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의 글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처음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설마’했습니다.
설마 하던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용서 바랍니다.’ 이렇게 사과드리려고 했습니만, 적당한 계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형님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감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00만불, 100만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정치를 떠난 몸이지만, 제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 지금까지 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것은 피의자로서의 권리였습니다.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피의자의 권리는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가는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 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면목도 없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저는 그 인연보다 그의 자세와 역량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를 더욱 초라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욱 노엽게만 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에게도 동의를 구합니다. 이 마당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사람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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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0일 수요일
정치하지 마라
2009년 3월 24일 밤 노무현 대통령의 글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 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 이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거짓말의 수렁 -거짓말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유권자나 참모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거짓말, 근거 없는 보도, 풍문에 상처를 입고 진실을 밝혀 보겠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곧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보면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차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거짓말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소재로 우스개꺼리를 만들어 웃고 즐기고 돈벌이까지 합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저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양심도 인격도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의 수렁 -돈정치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조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후원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지역을 관리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한참 부족합니다. 원외 정치인의 사정은 참담하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가끔 뭘 먹고 사느냐? 세금은 얼마나 냈느냐? 이런 질문이라도 받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원외 정치인은 둘러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게는 연금제도도 없습니다. 결국 노후는 대책이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샘이 깊은 후원자라도 있는 복이 많은 정치인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어디 많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만 정치를 하는 나라 정치가 과연 잘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언젠가 정치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글로 써볼 작정입니다.-
사생활의 노출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인 일도 정치인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의 자유도 없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골프를 치는 일도 세상 분위기와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실수가 아니라도 실수가 됩니다. 저격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검증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보호의 한계가 너무 모호하여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전투구의 저주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당을 서로 나누어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치는 무너집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독재 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 직장생활도 못하게 했습니다. 야당은 정치는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했습니다. 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인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패자라도 정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라고 싸움이 항상 규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입니다. 욕설, 몸싸움, 거짓말, 중상모략, 뒷조사 이런 악습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 지고 국민들로 부터는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 가난 -좀 막연한 짐작입니다. 이미 그런 처지에 빠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돈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통의 정치인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편이나 관계도 과거와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은 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저의 말대로 정치할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정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자고 권유를 하고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떤 정치인이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변명으로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도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별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 상한다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이야기는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없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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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 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 이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거짓말의 수렁 -거짓말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유권자나 참모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거짓말, 근거 없는 보도, 풍문에 상처를 입고 진실을 밝혀 보겠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곧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보면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차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거짓말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소재로 우스개꺼리를 만들어 웃고 즐기고 돈벌이까지 합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저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양심도 인격도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의 수렁 -돈정치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조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후원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지역을 관리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한참 부족합니다. 원외 정치인의 사정은 참담하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가끔 뭘 먹고 사느냐? 세금은 얼마나 냈느냐? 이런 질문이라도 받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원외 정치인은 둘러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게는 연금제도도 없습니다. 결국 노후는 대책이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샘이 깊은 후원자라도 있는 복이 많은 정치인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어디 많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만 정치를 하는 나라 정치가 과연 잘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언젠가 정치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글로 써볼 작정입니다.-
사생활의 노출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인 일도 정치인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의 자유도 없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골프를 치는 일도 세상 분위기와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실수가 아니라도 실수가 됩니다. 저격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검증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보호의 한계가 너무 모호하여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전투구의 저주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당을 서로 나누어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치는 무너집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독재 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 직장생활도 못하게 했습니다. 야당은 정치는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했습니다. 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인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패자라도 정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라고 싸움이 항상 규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입니다. 욕설, 몸싸움, 거짓말, 중상모략, 뒷조사 이런 악습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 지고 국민들로 부터는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 가난 -좀 막연한 짐작입니다. 이미 그런 처지에 빠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돈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통의 정치인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편이나 관계도 과거와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은 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저의 말대로 정치할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정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자고 권유를 하고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떤 정치인이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변명으로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도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별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 상한다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이야기는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없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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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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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전태일의 분신항거 뒤로 이소선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소선에게 중요한 거는 살아야 할 때 어떻게 살 것이고, 죽어야 할 때 어떻게 죽느냐다.
전태일 이후로 숱한 사람이 소외된 사람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항거하였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이소선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였다.

이소선이 지난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소선은 긴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봉화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냐?”
네다섯 시간은 가야 한다는 말에 이소선은 덕수궁 앞으로 가자한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몸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이소선이 덕수궁 앞 분향소로 가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
“야, 분통이 터져서라도 덕수궁으로 가야겠다. 뭐, 국민장이라고? 지랄한다. 칼로 찔러야만 죽인 거냐? 잘못했으면 조사해서 밝히고 처리하면 되지, 검찰이라는 것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만 새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론 불러 모아놓고 이리 씹고 저리 볶아대는 게 검찰이 할 짓이냐? 이건 죽게 만든 거야. 이명박하고 검찰이 죽게 만든 거 아니냐? 이제 와서 사과도 안 하고 국민장 한다고. 순서가 맞지 않잖아. 말로만 국민장 한다면 다냐? 경찰차로 분향소 똘똘 가로막고, 이게 무슨 국민장이냐. 이명박이 죽게 한 거 먼저 사과하고 시민들 참여할 수 있게 경찰차 치우고 나서 국민장을 하든 시민장을 하든 해야지.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이리 주책없고 도리도 없는 대통령 첨 봤어.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저기 장자연인가 연예인 죽을 때도 진실도 못 밝히는 것들이 만날 죽은 사람 얼굴만 떡 하니 갖다 놓고 씨부리다 말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랄한다고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
이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분향소에 가는 게 맞겠다고 한다. 25일에 이소선은 덕수궁 분향소 고인의 영정 앞에 앉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위에서 한 말보다 더 ‘세게’ 욕까지 덧붙여 말했다. 말을 마치고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나도 잡아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선에게는 가신 님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가득하다. 1987년 옥포 대우조선소 이석규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이소선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하지 않았던가.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사건 때도 마찬가지고.
“이석규 할 때, 노무현 변호사 할 때야, 장지로 출발하기 전에 변호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 2만원을 내가 홀랑 뺏지 않았냐. 변호사니까 돈 없어도 갈 수 있잖아, 하며. 내가 한푼도 없었거든. 장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고성 삼거리에서 경찰이 몰려나오니까, 변호사가 나한테 내가 나가서 알아볼 테니 내 짐 좀 가지고 있으라며 차 밖으로 나갔는데 경찰한테 딸랑 잡혀가지 않았냐. 나는 얼른 산 속으로 도망가고. 나중에 대통령 되고 나서 무슨 기념식에서 만나니까, 이러는 거라.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그래서 대통령님 이런 데서 주책없이 옛날 일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했어. 그라니까 그런가, 하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참 인간적으로 격식 없이 좋은 분이었는데….”
<오도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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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전태일의 분신항거 뒤로 이소선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소선에게 중요한 거는 살아야 할 때 어떻게 살 것이고, 죽어야 할 때 어떻게 죽느냐다.
전태일 이후로 숱한 사람이 소외된 사람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항거하였다. 그 소식을 접할 때 이소선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였다.

이소선이 지난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소선은 긴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봉화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냐?”
네다섯 시간은 가야 한다는 말에 이소선은 덕수궁 앞으로 가자한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몸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이소선이 덕수궁 앞 분향소로 가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
“야, 분통이 터져서라도 덕수궁으로 가야겠다. 뭐, 국민장이라고? 지랄한다. 칼로 찔러야만 죽인 거냐? 잘못했으면 조사해서 밝히고 처리하면 되지, 검찰이라는 것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만 새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론 불러 모아놓고 이리 씹고 저리 볶아대는 게 검찰이 할 짓이냐? 이건 죽게 만든 거야. 이명박하고 검찰이 죽게 만든 거 아니냐? 이제 와서 사과도 안 하고 국민장 한다고. 순서가 맞지 않잖아. 말로만 국민장 한다면 다냐? 경찰차로 분향소 똘똘 가로막고, 이게 무슨 국민장이냐. 이명박이 죽게 한 거 먼저 사과하고 시민들 참여할 수 있게 경찰차 치우고 나서 국민장을 하든 시민장을 하든 해야지. 태일이 떠나고 40년 됐는데,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 이리 주책없고 도리도 없는 대통령 첨 봤어. 언론들도 마찬가지야. 받아 적는 게 언론이냐. 저기 장자연인가 연예인 죽을 때도 진실도 못 밝히는 것들이 만날 죽은 사람 얼굴만 떡 하니 갖다 놓고 씨부리다 말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랄한다고 덩달아 춤만 추고. 이게 언론이냐?”
이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분향소에 가는 게 맞겠다고 한다. 25일에 이소선은 덕수궁 분향소 고인의 영정 앞에 앉아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위에서 한 말보다 더 ‘세게’ 욕까지 덧붙여 말했다. 말을 마치고는 청와대를 쳐다보며 “나도 잡아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선에게는 가신 님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가득하다. 1987년 옥포 대우조선소 이석규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을 때, 이소선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하지 않았던가.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사건 때도 마찬가지고.
“이석규 할 때, 노무현 변호사 할 때야, 장지로 출발하기 전에 변호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 2만원을 내가 홀랑 뺏지 않았냐. 변호사니까 돈 없어도 갈 수 있잖아, 하며. 내가 한푼도 없었거든. 장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고성 삼거리에서 경찰이 몰려나오니까, 변호사가 나한테 내가 나가서 알아볼 테니 내 짐 좀 가지고 있으라며 차 밖으로 나갔는데 경찰한테 딸랑 잡혀가지 않았냐. 나는 얼른 산 속으로 도망가고. 나중에 대통령 되고 나서 무슨 기념식에서 만나니까, 이러는 거라. 엄마는 내 짐 맡아달라니까 혼자 도망가. 그래서 대통령님 이런 데서 주책없이 옛날 일을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했어. 그라니까 그런가, 하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참 인간적으로 격식 없이 좋은 분이었는데….”
<오도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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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9일 화요일
조기숙 前 청와대 홍보수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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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조기숙(前 청와대 홍보수석)
청와대 근무 시절, 권 여사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대통령님과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까지도 대통령님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나나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셔서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는데, 어떤 때는 너무 너그러우셔서 어떤 모습이 진짜 대통령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나의 대답은 비교적 단순했다.
“대통령님은 원칙주의자이시므로 행동원칙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공적인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심하게 꾸지람을 하시지만, 대통령님 개인에게 잘못한 사적인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것 같아요.”
나는 참모들 중, 대통령과의 인연이 가장 짧은 사람이다. 일면식도 없이 언론활동을 하다 부름을 받았으니 대통령과 함께 한 세월이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대통령을 잘 이해하는 축에 들었는데, 아마도 리더들의 성격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의 성격을 진단해서 대통령님과 여사님 앞에서 성격유형을 읽어 드렸을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점을 치는 것처럼 잘 맞느냐며 두 분이 무릎을 치며 크게 웃으셨다.
권 여사님은 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맞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정확한 것 같아요. 옛날에 고시 공부하실 때에는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해도 막 기어가서 난감했는데 대통령님은 괜찮다며 건호를 무릎에 앉히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고시공부를 하셨어요.”
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대통령님의 면모를 그 때 처음 알았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 쓰고 싶지 않다"
한 참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통령님 후보 시절에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TV토론 질문을 미리 얻을 수 있었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주었다며 노무현 후보만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냐고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님께 드리며 이것 보시고 토론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다가 정말로 불호령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당시 대강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후보가 질문을 미리 보든 안보든 그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 TV토론을 잘 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앞으로 다시는 내게 그런 것 가지고 오지 마라.”
크게 꾸중을 들은 참모는 다시는 정정당당하지 않은 일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를 떠나기 한 달 전쯤, 딱 하루 지각한 날이 있었다. 새벽 1, 2시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동이 트기 전 집을 나서야 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하루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침 7시쯤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보좌관은 오전에 아무 스케줄이 없으니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대통령님과 신년사 준비회의가 9시에 있어요.”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해서 내가 곧 떠난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전해 11월부터 떠날 준비를 했던 터라 나는 2006년 1월 말 예정이었던 신년사 준비팀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함께 독회를 하고 연설을 다듬는 일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홍보수석실의 책임자였고 그 일은 우리의 주요업무가 아니었던가.
순간 앞이 캄캄했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불명예를 어찌할 것인가. 실수가 거의 없었던 비서가 왜 하필 그 중요한 회의를 기록해두지 않아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집이 경기 일산이다 보니 아무리 급하게 서둘러도 회의실 앞에 당도하니 15분이 늦었다.
회의 도중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도저히 대통령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먼저 들이 밀면서 대통령과 멀지 않은 좌석에 살그머니 앉았다. 고개는 아래로 숙인 채 살짝 눈만 들어 대통령을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보내셨다. 순간 그 미안함이란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이유
대통령은 참모의 잘못은 크게 꾸짖으셨어도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가끔 여론의 질타에도 참모를 해임하지 않고 감싼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김선일 사건’이 터졌을 때, 전 국민이 분노했고 여론은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일단 사건을 수습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보자고 말씀하셨다. 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드높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어떤 원칙을 가지셨을까?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잘못인 경우에는 인책할 수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남을 질책하거나 용서할 때 사용하는 잣대였다. 개인의 불성실과 불찰로 인한 심각한 과실이 아닌 경우엔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을 일이 아니며, 더구나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모면을 위해 참모를 제물로 삼는 일엔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다.
또 아무리 개인적 실수라 하더라도 공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겠지만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도 그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모면을 위해 책임을 묻는 일에는 대단히 엄격했다.
나의 발언에 대한 수구언론의 왜곡, 물어뜯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처럼 거짓말 한 번 안해 보고 교과서처럼 살아온 사람은 수구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내 발언으로 인해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거나 난감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단 한 번도 질책하신 적이 없었다.
서거하시기 얼마 전에도 내가 대통령을 옹호한 발언이 조선일보의 왜곡으로 대통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공개 카페에 해명 글을 올리자, 실수한 나를 더 위로하셨다.
“나보다 더 아파하는 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참모로 가까이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당신에겐 티끌만큼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아 혹시 오래된 대통령 동지들이 나를 소외시키고 힘들게 할까봐 대통령은 나를 표나게 편애하셨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내가 한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몇 번씩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대통령께 이렇게 외치며 소리 놓아 울고 싶다.
“대통령님 빽 믿고 언론의 비판과 왜곡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었는데, 대통령님 없는 세상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저의 넋과 정신적 지주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 좀 해주세요~.”
대통령은 내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안 오겠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다 상처만 입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통령의 청와대’를 증언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영광이라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빨리 님의 시대를 증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태어나도 대통령님 참모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
[댓글중....]
대선 토론회에서 사전에 질문을 빼냈다가 불호령을 들은 그 참모가 바로 접니다.조기숙 수석이 오래 전에 잊었던 일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2002년 SBS토론회 때 일입니다.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빼내 답변을 준비 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듣고 있었지요.저는 노무현 후보의 성격을 알기에 질문 전체를 빼 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또 당시 이회창 대세론과 방송사들의 보수 경향으로 인해, 우리가 질문을 사전에 빼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당시 담당 PD가 이미 모든 질문을 알고 있던 상대 후보와의 형평성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그래서 일말의 희망을 갖고 담당 PD에게 미리 부탁을 했습니다.“전체 질문이 아니더라고 1-2가지 난해한 질문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그가 방송 시작 10분 전에 질문 하나를 휴대 전화로 알려 주더군요.모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준비한 질문이었습니다.알려 준 질문을 제가 봐도 질문 자체가 난해 하고, 무엇을 물어 보는지 모르겠더군요.그래서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무현 후보에게 넌지시 질문 메모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조기숙 수석 말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습니다.“사전에 질문을 알려 주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알고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상대가 알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정직하게 선거 운동을 해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정직하게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었습니다.그러나 5년 내내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정직성을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았습니다.퇴임 후에는 이명박-검찰-조중동의 파상 공격에 파렴치범으로까지 몰렸습니다.살아있는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그는 결국 자결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엉이 바위 위에서 투신하기 전, 노 대통령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자신의 진심을 몰라 주는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까.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통한의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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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조기숙(前 청와대 홍보수석)
청와대 근무 시절, 권 여사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대통령님과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까지도 대통령님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나나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셔서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는데, 어떤 때는 너무 너그러우셔서 어떤 모습이 진짜 대통령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나의 대답은 비교적 단순했다.
“대통령님은 원칙주의자이시므로 행동원칙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공적인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심하게 꾸지람을 하시지만, 대통령님 개인에게 잘못한 사적인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것 같아요.”
나는 참모들 중, 대통령과의 인연이 가장 짧은 사람이다. 일면식도 없이 언론활동을 하다 부름을 받았으니 대통령과 함께 한 세월이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대통령을 잘 이해하는 축에 들었는데, 아마도 리더들의 성격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의 성격을 진단해서 대통령님과 여사님 앞에서 성격유형을 읽어 드렸을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점을 치는 것처럼 잘 맞느냐며 두 분이 무릎을 치며 크게 웃으셨다.
권 여사님은 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맞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정확한 것 같아요. 옛날에 고시 공부하실 때에는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해도 막 기어가서 난감했는데 대통령님은 괜찮다며 건호를 무릎에 앉히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고시공부를 하셨어요.”
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대통령님의 면모를 그 때 처음 알았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 쓰고 싶지 않다"
한 참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통령님 후보 시절에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TV토론 질문을 미리 얻을 수 있었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주었다며 노무현 후보만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냐고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님께 드리며 이것 보시고 토론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다가 정말로 불호령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당시 대강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후보가 질문을 미리 보든 안보든 그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 TV토론을 잘 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앞으로 다시는 내게 그런 것 가지고 오지 마라.”
크게 꾸중을 들은 참모는 다시는 정정당당하지 않은 일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를 떠나기 한 달 전쯤, 딱 하루 지각한 날이 있었다. 새벽 1, 2시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동이 트기 전 집을 나서야 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하루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침 7시쯤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보좌관은 오전에 아무 스케줄이 없으니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대통령님과 신년사 준비회의가 9시에 있어요.”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해서 내가 곧 떠난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전해 11월부터 떠날 준비를 했던 터라 나는 2006년 1월 말 예정이었던 신년사 준비팀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함께 독회를 하고 연설을 다듬는 일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홍보수석실의 책임자였고 그 일은 우리의 주요업무가 아니었던가.
순간 앞이 캄캄했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불명예를 어찌할 것인가. 실수가 거의 없었던 비서가 왜 하필 그 중요한 회의를 기록해두지 않아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집이 경기 일산이다 보니 아무리 급하게 서둘러도 회의실 앞에 당도하니 15분이 늦었다.
회의 도중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도저히 대통령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먼저 들이 밀면서 대통령과 멀지 않은 좌석에 살그머니 앉았다. 고개는 아래로 숙인 채 살짝 눈만 들어 대통령을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보내셨다. 순간 그 미안함이란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이유
대통령은 참모의 잘못은 크게 꾸짖으셨어도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가끔 여론의 질타에도 참모를 해임하지 않고 감싼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김선일 사건’이 터졌을 때, 전 국민이 분노했고 여론은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일단 사건을 수습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보자고 말씀하셨다. 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드높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어떤 원칙을 가지셨을까?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잘못인 경우에는 인책할 수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남을 질책하거나 용서할 때 사용하는 잣대였다. 개인의 불성실과 불찰로 인한 심각한 과실이 아닌 경우엔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을 일이 아니며, 더구나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모면을 위해 참모를 제물로 삼는 일엔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다.
또 아무리 개인적 실수라 하더라도 공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겠지만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도 그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모면을 위해 책임을 묻는 일에는 대단히 엄격했다.
나의 발언에 대한 수구언론의 왜곡, 물어뜯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처럼 거짓말 한 번 안해 보고 교과서처럼 살아온 사람은 수구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내 발언으로 인해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거나 난감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단 한 번도 질책하신 적이 없었다.
서거하시기 얼마 전에도 내가 대통령을 옹호한 발언이 조선일보의 왜곡으로 대통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공개 카페에 해명 글을 올리자, 실수한 나를 더 위로하셨다.
“나보다 더 아파하는 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참모로 가까이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당신에겐 티끌만큼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아 혹시 오래된 대통령 동지들이 나를 소외시키고 힘들게 할까봐 대통령은 나를 표나게 편애하셨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내가 한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몇 번씩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대통령께 이렇게 외치며 소리 놓아 울고 싶다.
“대통령님 빽 믿고 언론의 비판과 왜곡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었는데, 대통령님 없는 세상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저의 넋과 정신적 지주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 좀 해주세요~.”
대통령은 내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안 오겠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다 상처만 입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통령의 청와대’를 증언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영광이라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빨리 님의 시대를 증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태어나도 대통령님 참모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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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중....]
대선 토론회에서 사전에 질문을 빼냈다가 불호령을 들은 그 참모가 바로 접니다.조기숙 수석이 오래 전에 잊었던 일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2002년 SBS토론회 때 일입니다.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빼내 답변을 준비 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듣고 있었지요.저는 노무현 후보의 성격을 알기에 질문 전체를 빼 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또 당시 이회창 대세론과 방송사들의 보수 경향으로 인해, 우리가 질문을 사전에 빼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당시 담당 PD가 이미 모든 질문을 알고 있던 상대 후보와의 형평성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그래서 일말의 희망을 갖고 담당 PD에게 미리 부탁을 했습니다.“전체 질문이 아니더라고 1-2가지 난해한 질문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그가 방송 시작 10분 전에 질문 하나를 휴대 전화로 알려 주더군요.모 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준비한 질문이었습니다.알려 준 질문을 제가 봐도 질문 자체가 난해 하고, 무엇을 물어 보는지 모르겠더군요.그래서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무현 후보에게 넌지시 질문 메모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조기숙 수석 말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습니다.“사전에 질문을 알려 주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상대 후보는 질문 전체를 사전에 알고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상대가 알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정직하게 선거 운동을 해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정직하게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었습니다.그러나 5년 내내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정직성을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았습니다.퇴임 후에는 이명박-검찰-조중동의 파상 공격에 파렴치범으로까지 몰렸습니다.살아있는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그는 결국 자결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엉이 바위 위에서 투신하기 전, 노 대통령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자신의 진심을 몰라 주는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까.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통한의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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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월요일
2009년 6월 6일 토요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유시민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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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다 라고 얘기 할 때...
"당장 뭐가 잘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뭐가 되기를 바라고 희망을 찾으면 앞이 참 깜깜해 보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 내일 모레 당장 뭐가 잘 될 것이고... 믿을 수 있는 게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이 밤인데...
아직 밤이 열 한 시 밖에 안 됐습니다.. 빨리 날이 새야 되는데...여섯시간은 기다려야.. 날이 샐겁니다.
그러니까 해 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요... 하여튼 그 깜깜한 시기를 견뎌야 합니다.
날이 밝았을 때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밤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보면 지난번 6년전 대통령 선거는 사실 좀 말이 안되는 선거였습니다.
이길수가 없는 선거였는데 이긴 선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987년 선거가 가장 암울한 기억입니다...1987년 12월 17일 밤.. 개표방송 출구조사 나왔을 때...
노태우 후보 압승!! 38% 득표 200만표 차이로 당선됩니다.
참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양김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구로구청 마당에서 부정 투표함이라고 발견된 거... 사람들이 농성할 때...그거 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6월 항쟁 힘들게 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가고 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어 놓으니까...
"그걸 쿠데타 2인자한테 갖다 바치는 국민이 어디있냐?"
국민이 원망스러웠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여야 정권교체도 한 번 했고 그 정권을 5년 더 연장했고...보수정권의 역 정권교체가 일어났습니다.
1987년도에 노태우씨가 당선되는 것을 봤을때 그 절망에 비하면 지금의 절망은 별거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속았을 수도 있고요...저는 낚였다 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조차도 낚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47 대운하에 낚인겁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역정권교체를 너무나도 원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딱 부합되는 인물이 이명박후보아닙니까?
747 대운하 이건 말도 안되는 공약이지만...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지지를 받아
대선 1년 반 전부터 1등해서 대선까지 간 것입니다.
한 시기의 대중의 소망과 판단이 그 쪽으로 움직인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걸 깨고 나올 수 있는 것은 국민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잘되니까 부럽습니다....오바마...
오바마 대통령 될때 여러분 다들 좋아 하셨을겁니다...
오바마 당선 되었을 때 저도 좋았습니다... 미국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우리한테도 희망이 있는거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 국민 대단하다! 저 무명인사를... 4년 전만 해도 전당대회장에서 자리도 못 받아 밖에서 겉돌던... 촌뜨기를...
워싱턴 백악관 가는 길도 잘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미국 국민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벌써 6년 전에 한 겁니다... 자기 국민이 한 것은 우습게 여기고...
광신도니 뭐니 하면서...외국에서 한 건 엄청 띄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이 한 것이 2002년 노사모가 한 것과 똑같은 겁니다...
노사모가 한 것은 일시적으로 갑자기 뭉친거고... 오바마를 만들어 낸 네트워크는 민주당의 오랜된 풀뿌리가 만들어 낸 거고...
그 차이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더 위대하죠~
약체 선수들...연봉 다 합쳐 70억 밖에 안되는 선수를 데리고가서 WBC 결승전 올라 간 게 더 위대하지...
연봉 합쳐 천 몇 백 억되는 선수로 우승한 게 더 값진가요?
아무런 사회적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결집해서 그만한 일을 한 것이 제가 볼 때는 더 대단합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역사의 대단함은 광신도 노빠 이렇게 해서 엄청 비하하면서...
그거 보다 더 늦게 그와 비슷한 것을 한 외국에 대해서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엄청 띄웁니다...
미국대통령한테 잘 보이려 그러는지...
진보는 진짜 좋아서 띄우고... 보수는 잘 보이려고 띄우고... 전부 다 띄웁니다...
한심해 보입니다. 왜 우리는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
지금 미국 행정부에서 하려는 게...참여 정부가 5년 내내 고민했던 내용들입니다...
사람 중심 투자 이런 것들... 국가 비젼 2030....
그거 나왔을 때 대한민국 진보지식인들도 전부 다 발로 밟았습니다...
그거하고 거의 내용이 비슷한 미국의 오바마 경제고문이 쓴 책 이런 건 막 띄웁니다...
왜? 우리나라 것에 대해선 거의 비슷한 기조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의 정책은..
보수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라고 해버리면 모두 다 동조해서 본 척 만 척 하면서...
왜 미국에서 나온 것은 그렇게 띄울까?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부시 8년이 필요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과정이 부시 8년입니다.
이라크 전쟁....911 테러... 아프간 전쟁...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고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Ground Zero가 되게 그 사태를 일으키고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하고 세계를 금융공황으로 빠뜨린 이 모든 것들이 부시 8년동안 일어났고..
그 바탕위에서 오바마가 탄생한겁니다...
그런 8년속에서도 득표율을 보면 53:47... 5% 차이 밖에 안됩니다..
미국 국민이 한 일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8년 동안 그렇게 당하고 그것도 못한다면 미국 국민은 자격이 없는 겁니다.
미국 국민은 민주주의 본산에 해당하는 현대의 민주 국가로서 해야 마땅한 최소한의 것을 한 겁니다. 미국 국민은...
그렇지만 위대한겁니다... 위대한 선택을 준비하는 과정이 부시의 8년이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의 1년 이라는 것은 조족지혈입니다... 아직까지는...
국민 대중이 한번 한 판단을 바꾸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일들이 필요한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명박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30% 미만이라고 해서 판단을 바꾼 게 아닙니다.
지금도 2007년 2008년 대선과 총선의 흐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을 바꾸는 데는 많이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세월 동안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지난 1년동안 벌어진 일들은 별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냐? 그렇지 않습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밤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아침이 오는 게 반갑습니다.
어찌보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침을 간절히 바라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투표도 계속 안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자각이 싹트는 날이 옵니다.
지금은 이 소중한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중은 누가 계몽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합니다.
자기자신의 개인적 집단적 경험을 통해서
또는 개별적 학습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자기 스스로를 계몽해 나가고
자기 스스로 깨우쳐 나가고
자기 스스로 자기 발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담해 보이지만 이것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물대포 쏘고 일요일날 아침에 기자들 잡아가고 그래도
거꾸로 달아 매고 고춧가루 물을 먹이지는 못합니다...
박정희씨나 전두환씨가 대통령 때 했던 일에 비하면 거의 장난감 총을 다루는 수준입니다.
앞으로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휠씬 암담해 보이는 사회현상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희망이 없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 자꾸 밤이 깊어가면 더욱더 찬란한 새벽이 오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짜증내지말고
숨 길게 내 쉬고 길게 들여 마시고
걸어 다닐 때도 천천히 걸어 다니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뛰어 다니면 밤이 길텐데 밤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질긴 놈이 이깁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든 진보의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희망이라는 것도 숨을 얼마나 길게 쉬느냐에 따라서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희망이 있다 라고 얘기 할 때...
"당장 뭐가 잘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뭐가 되기를 바라고 희망을 찾으면 앞이 참 깜깜해 보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 내일 모레 당장 뭐가 잘 될 것이고... 믿을 수 있는 게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이 밤인데...
아직 밤이 열 한 시 밖에 안 됐습니다.. 빨리 날이 새야 되는데...여섯시간은 기다려야.. 날이 샐겁니다.
그러니까 해 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요... 하여튼 그 깜깜한 시기를 견뎌야 합니다.
날이 밝았을 때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밤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보면 지난번 6년전 대통령 선거는 사실 좀 말이 안되는 선거였습니다.
이길수가 없는 선거였는데 이긴 선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987년 선거가 가장 암울한 기억입니다...1987년 12월 17일 밤.. 개표방송 출구조사 나왔을 때...
노태우 후보 압승!! 38% 득표 200만표 차이로 당선됩니다.
참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양김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구로구청 마당에서 부정 투표함이라고 발견된 거... 사람들이 농성할 때...그거 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6월 항쟁 힘들게 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가고 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어 놓으니까...
"그걸 쿠데타 2인자한테 갖다 바치는 국민이 어디있냐?"
국민이 원망스러웠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여야 정권교체도 한 번 했고 그 정권을 5년 더 연장했고...보수정권의 역 정권교체가 일어났습니다.
1987년도에 노태우씨가 당선되는 것을 봤을때 그 절망에 비하면 지금의 절망은 별거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속았을 수도 있고요...저는 낚였다 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조차도 낚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47 대운하에 낚인겁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역정권교체를 너무나도 원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딱 부합되는 인물이 이명박후보아닙니까?
747 대운하 이건 말도 안되는 공약이지만...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지지를 받아
대선 1년 반 전부터 1등해서 대선까지 간 것입니다.
한 시기의 대중의 소망과 판단이 그 쪽으로 움직인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걸 깨고 나올 수 있는 것은 국민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잘되니까 부럽습니다....오바마...
오바마 대통령 될때 여러분 다들 좋아 하셨을겁니다...
오바마 당선 되었을 때 저도 좋았습니다... 미국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우리한테도 희망이 있는거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 국민 대단하다! 저 무명인사를... 4년 전만 해도 전당대회장에서 자리도 못 받아 밖에서 겉돌던... 촌뜨기를...
워싱턴 백악관 가는 길도 잘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미국 국민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벌써 6년 전에 한 겁니다... 자기 국민이 한 것은 우습게 여기고...
광신도니 뭐니 하면서...외국에서 한 건 엄청 띄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이 한 것이 2002년 노사모가 한 것과 똑같은 겁니다...
노사모가 한 것은 일시적으로 갑자기 뭉친거고... 오바마를 만들어 낸 네트워크는 민주당의 오랜된 풀뿌리가 만들어 낸 거고...
그 차이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더 위대하죠~
약체 선수들...연봉 다 합쳐 70억 밖에 안되는 선수를 데리고가서 WBC 결승전 올라 간 게 더 위대하지...
연봉 합쳐 천 몇 백 억되는 선수로 우승한 게 더 값진가요?
아무런 사회적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결집해서 그만한 일을 한 것이 제가 볼 때는 더 대단합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역사의 대단함은 광신도 노빠 이렇게 해서 엄청 비하하면서...
그거 보다 더 늦게 그와 비슷한 것을 한 외국에 대해서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엄청 띄웁니다...
미국대통령한테 잘 보이려 그러는지...
진보는 진짜 좋아서 띄우고... 보수는 잘 보이려고 띄우고... 전부 다 띄웁니다...
한심해 보입니다. 왜 우리는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
지금 미국 행정부에서 하려는 게...참여 정부가 5년 내내 고민했던 내용들입니다...
사람 중심 투자 이런 것들... 국가 비젼 2030....
그거 나왔을 때 대한민국 진보지식인들도 전부 다 발로 밟았습니다...
그거하고 거의 내용이 비슷한 미국의 오바마 경제고문이 쓴 책 이런 건 막 띄웁니다...
왜? 우리나라 것에 대해선 거의 비슷한 기조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의 정책은..
보수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라고 해버리면 모두 다 동조해서 본 척 만 척 하면서...
왜 미국에서 나온 것은 그렇게 띄울까?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부시 8년이 필요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과정이 부시 8년입니다.
이라크 전쟁....911 테러... 아프간 전쟁...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고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Ground Zero가 되게 그 사태를 일으키고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하고 세계를 금융공황으로 빠뜨린 이 모든 것들이 부시 8년동안 일어났고..
그 바탕위에서 오바마가 탄생한겁니다...
그런 8년속에서도 득표율을 보면 53:47... 5% 차이 밖에 안됩니다..
미국 국민이 한 일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8년 동안 그렇게 당하고 그것도 못한다면 미국 국민은 자격이 없는 겁니다.
미국 국민은 민주주의 본산에 해당하는 현대의 민주 국가로서 해야 마땅한 최소한의 것을 한 겁니다. 미국 국민은...
그렇지만 위대한겁니다... 위대한 선택을 준비하는 과정이 부시의 8년이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의 1년 이라는 것은 조족지혈입니다... 아직까지는...
국민 대중이 한번 한 판단을 바꾸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일들이 필요한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명박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30% 미만이라고 해서 판단을 바꾼 게 아닙니다.
지금도 2007년 2008년 대선과 총선의 흐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을 바꾸는 데는 많이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세월 동안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지난 1년동안 벌어진 일들은 별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냐? 그렇지 않습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밤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아침이 오는 게 반갑습니다.
어찌보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침을 간절히 바라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투표도 계속 안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자각이 싹트는 날이 옵니다.
지금은 이 소중한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중은 누가 계몽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합니다.
자기자신의 개인적 집단적 경험을 통해서
또는 개별적 학습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자기 스스로를 계몽해 나가고
자기 스스로 깨우쳐 나가고
자기 스스로 자기 발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담해 보이지만 이것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물대포 쏘고 일요일날 아침에 기자들 잡아가고 그래도
거꾸로 달아 매고 고춧가루 물을 먹이지는 못합니다...
박정희씨나 전두환씨가 대통령 때 했던 일에 비하면 거의 장난감 총을 다루는 수준입니다.
앞으로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휠씬 암담해 보이는 사회현상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희망이 없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 자꾸 밤이 깊어가면 더욱더 찬란한 새벽이 오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짜증내지말고
숨 길게 내 쉬고 길게 들여 마시고
걸어 다닐 때도 천천히 걸어 다니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뛰어 다니면 밤이 길텐데 밤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질긴 놈이 이깁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든 진보의 배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희망이라는 것도 숨을 얼마나 길게 쉬느냐에 따라서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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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금요일
용산참사현장 오늘 아침 철거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40673&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영결식 아침 mb의 경찰과 용역의 만행 - 용산참사현장 강제철거
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치뤄지던 날 아침, 용산에 경찰과 용역이 들이 닥쳤습니다.
아침 7 시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미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말씀의 전례를 하던 중 7시 15분 쯤에 들이 닥친 용역들에 의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용역들이 철거를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은 공무 수행중이라 하였지만 집달관은 집행 명령서를 적법한 철차에 의해 전달하지 않았고, 그저 용역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고, 용역 뒤에 숨어서 이를 웃으며 지켜 보았습니다.
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신부님.
이런 신부님을 용역들이 발과 무릎, 엉덩이로 깔고 뭉개서 진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이를 말리려는 사람들의 손목을 비틀었습니다.
용역에 의해 사람들과 신부님이 법에 보장된 보행의 자유를 침해받고, 용역의 손에 밀려서 바닥에 넘어지고, 짖밟히고,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하자 경찰은 용역에게 모든 것을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신부님 살려달라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소리 쳤지만, 경찰은 모든 것을 용역에게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경철이 자리를 떠나자 용역들은 더욱 강경하게 나오더니 급기야 신부님과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휘둘렀고, 용역 반장은 용역들에게 반항하는 새X들은 다 패버리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민 모두의 시선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에 쏠려있던 날 아침. 용산 철거민들은 또 다시 경찰과 용역의 손에 의해, 경찰의 의도적인 폭력의 묵과 속에서 또 다시 상처 입었습니다.
아침 8시 20분경 약 50분간에 걸친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모두가 몸으로 울었던 아침이었습니다.
P.S-용역분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해 드렸습니다. 공권력의 비호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렇게 고작 한 시간 열심히 일(?)하고 하루 일당 6~7 만원 받는다니 참 고효율, 고소득 직종인듯 합니다.
관련 게시판 링크
http://cafe243.daum.net/_c21_/bbs_download?grpid=1HSOD&fldid=CF79&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4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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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40673&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영결식 아침 mb의 경찰과 용역의 만행 - 용산참사현장 강제철거
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치뤄지던 날 아침, 용산에 경찰과 용역이 들이 닥쳤습니다.
아침 7 시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미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말씀의 전례를 하던 중 7시 15분 쯤에 들이 닥친 용역들에 의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용역들이 철거를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은 공무 수행중이라 하였지만 집달관은 집행 명령서를 적법한 철차에 의해 전달하지 않았고, 그저 용역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고, 용역 뒤에 숨어서 이를 웃으며 지켜 보았습니다.
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신부님.
이런 신부님을 용역들이 발과 무릎, 엉덩이로 깔고 뭉개서 진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이를 말리려는 사람들의 손목을 비틀었습니다.
용역에 의해 사람들과 신부님이 법에 보장된 보행의 자유를 침해받고, 용역의 손에 밀려서 바닥에 넘어지고, 짖밟히고,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하자 경찰은 용역에게 모든 것을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신부님 살려달라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소리 쳤지만, 경찰은 모든 것을 용역에게 맏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경철이 자리를 떠나자 용역들은 더욱 강경하게 나오더니 급기야 신부님과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휘둘렀고, 용역 반장은 용역들에게 반항하는 새X들은 다 패버리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민 모두의 시선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에 쏠려있던 날 아침. 용산 철거민들은 또 다시 경찰과 용역의 손에 의해, 경찰의 의도적인 폭력의 묵과 속에서 또 다시 상처 입었습니다.
아침 8시 20분경 약 50분간에 걸친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모두가 몸으로 울었던 아침이었습니다.
P.S-용역분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해 드렸습니다. 공권력의 비호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렇게 고작 한 시간 열심히 일(?)하고 하루 일당 6~7 만원 받는다니 참 고효율, 고소득 직종인듯 합니다.
관련 게시판 링크
http://cafe243.daum.net/_c21_/bbs_download?grpid=1HSOD&fldid=CF79&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4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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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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