 법이지!정토원은 노전대통령이 남긴 표식이야!어떡하나? 따라가는 수 밖에!그런데 거기서 부처님의 도움이 계셨지!선진규 정토원장은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자 마자 이렇게 물었어!"무슨 일이 있으십니까?"이게 무슨 뜻인가?사람이 정토원에 찾아오면 그 첫인사를 "무슨 일이 있으시냐?" 로 하는 원장이 세상에 어디 있나?그만큼 무슨 일이 있어보였던거야!그런데 재밌는건 선원장은 자살하려던 노전대통령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던게 아니라따라온 경호원과 눈을 마주친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어!왜 그랬을까? 경호원이 자살하려고 맘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경호원의 눈에서 뭘 느꼈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까?그런데 여기서 경호원의 대답이 해답을 말해주지!무슨 일이 있냐는 선원장의 질문에 경호원은 이렇게 대답했어!"아무 것도 아니다."이게 상식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경호원의 정상적인 대답이라면 "네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였겠지!아무 것도 아니다란 대답은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누가 갑자기 "너 뭐하냐?" 라고 물어오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것이지!한마디로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많은 말을 걸어오지 않기를 바랄 때,빨리 이 상황이 끝나주기를 바랄 때바로 아무 것도 아니란 대답을 하게 되어 있는 거야!
어디까지 연결되고 누구까지 엮여있니?24일 있었던 경찰의 브리핑에선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는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어!경찰이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은폐한거니?그건 아니었겠지!그런데 왜 25일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가 나왔을까?목격자인 정토원 원장님은 매수를 못했기 때문이지!게다가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니 정토원에 들렀다고 발표를 하는게 자살의 당위성을 높여줄거라 착각했던거야!그러나 너희들은 대한민국에도 나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여기가 만약 미국이나 영국이었다면 뒤집어질 일이야!한국에서 권력을 누리는걸 하늘에 감사하고 겸허하게들 살아라!내가 왜 이런 글을 자꾸 올리냐고?자존심이지!내 머리에 대한 자존심.난 내가 억울하게 죽는건 용서해도,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는건 절대로 용서못해!뭘 고개를 갸우뚱 거리니? 미련한 놈아!나를 죽이는 남은 용서해도,속아 넘어가는 내 자신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2009.05.27 수 00:27

하하하~ 어떠니? 핏덩이들아^^몸에 힘좀 있으니 사람 죽이는게 쉬워 보였지?*만한 핏덩이들이 이 넓은 세상에 어떤 잘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깝치고 있네!나원 같잖아서
내가 얘기했지?위협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발길을 정토원으로 돌렸다고거기서 니가 정토원장이랑 눈마주쳐서 버벅대는 사이에 노전대통령이 자살하러 부엉이 바위로 혼자간게 아니라살기 위해 도망을 친 것이지!놓쳐? 뭘 놓쳐?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전을 왜 치나?노전대통령이 자살할 거란걸 미리 알고 있었어? 아니잖아!니가 무전을 칠 그때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때 였어!그런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무전을 왜쳐?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잖아!넌 깜짝놀라 무전을 쳤지?왜 쳤을까?바로 유서를 맡은 놈 때문이었지!난 처음부터 왜 유서가 바탕화면에 떠 있었을까? 생각했어!바로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됐지!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전대통령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을 들어간거야!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그리고 또 한번은 놓쳤다는 무전을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미쳐 유서를 삭제못하고 급하게 컴퓨터도 못끈채 방을 나와버렸지!무전의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넌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전직 대통령이 무슨 범죄자니?니가 쫓아가서 뭔가를 해야할 입장이 아니라면 놓쳤다란 무전은 맞지가 않지!폭행치사가 아니라면 노전대통령의 시신을 일본인 의사에게 정밀검사 하도록 맡겨봐!한국은 독립할 지능이 안되는 나라. 난 일본인 만큼은 믿는다.그래!"놓쳤다", "보이지 않는다" 고 치자!그리고 노전대통령이 널 따돌리고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고 치자!그럼 너는 정말 용한 점쟁이로구나!부엉이바위는 정토원 바로 옆에 있는 바위가 아니야!아무리 봉화산이 뒷산이라도 거긴 서울이 아니지!녹음이 우거진 5월의 시골산에서 200미터나 떨어진 부엉이바위 아래 노전대통령이 쓰러져 있을 줄 넌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것이니?내가 치명타를 날려 줄께!너희들은 한놈이 아니었던 것이지!도망치던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다른 놈과 마주쳤던 거야!바로 등산객이 만났다던 혼자 거닐던 경호원은 니가 아니라 그놈이었지!정토원에서 놓쳤다고 무전을 치던 니가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전대통령을 찾았다는건 말이 안돼!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놈은 부엉이 바위 아래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왜?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버리는게 애초 계획이었으니까 그놈이 거기 있었던건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거야!만약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그런데 도착해야 할 시간에 도착을 안하니 궁금해서 숨어있다 나온 것이지!그래서 등산객을 만나게 된거야!너더러 사람들이 순간이동 했냐고 하더라!어떻게 부엉이 바위에서 세영병원까지 20분만에 노전대통령을 옮기며 도착했는지이젠 답이 나오잖아!처음부터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올 일이 없었고,너흰 하나가 아니었으니까분명 세영병원에 도착했을때 너희들은 한명이 아니었다고 증언이 나왔지!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정신을 잃고 쓰러진 노전대통령의 양발을 붙잡고 배쪽으로 내리 눌렀니?그래서 등산화를 양쪽다 벗겼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노전대통령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겨니?직접사인은 두부손상,그리고 뼈들은 이곳저곳 부러졌는데 신기하게도 장이 파열됐다는 소견은 듣지 못했거든!난 처음부터 의심을 했었지!암벽에서 자살하려 한 63세의 노인이 어떻게 저렇게 오랫동안 숨이 붙어 있을 수 있으며,혈흔 찾기가 힘이 들었을까?니가 한번 30미터 암벽에서 죽기로 마음먹고 뛰어내려 볼래?니몸이 어떻게 되고 추락장소에 혈흔이 얼마나 남나?그래서 니들은 아마추어.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대충 모양새는 유지했는데 장들 파열을 못시키고,뼈들을 분산시키지 못하고,피를 많이 뽑지 못했던거야!하지만 의사들이 바보는 아니야!언제 의사들이 제대로 된 정밀검사라도 할 여유가 있었니?그대로 세영병원에 남아 있었다면 의사들도 의문을 제기했을 거야!그런데 병원을 옮겼지!왜?세영병원은 애초에 목적지가 아니었으니까그런데 왜 세영병원으로 갔을까?엔딩타임 오전 7시 20분을 초과했기 때문이지!원래 계획은 오전 6시 30분에 노전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서 밀어버리고 곧장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그런데 도망친 노전대통령 때문에 시간이 초과되니까 일단 세영병원으로 갔던 것이지!


2009.05.27 수 08:14

어떤 사건의 당위성을 알고 싶다면 시간이 필요하다.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 세상이 변해가는 추이를 본다면 바로 그것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되는 것이다.노 전대통령이 죽음으로 인하여 누가 어떤 이득을 보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라!핵심은 [화해모드] 이것이었다.
노무현 이란 인물은 반기득권(반이명박이 아니다.) 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그런 노무현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이 뒤집어지게 된다면 그건 노무현이 타살을 당했을 때의 얘기이고반기득권의 핵심 인물이 화해의 뉘앙스를 풍기는 유서를 남겨놓고 자살을 했다면그것은 대한민국의 반기득권 세력에게 엄청난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진리는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분노는 마음일뿐!구심점을 잃은 세력은 가장을 잃은 가족처럼 용기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마련인 것이다.그런 상황에서 기득권은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선한세력으로 변모한다.그리고 선택은 없다.기득권이 내미는 손길을 받아드리는 반기득권 세력은 아름답지만 힘이 없는 오합이 되고,기득권이 내미는 손길을 거부하는 반기득권 세력은 강렬하지만 아름답지 못한 무리가 된다.평화를 선택하면 구실을 잃는 것이요,투쟁을 선택하면 뜻(유언) 을 어기는 것이 된다.결국 반기득권 세력은 분열되고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국민장이 끝난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촛불을 들면 말할 것이다."저 새끼들 장례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저 지랄들이야! 노무현도 화해를 바랬는데 저놈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그리고 소설쓰지 말라고 하던 인생낙오자들(무지한 이들이 기득권의 든든한 지지기반임을 알아야 한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여러분 자중합시다. 지금이 시위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람이 아닙니다."노무현의 자살.그것은 반기득권 세력의 족쇄이며,영원한 굴레가 될 것이다.반기득권 세력의 수장 노무현은 세상을 바꿔보려던 죄아닌 죄때문에 기득권의 미움을 받아 무참히 살해되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봉화산의 부엉이 바위.왜 요즘들어 자꾸 부엉이가 사람들의 입에 언급되는 것일까?많은 사람들의 입에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언어는 생명이 되고,기가 되고,운명이 된다.그동안 역사를 만들어 온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언어였다.쥐는 간교함과 음험함의 상징이며 사람들의 곡식을 훔쳐 먹고,전염병을 퍼뜨려 인간들의 세상을 황폐화 시킨다.그런 쥐를 잡아 먹는 새가 바로 부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머지 않아 노무현의 영혼이 부엉이가 되어 쥐를 물어갈 날이 오게 될 것이다.


2009.05.27 수 10:38

나이쓰~ 또 걸렸네!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님 내가 보기에 당신 큰일 나셨어요!아무리 지방경찰이라도 경찰이 기본은 있어야지요!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기자들한테 당신의 추정을 말하면 어떡하자는 겁니까?당신이 무슨 추리소설가예요?내가 당신 추정 깨드릴께요!눈부릅뜨고 똑바로 보세요!
어유~ 그러셨어요?오전 6시17분에 심부름 가셨어요?니미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니가 엿먹는거 보다는 불쌍한 전경하나 골로 보내는게 더 나을거 같았어요?둘이서 사저를 나와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 오전 6시 17분에 너는 정토원으로 심부름 갔는데그럼 사저에 있던 전경이 오전 6시 20분에 부엉이 바위 위에 노전대통령과 경호원이 서있다고 경호실에 보고한건전경이 부엉이 바위 위에 있던 경호원 귀신을 본거네요?당신들이 어떤 임무인지,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안오나 본데요!하다못해 대대급 군부대에서도 시간 칼같이 맞춰 보고 하거든요!그런데 40먹은 경호과장도 아니고 팔팔한 전(이)경이 전직 대통령 본 시간을 4분이나 잘못 보고 했다구요?오전 6시 17분에 심부름을 갔다면 최소한 전경이 본 시간은 오전 6시 16분은 되어야 할거 아닙니까?왜냐하면 돌아서 가는걸 본게 아니라 서있는걸 본거니까!게다가 내가 전경이라도 노전대통령이 바위 위에 서있으면 신기해서라도 계속 구경했을거예요!그래요!오전 6시 45분에 노전대통령이 뛰어 내리는건 못봤다 하더라도 몇분사이에 니가 정토원으로 심부름 가는 것도 못봤을까요?
그거 알아요?무대에 서는 연기자들이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초연은 실수가 많다는거지금 니들이 딱 호흡을 덜맞추고 무대에 오른 초연배우들과 똑같거든요!준비를 더 했어야죠!머리를 더 쓰고,연습을 더 하고,말을 더 맞췄어야죠!
그리고 경남지방경찰청장님 혹시 님 왕따세요?지금 님이 추정해서 기자들한테 말한 내용은 6월 25일 2차 조사에서의 진술내용이구요!이미 그 진술은 6월 26일 3차 조사에서 "등산객이 노 전 대통령에게 위해가 될까 우려해 등산객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오니 대통령이 없어졌다"는 진술로 뒤집어 졌거든요!아! 진짜 나를 짜증나게 하지 말아 주실래요!난 진짜 정의가 죽는건 참아도 나하고 머리싸움 하려 드는건 못참거든요!당신 왜 기자들한테 이미 뒤집힌 2차 조사에서의 진술내용을 그것도 추정으로 말하는 건데요?그 저의가 도대체 뭡니까?그게 아니라면 그럼 한번 뒤집혔던 진술을 다시 뒤집었단 얘긴가요?
아우~ 수준 안맞아 짜증나구요!치명타나 하나 받고 떨어지세요!모두들 두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저를 따라 하세요!"노무현은 불사조"당신들 부엉이 바위 높이도 거짓말로 발표했죠?45미터인데 30미터로 15미터나 낮추어서그러니까 지금 5월 27일 경찰의 최종발표대로 하자면몇일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했던 63세의 할아버지가 45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에서 자살을 마음먹고 뛰어내렸는데 살았다는 거잖아요?게다가 동행했던 경호원은 정토원에 있었으니 추락한 노전대통령은 그대로 30분간을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거잖아요!어머! 노전대통령 외계인인가봐그런데 45미터 높이 암벽에서 추락한 사람의 혈흔을 하루가 넘도록 발견못했어요?이 바보들아 뭔가 뒷통수를 내려치는 후회가 아직도 밀려오지 않으세요?45미터 암벽에서 추락한 63세의 노인이 직접사인이 두부손상인데 30분동안 쓰러져 살아있었고,혈흔은 콩알만큼 나와,게다가 그후 3시간 동안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동안 까지 살아있었다구요?그토록 하늘이 명을 붙잡고 있던 착한 사람한테 왜 그랬어요?
계속 씨부려 보세요!내가 충고하나 해드릴께요!완전범죄는요!범죄자가 딱 한마디만 하는 거예요!그 다음부터는 입을 봉해야 해요!범죄자가 말이 많아지면 그 말중에 다 사실이 드러난다니까요!
한사람은 정토원으로 심부름 갔는데 군생활 열심히 하는 전경이 두사람을 목격했으니그럼 한사람은 심부름 가고,다른 사람이 나타나 죽였구나!얘기를 이리 끌고 가도 타살,저리 끌고 가도 타살.길게 끌지 말고 선진국에서 수사팀 초빙합시다.선진국에서 수사팀 와서 조사발표하면 나도 깔끔하게 수긍하고 입다물께요!그리고 조심하세요!경찰이 확실한 사실이 아닌걸 가지고 언론플레이 잘못하면 나중에 큰일 치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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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6일 화요일

등산객의 증언

25일 새벽 부엉이바위를 등산했던 등산객의 증언.

6시 20분경 경호관을 만났고 20분간 대화하면서 부엉이바위를 등산했다. 그리고
부엉이바위에서 노대통령을 보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경찰에게서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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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도청당하고 있었나?

사는 이야기 2009/05/25 09:33 이충렬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 하신 5월 23일,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든 신문의 웹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그런데 정보기관에 있는 '빨대'가 조선일보사에만 정보를 제공해서 작성된 조선닷컴 '단독기사'를 발견했다...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2&articleid=2009052309140751934&newssetid=470

전문을 소개하면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어 핵심부분만 소개한다...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산행 당시 권양숙 여사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기사 작성자는 '조선닷컴'이었고, 이 내용은 '조선닷컴' 단독이었다... 그리고 6시간 이상 메인화면에 있었고, 많이 읽은 기사 1,2위를 오르락 거렸다....

투신할 때 권양숙 여사가 옆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래서 독자들이, 그렇다면 권 여사는 뭐했나?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정말 '조선스러운' 기사였다...

그런데 이런 특종급 단독기사가 나가면 다른 언론사들은 뒤집어지고, 기자들은 고달파진다....
그래서 타사 기사들은 백방으로 알아봤고, 몇 시간 후 모든 언론에서는 "동행하지 않았다"는 경호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런데도 조선 닷컴은 계속 '동행' 기사를 올려놓고 있었다.... 서거 직후(기사 올린 시간 9시 14분) '동행 사실'을 알려준 '빨대'에 대한 상당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만용적 편집'이었다...

아니, 조선일보사에서는 '빨대'에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빨대'는 틀림없다면서 모종의 확신을 심어줬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닷컴은 '대특종'이라는 확신을 갖고 버텼을 것이고...

그러나 최종 결과는 오보였고, 그 기사는 사라졌다... 이 글을 쓰기 전에 2시간이 넘게 조선닷컴에서 그 기사를 검색해봤지만, 기사 자체를 삭제했는지 아니면 내 눈이 나쁜건지,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포탈 검색에서 찾을 수 있어 다시 확인해보니 내 기억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 기사를 포탈에서도 삭제하고 딴소리 할까봐 복사를 해뒀다....

그렇다면, 상당히 신뢰할만한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일까?
이건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로서는 말이 안되는 실수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보기관에 있는 '빨대'가 조선일보사에다 고의로 거짓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은 1%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정보에 속을 조선일보사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사로서는 확신을 하고 또 확신한 '빨대'의 정보가 틀려 특종이라고 믿었던 기사가 오보가 되어서 개망신을 했으니, 조선일보사뿐 아니라 '빨대'도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선일보사로서는 오보로 인한 망신보다는, 권여사가 동행을 했을때 써댈 수 있던 기사를 쓰지 못한게 분통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바라고 초특급 정보를 제공했던 '뻘대' 역시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빨대'의 '실패한 공작'에 깊은 의문을 갖고 계속 신문들을 살폈는데, 드디어 오늘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사가 '조선닷컴'에 실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4/2009052400775.html

이 기사 역시 전문을 올리면, 조선닷컴에서 저작권 침해로 걸 수 있어 링크를 하고 일부 내용만 소개한다...

"이 조합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던 권여사가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대답했으나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가 버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 한건데...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지는 못하고 듣기만 했다면, 두 분은 같이 산엘 올라간 게 된다....

그런데 조선닷컴은 이미 며칠 전에,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권여사도 동했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기에,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전화가 아니라 사저가 도청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익명의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어떤 정보를 근거로, 서거 직후 조선일보사에 권여사도 동행했다고 알려줬을까?


내 사고의 능력으로는 도청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만약 '빨대'의 제보 시간이 서거 5 ~ 6시간 후였다면 도청이 아니라 경호관계자와의 확인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빨대'는 서거 직후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총알같이 조선일보사에 고해 바쳤다... 따라서 이 정보는 권여사와 함께 있던 사저 내부 경호원들을 통해 나온 정보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통해서 얻은 정보임에 틀림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 중에 이런 글을 쓰는 게 너무나 서글프지만, 이 문제는 장례가 끝나면 국회에서 다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고, 대단히 역설적으로 조선일보사가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그런데 !! 이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국회의원이 정말 있을까? 입들만 살았는지, 실천에 옮기는지 지켜볼 일이다... 아울러 검찰 내부의 '빨대'도 함께 찾아내주길 바란다... 그래야 국민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국회의원이 아니겠는가 !!

<(펌) 허용 글입니다.>
http://blog.ohmynews.com/arts/24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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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 타살 의혹 2

1.

경호원은 최소 3명이상 5명~7명 홀수로 경호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말로 의문을 가진 죽음이다. 경호원들은 새벽 5시가 되면 경호팀들은

조가 편성된 대로 움직인다 특히 밖으로 나와 등산 길에 오를 때는

인원을 증가 시킨다

근데 왜 1명인가?..........그리고 왜 권양숙여사보다

먼저 청와대관계부처에 통보를 했나?

코앞에 있던 사저에도 연락안하고 동료 경호원에게

평소 휴대하던 무전기로 긴급 연락도 안하고??




2.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이름없는 촌부의 죽음도 아니고, 전직대통령의 죽음인데....

어떻게 그 수습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답니까?

모든 언론들이 경찰발표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수긍하고 있습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제대로 된 수사팀도 꾸려지지 않았을텐데도

모든 상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발표되고 있고

언론들은 일점의 의혹도 없이 기정사실로 재확인만 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짱께서는 구천에서 통곡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를 욕하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납득할수 없습니다.


경찰발표로 드러난 사건경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23일 05:20 - 컴퓨터에 유서작성.

2. 23일 05:45 - 경호원1명 대동하여 사저를 나섬.

3. 23일 06:40 -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4. 23일 07:00 - 세영병원 도착 (경호원이 일반승용차로)

5. 23일 07:20 - 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6. 23일 07:35 - 부산대병원으로 후송(엠블런스로)

7. 23일 08:13 - 부산대병원 도착. 심폐소생술 시행.

8. 23일 09:30 - 소생술 중단. 노무현전대통령 서거.



특이사항 - 사고현장(부엉이바위아래)에서 투신충격으로 인한

혈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입니다.

경호원의 입을 빼면, 확실한 사실은 1,4,5,6,7,8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2번과 3번은 오로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일뿐입니다.



1번도 사실로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서라고 알려진 파일이 저장된 시각으로 추정한 추측일뿐이며,

그 파일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된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실로 확인된것은 4,5,6,7,8 뿐입니다.



세영병원도착 -> 청와대보고 -> 부산대병원후송 -> 서거.



이것이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을 배재한 확인된 사실의 전부입니다.

손쉽게 자살로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빈약하지 않습니까?

사고현장이 부엉이바위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사고현장이 아예 봉하마을이 아니라고 해도

경호원 1명의 진술에 의존하는한 문제될것이 전혀없는것입니다.



5월 하순의 농촌에서 새벽 6시경이라면 모두가 잠들어있을 아주 이른시각은 아닙니다. 그 시각에 사저를 나서 뒷산으로 향했다면,

경호원 이외의 목격자가 분명히 있을것입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 이외의 또다른 목격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봅니다.



3.

경찰의 발표에 조그만 한 의혹이 있어서 문의하고자 한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신발과 잠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바위에 부딛혀서 벗겨질수 있다고 본다

그른데 잠바가 벗겨진것은 어찌된 일일까

만약 나무에 걸렸다면 잠바가 벗겨 질수있는데

그럼 피묻은 잠바는 성립이 안되는데

일단은 잠바를 입고 바위에서 뛰어 내려 옷에 피가 묻엇는데

경찰이 업을려니 (?)



무거워서 잠바를 벗기고 갔다가 나중에

그옷을 경찰이 발견하고 가져왔다 이말씀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죽었는데

거기서 죽었음을 확인시키려고 거기서 잠바를 발견했다고 하엿을까

바위에서 뛰어내렸는데 경찰이 옷을 잡아서 옷만 산위에서 남아있었는데



그옷을 경찰이 가져오다가 마침 대통령이 죽었다는그 자리에서 넘어져서

잠바에 피가 묻었을까

경찰의 발표가 실수인지 방송국에서 가짜경찰의 발표를 모르고 한것인지

경찰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 산속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진짜로 무슨 말을 하였을까

미국의 특수무장 특공대가 그 산에 왔을리는 없는데

이해가 안간다

그 산속에서는 무슨일이 진짤 일어난것일까

각하의 잠바에는 왜 피가 묻었을까요

돌아가실 때 입고있던 그 잠바가 벗겨진 이유가 무었일까요

경찰은 그 잠바를 어디서 가져온것일까요



4.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경호원은 추락사 한 사람을 (당연히 뼈가 산산조각 났을텐데)

119 부르지 않고 지가 직접 들어서 지 차에 태워서 동네 병원으로 갔나요?

것도 혼.자.서. 환자를 이송해??

천하무적이시네 그양반,, 온몸이 골절난 사람을 단독으로 옮긴다..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네 ㅉ 저 경호원 출입국조회해보는건 어떨지?

누구한테 사주 받아서 일 저지르고 딴 나라로 토끼는건 아닐까?

청와대 경호원이라면 뭐 이런저런 훈련도 받았을텐데 초딩도 알겠다

누가 온몸 골절난 사람을 들쳐업고 동네 병원가냐고요.

그리고 경호원이니까 무전기 같은거 있겠죠?

그렇다면 왜 사저에 먼저 연락 안하고 이명박한테 먼저 연락했을까

어떻게 이명박이 먼저 알고 권양숙 여사가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늦게 병원에 도착할 수가 있는지..

이게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유서라고 공개된 사진 보니까 (연합뉴스에서 보고옴.)

원래 노무현 대통령님이 쓰시던 글 느낌하고 너무 다른것 같던데요.

보통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뭐 이런식으로 문장 하나하나가 좀 긴 느낌인데

컴퓨터에 남겼다는 유서는 대체 뭐가 뭔지 ...

글도 짤막짤막하니 이게 진짜 노무현대통령이 쓴 글인가

싶을정도로 느낌이 다르던데요.

글고 오전부터 들었던 유서 전문의 내용인 돈문제 깨끗하다

국정이야기 이런거 싹 빠져있고.

유서사진이라고 올린 연합뉴스 장난하나 지금?

그리고 유서 마지막에 있는 화장해달라는 소리가

꼭 부검하지 말아달라는 말같네요.

그리고 어떻게 온몸이 골절되고 두개골이 파손이 되었는데

피를 흘린 흔적이 하나도 없을까요?

왜 그부분에 대해선 언론이나 수사쪽에서 함구하고 있을까요?

제발 이글 퍼뜨려주세요. 삭제되고 있습니다



5.

상식적으로 보자..

자실인지 타살인지 두 가지 경우를 다 놓고 조사를 해야지

뭔가 다 짜고 하는 것이 아니면 언론도 무조건 자살이란다..

경호원이 바위에서 내려가서 들처매고 혼자 병원 후송했다..

상식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그 높이에서 뛰면 몸 다 부서져서

경호원 혼자 못 들쳐 매고 가네

소설 쓰나..

유서도 아무래도 가짜야

컴에 저장된 유서 그런거 조작 가능하지..

명박이 노짱 잡으려다 지 자신한테 불리한 비리 사실 나올가봐 죽인거 같은데

노짱의 서거 사인을 밝혀라

아무래도 자살로 보기엔 상식선에서도 불가능해 보인다


6.

2002년 장기기증 서약하셨다던 분이 화장이라니..... 화장 유언 조작= 증거인멸



7.

한글 파일은 저장을 하면 첫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이 됩니다 그런데 유서의 내용을 밝힌 연합기사에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있더군요.. 이해가 가시나요? 전 안가는데.



8.

첫번째, 경호원이라는 정규 교육을 받으신 분이 누군가가 낙상하여 골절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였다니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저는 체대출신입니다. 체대출신도 기본적인 응급처치 교육을 받습니다. 누가 다쳐서 쓰러지면 척추신경 손상을 우려하여 절대로 환자를 옮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청와대 경호원이 어기고 119를 부르지도 않은채 옮기다니요. 이것은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두번째, 유서가 한글파일로 쓰여진 사실입니다. 유서는 내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이것을 '내'가 썼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지사입니다. 아무리 글씨를 못쓰더라도 한글파일을 이용해서 쓰다니요.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법적효력이 없는 한글파일을 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세번째, 경호원과 같이 동행하던 중 잠시 눈을 돌리게 하고 스스로 자살하셨다?!? 자살할 분이라면 경호원을 동행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는데 혼자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행동일까요?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던 노통인데 경호원이 겪을 심적인 부담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혼자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옆에 있는데 자살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네번째, 이번 사건이 장준하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독재자와 칼을 겨누던 장준하님 역시 산악회에서 산악을 하던 중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정보원의 소행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나 세력입니다. 정권을 뒤집을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어떠한 수(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일이 많았습니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전 노무현 대통령을 조용히 지지하고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써 이러한 논의를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보도되고있는 거의 모든 언론을 믿지 않는 입장으로서 그들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님이 죽기를 기다렸고, 그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연합뉴스가 노무현 대통령님 유서조작설에 대해서 지나치도록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조작설을 크게 떠들지 않았는데도 해명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네요. 참 수상하고도 어지러운 시절입니다.




9.

일반인이 병원에 왔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고 해도 전직 대통령이 그렇게 다쳐서 왔는데.. 당직 서는 의사는 없었나? 그럼 누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며..구급차에 의사가 한 명도 동승을 하지 않았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는 도착하고 보니 심장이 멎어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사망했다..? 그럼 가는 구급차에 아무도 타지 않았다는 얘기? 전직 대통령인데..? 그렇게 심하게 다쳐서 왔는데..?? 의문 투성이입니다...



10.

첫번째로 간단히 뉴스 내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뉴스에서 산까지 올라가는데 40분이나 걸리고 거기서 봉오리까지 올라갔다고 말을 한 것을 언뜻 들었습니다만..

(계산해보면 올라가는데 1시간씩이나 걸림...)

이후 다시 말하길 경호원이 노무현대통령님을 업고 마을까지 가서 경호원 차로 인근 병원으로 가는데 20분 정도

걸렸다고 보도 하였습니다.

보통 혼자 뛰어서 내려오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전직경호원이지만 60~70kg의 사람을 없고 1시간정도나 걸린 그 등산로를 도대체 몇분만에 돌파하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인근 병원이 그리 가깝습니까? 잘못알아서 보도가 그렇게 나온 것일수도 있을수 있지만 이 내용을 토대로 하자면 앞뒤가 전여 맞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자살하신 분들을 보면 주의에게 잘 알리지 않고 자살을 합니다만 어찌 다른 측근도 아닌 자신의 죽음을 경호원 1명에게만 보여 준 것일까요? 그리고 뉴스에서 그 경호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더 되어있지 않더군요.. 말로만 보도하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유서입니다. 그건 일반 시민들도 아는 상식적인 일을 전직 변호사였었던 노무현대통령께서 컴퓨터로

그것도 수정가능한 한글파일로 작성 하셨다는 것... (다들 아시겠지만 컴퓨터 작성 유서는 법적 효능이 없을뿐더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타살후 2여시간만에 유서발견? 그것도 컴퓨터에서? 보통 방을 뒤지거나 친필유서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까? 사망소식과 유서의 발견시간 시간상 너무 타이밍이 좋습니다.(뭐 그럴수도 있겠지요.)



네번째로 사건의 전개와 연결방식입니다. 처음 뉴스보도로만 듣고는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감을 느꼈습니다만...

그가 아침에 등산을 가서 추락후 경호원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고 이여서 유서발견 후 자살이라고 확정.


..................

필적 감정이 되는 자필유서도 아니고,
얼마든 조작가능한 컴퓨터에 작성된 유서다.
노무현이 아닌, 다른 자가 노무현의 유서같이 교활히 작성한 것이라면?
이럴 때는, 자판키와 마우스, 또는 자판키와 마우스를 꽃는 포트 주위에
노무현이 아닌 다른 자의 지문이 찍혀있겠지?
그 당시 즉각 컴퓨터 자판키와 마우스에 대한 지문 감식은 했었나?
감식을 해도, 수술용 고무장갑이나 면장갑을 끼고 했다면 지문이 안나타나겟지.

노무현의 죽음의 비밀은 경호원만이 안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경호원이 하는 말 모두를 그저 진실인양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모두가 명백하게 조사되고 의혹이 없는 상황에서 자살이 단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냉철하지 않으면,
또 사악한 자의 음모에 의해 온국민과 역사가 우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뛰어내리는 순간에 대한 기사 내용도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하면서 경호원의 시선을 돌리고 뛰어내렸다는 말도 있고,
다른 기사에서는
"여기가 부엉이 바위인데 실제 부엉이가 살아서 부엉이 바위인가"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고 이 경호관은 경찰에서 말했다.이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는 것이 이 경호관의 진술이다.---라는 것도 있다.
그 때 수행 경호원이 한 사람이라면 내용도 같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다르다니.

노통이 떨어진후 어떻게 병원으로 이송된건지? 경호원이 노무현이 굴러떨어진 곳까지 뛰어내려가서 업고, 병원까지? 아니면 집까지? 아니면 사저로 전화에서 노무현 사고사실을 알려서?
아님 119로? 나 참
자살인지 타살인지 실족사인지 판단에 가장 기본인 이런 내용도 나오지 않는데
무슨 자살로 단정할 수 있나.

컴퓨터에 적혀진 몇 줄 유서갖고 자살로 단정?

발표되는 유서내용도 여기 저기 조금씩 다르고.
어떤 유서 전문에서는 "난 돈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하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
없기도 하고, 다른 유서전문에서는 또 내용이 다르고, 중구난방

노통 죽음을 그 경호원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했는지?
가장 먼저 안 사람이 다른 경호원? 권양숙 여사? 아님 청와대?
뭔가 중요내용은 숨기는지 명백하지 않다.

결론해서
컴퓨터에 적혀진 유서?
그건 악의만 있으면 누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수행 경호원 조사에서 충분히 가려지지 않는 이상
아직 자살로 단정해선 안될 것이다.

하여튼 언론이나 정부놈들은 하는 짓이 무슨 꼭 토끼몰이하듯이
생각이 좀 모자란 조선눔들을 몰고가는 듯 하구나



[댓글들]

타살인거 같은데요 !!!!!!!!! 왜냐구요? 누구나 조작 가능한 컴퓨터 입력 유서, 그리고 자살하는데 있어서 꼭 그 경호원이 있는 앞에서 해야했을까요? 그 경호원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야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 경호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기위해 꼭 그 앞에서 자살해야했을까요? 의학적으로도 양팔 다발성 골절은 무언가의 저항에 의해서만 나타난다고도 의학계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이거 정말 이상해요 !!!!!!!!!!!!!

그 누가 컴퓨터에 허접하게 유서를 남기겠는가? 노통은 며칠전까지만 해도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결백을 주장하던 중이였다. 그분이 자결을 선택하여야 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조차 없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청와대 경호원의 행적은 둘째문제이다.

납득이 안갑니다. 몇해 전 어느 정치인의 추락사가 자살로 둔갑했던 음모가 있었습니다.

근데 이것만큼은 이해안되는건 최소한 경호교육을 받은사람이라면 실족한사람을 업고 병원에 갔다는것이 우선119 신고후 최소한의 응급처치후 들것에의해 이송이되어야 2차부상을 막을수있는데 뇌,척추,골절 된사람을 들고 뛰었다니 미친놈 아니고서는...하여튼 이해안감

문제는 어찌되었든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현장에서 구급처치를 해야지 경호처 차가 있는 곳까지 업고 간거예요!!

구급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극도로 당황했을 때나 하는 짓을 어떠한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최고의 구급 교육을 받았을 청와대 경호원이 그랬다는 것은 확실히 뭔가가 있어 보이네요.. 현 정부의 언론 플레이로 은근 슬쩍 넘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네요..

정부가 언론플레이 하기는 쉬운 일입니다. 특히 지금 이명박정부처럼 조중동을 끼고 있는 언론에서는요. 어제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타계하신 후 언론은 지금까지 계속 자살아니면 실족사로만 몰고 가고 있더군요. 어느죽음이건 그게 어느모로 보나 자살일 겨우라도 타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는데 이건 처음부터 무조건 자살, 실족사.. 이유가 컴퓨터에 유서가 있다고 해서...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전직 변호사였던 분입니다. 그런분이 자필이 아니면 유서로 인정 않된다는 것도 몰랐을까요. 그리고 컴퓨터에 유서가 있다는걸 너무 빨리 알아냈습니다. 컴퓨터가 켜져있고 유서가 모니터에 바로 보인다면 모를까...

그분의 평소 인품을 고려해봤을 때 자살하려고 했다면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경호원이 겪을 고통과 의심의 눈초리까지도 고려하셨을테니까요. 그리고 굳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구요.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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