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6일 화요일
노무현 대통령, 도청당하고 있었나?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 하신 5월 23일,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든 신문의 웹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그런데 정보기관에 있는 '빨대'가 조선일보사에만 정보를 제공해서 작성된 조선닷컴 '단독기사'를 발견했다...
[조선일보] 2009년 05월 23일(토) 오전 09:14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2&articleid=2009052309140751934&newssetid=470
전문을 소개하면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어 핵심부분만 소개한다...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산행 당시 권양숙 여사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기사 작성자는 '조선닷컴'이었고, 이 내용은 '조선닷컴' 단독이었다... 그리고 6시간 이상 메인화면에 있었고, 많이 읽은 기사 1,2위를 오르락 거렸다....
투신할 때 권양숙 여사가 옆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래서 독자들이, 그렇다면 권 여사는 뭐했나?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정말 '조선스러운' 기사였다...
그런데 이런 특종급 단독기사가 나가면 다른 언론사들은 뒤집어지고, 기자들은 고달파진다....
그래서 타사 기사들은 백방으로 알아봤고, 몇 시간 후 모든 언론에서는 "동행하지 않았다"는 경호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런데도 조선 닷컴은 계속 '동행' 기사를 올려놓고 있었다.... 서거 직후(기사 올린 시간 9시 14분) '동행 사실'을 알려준 '빨대'에 대한 상당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만용적 편집'이었다...
아니, 조선일보사에서는 '빨대'에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빨대'는 틀림없다면서 모종의 확신을 심어줬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닷컴은 '대특종'이라는 확신을 갖고 버텼을 것이고...
그러나 최종 결과는 오보였고, 그 기사는 사라졌다... 이 글을 쓰기 전에 2시간이 넘게 조선닷컴에서 그 기사를 검색해봤지만, 기사 자체를 삭제했는지 아니면 내 눈이 나쁜건지,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포탈 검색에서 찾을 수 있어 다시 확인해보니 내 기억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 기사를 포탈에서도 삭제하고 딴소리 할까봐 복사를 해뒀다....
그렇다면, 상당히 신뢰할만한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일까?
이건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로서는 말이 안되는 실수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보기관에 있는 '빨대'가 조선일보사에다 고의로 거짓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은 1%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정보에 속을 조선일보사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사로서는 확신을 하고 또 확신한 '빨대'의 정보가 틀려 특종이라고 믿었던 기사가 오보가 되어서 개망신을 했으니, 조선일보사뿐 아니라 '빨대'도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선일보사로서는 오보로 인한 망신보다는, 권여사가 동행을 했을때 써댈 수 있던 기사를 쓰지 못한게 분통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바라고 초특급 정보를 제공했던 '뻘대' 역시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빨대'의 '실패한 공작'에 깊은 의문을 갖고 계속 신문들을 살폈는데, 드디어 오늘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사가 '조선닷컴'에 실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4/2009052400775.html
이 기사 역시 전문을 올리면, 조선닷컴에서 저작권 침해로 걸 수 있어 링크를 하고 일부 내용만 소개한다...
"이 조합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던 권여사가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대답했으나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가 버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 한건데...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지는 못하고 듣기만 했다면, 두 분은 같이 산엘 올라간 게 된다....
그런데 조선닷컴은 이미 며칠 전에,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권여사도 동했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기에,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전화가 아니라 사저가 도청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익명의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어떤 정보를 근거로, 서거 직후 조선일보사에 권여사도 동행했다고 알려줬을까?
내 사고의 능력으로는 도청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만약 '빨대'의 제보 시간이 서거 5 ~ 6시간 후였다면 도청이 아니라 경호관계자와의 확인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빨대'는 서거 직후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총알같이 조선일보사에 고해 바쳤다... 따라서 이 정보는 권여사와 함께 있던 사저 내부 경호원들을 통해 나온 정보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통해서 얻은 정보임에 틀림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 중에 이런 글을 쓰는 게 너무나 서글프지만, 이 문제는 장례가 끝나면 국회에서 다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고, 대단히 역설적으로 조선일보사가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그런데 !! 이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국회의원이 정말 있을까? 입들만 살았는지, 실천에 옮기는지 지켜볼 일이다... 아울러 검찰 내부의 '빨대'도 함께 찾아내주길 바란다... 그래야 국민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국회의원이 아니겠는가 !!
<(펌) 허용 글입니다.>
http://blog.ohmynews.com/arts/24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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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 타살 의혹 2
경호원은 최소 3명이상 5명~7명 홀수로 경호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말로 의문을 가진 죽음이다. 경호원들은 새벽 5시가 되면 경호팀들은
조가 편성된 대로 움직인다 특히 밖으로 나와 등산 길에 오를 때는
인원을 증가 시킨다
근데 왜 1명인가?..........그리고 왜 권양숙여사보다
먼저 청와대관계부처에 통보를 했나?
코앞에 있던 사저에도 연락안하고 동료 경호원에게
평소 휴대하던 무전기로 긴급 연락도 안하고??
2.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이름없는 촌부의 죽음도 아니고, 전직대통령의 죽음인데....
어떻게 그 수습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답니까?
모든 언론들이 경찰발표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수긍하고 있습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제대로 된 수사팀도 꾸려지지 않았을텐데도
모든 상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발표되고 있고
언론들은 일점의 의혹도 없이 기정사실로 재확인만 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짱께서는 구천에서 통곡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를 욕하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납득할수 없습니다.
경찰발표로 드러난 사건경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23일 05:20 - 컴퓨터에 유서작성.
2. 23일 05:45 - 경호원1명 대동하여 사저를 나섬.
3. 23일 06:40 -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4. 23일 07:00 - 세영병원 도착 (경호원이 일반승용차로)
5. 23일 07:20 - 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6. 23일 07:35 - 부산대병원으로 후송(엠블런스로)
7. 23일 08:13 - 부산대병원 도착. 심폐소생술 시행.
8. 23일 09:30 - 소생술 중단. 노무현전대통령 서거.
특이사항 - 사고현장(부엉이바위아래)에서 투신충격으로 인한
혈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입니다.
경호원의 입을 빼면, 확실한 사실은 1,4,5,6,7,8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2번과 3번은 오로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일뿐입니다.
1번도 사실로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서라고 알려진 파일이 저장된 시각으로 추정한 추측일뿐이며,
그 파일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된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실로 확인된것은 4,5,6,7,8 뿐입니다.
세영병원도착 -> 청와대보고 -> 부산대병원후송 -> 서거.
이것이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을 배재한 확인된 사실의 전부입니다.
손쉽게 자살로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빈약하지 않습니까?
사고현장이 부엉이바위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사고현장이 아예 봉하마을이 아니라고 해도
경호원 1명의 진술에 의존하는한 문제될것이 전혀없는것입니다.
5월 하순의 농촌에서 새벽 6시경이라면 모두가 잠들어있을 아주 이른시각은 아닙니다. 그 시각에 사저를 나서 뒷산으로 향했다면,
경호원 이외의 목격자가 분명히 있을것입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 이외의 또다른 목격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봅니다.
3.
경찰의 발표에 조그만 한 의혹이 있어서 문의하고자 한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신발과 잠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바위에 부딛혀서 벗겨질수 있다고 본다
그른데 잠바가 벗겨진것은 어찌된 일일까
만약 나무에 걸렸다면 잠바가 벗겨 질수있는데
그럼 피묻은 잠바는 성립이 안되는데
일단은 잠바를 입고 바위에서 뛰어 내려 옷에 피가 묻엇는데
경찰이 업을려니 (?)
무거워서 잠바를 벗기고 갔다가 나중에
그옷을 경찰이 발견하고 가져왔다 이말씀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죽었는데
거기서 죽었음을 확인시키려고 거기서 잠바를 발견했다고 하엿을까
바위에서 뛰어내렸는데 경찰이 옷을 잡아서 옷만 산위에서 남아있었는데
그옷을 경찰이 가져오다가 마침 대통령이 죽었다는그 자리에서 넘어져서
잠바에 피가 묻었을까
경찰의 발표가 실수인지 방송국에서 가짜경찰의 발표를 모르고 한것인지
경찰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 산속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진짜로 무슨 말을 하였을까
미국의 특수무장 특공대가 그 산에 왔을리는 없는데
이해가 안간다
그 산속에서는 무슨일이 진짤 일어난것일까
각하의 잠바에는 왜 피가 묻었을까요
돌아가실 때 입고있던 그 잠바가 벗겨진 이유가 무었일까요
경찰은 그 잠바를 어디서 가져온것일까요
4.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경호원은 추락사 한 사람을 (당연히 뼈가 산산조각 났을텐데)
119 부르지 않고 지가 직접 들어서 지 차에 태워서 동네 병원으로 갔나요?
것도 혼.자.서. 환자를 이송해??
천하무적이시네 그양반,, 온몸이 골절난 사람을 단독으로 옮긴다..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네 ㅉ 저 경호원 출입국조회해보는건 어떨지?
누구한테 사주 받아서 일 저지르고 딴 나라로 토끼는건 아닐까?
청와대 경호원이라면 뭐 이런저런 훈련도 받았을텐데 초딩도 알겠다
누가 온몸 골절난 사람을 들쳐업고 동네 병원가냐고요.
그리고 경호원이니까 무전기 같은거 있겠죠?
그렇다면 왜 사저에 먼저 연락 안하고 이명박한테 먼저 연락했을까
어떻게 이명박이 먼저 알고 권양숙 여사가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늦게 병원에 도착할 수가 있는지..
이게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유서라고 공개된 사진 보니까 (연합뉴스에서 보고옴.)
원래 노무현 대통령님이 쓰시던 글 느낌하고 너무 다른것 같던데요.
보통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뭐 이런식으로 문장 하나하나가 좀 긴 느낌인데
컴퓨터에 남겼다는 유서는 대체 뭐가 뭔지 ...
글도 짤막짤막하니 이게 진짜 노무현대통령이 쓴 글인가
싶을정도로 느낌이 다르던데요.
글고 오전부터 들었던 유서 전문의 내용인 돈문제 깨끗하다
국정이야기 이런거 싹 빠져있고.
유서사진이라고 올린 연합뉴스 장난하나 지금?
그리고 유서 마지막에 있는 화장해달라는 소리가
꼭 부검하지 말아달라는 말같네요.
그리고 어떻게 온몸이 골절되고 두개골이 파손이 되었는데
피를 흘린 흔적이 하나도 없을까요?
왜 그부분에 대해선 언론이나 수사쪽에서 함구하고 있을까요?
제발 이글 퍼뜨려주세요. 삭제되고 있습니다
5.
상식적으로 보자..
자실인지 타살인지 두 가지 경우를 다 놓고 조사를 해야지
뭔가 다 짜고 하는 것이 아니면 언론도 무조건 자살이란다..
경호원이 바위에서 내려가서 들처매고 혼자 병원 후송했다..
상식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그 높이에서 뛰면 몸 다 부서져서
경호원 혼자 못 들쳐 매고 가네
소설 쓰나..
유서도 아무래도 가짜야
컴에 저장된 유서 그런거 조작 가능하지..
명박이 노짱 잡으려다 지 자신한테 불리한 비리 사실 나올가봐 죽인거 같은데
노짱의 서거 사인을 밝혀라
아무래도 자살로 보기엔 상식선에서도 불가능해 보인다
6.
2002년 장기기증 서약하셨다던 분이 화장이라니..... 화장 유언 조작= 증거인멸
7.
한글 파일은 저장을 하면 첫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이 됩니다 그런데 유서의 내용을 밝힌 연합기사에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있더군요.. 이해가 가시나요? 전 안가는데.
8.
첫번째, 경호원이라는 정규 교육을 받으신 분이 누군가가 낙상하여 골절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였다니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저는 체대출신입니다. 체대출신도 기본적인 응급처치 교육을 받습니다. 누가 다쳐서 쓰러지면 척추신경 손상을 우려하여 절대로 환자를 옮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청와대 경호원이 어기고 119를 부르지도 않은채 옮기다니요. 이것은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두번째, 유서가 한글파일로 쓰여진 사실입니다. 유서는 내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이것을 '내'가 썼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지사입니다. 아무리 글씨를 못쓰더라도 한글파일을 이용해서 쓰다니요.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법적효력이 없는 한글파일을 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세번째, 경호원과 같이 동행하던 중 잠시 눈을 돌리게 하고 스스로 자살하셨다?!? 자살할 분이라면 경호원을 동행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는데 혼자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행동일까요?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던 노통인데 경호원이 겪을 심적인 부담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혼자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옆에 있는데 자살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네번째, 이번 사건이 장준하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독재자와 칼을 겨누던 장준하님 역시 산악회에서 산악을 하던 중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정보원의 소행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나 세력입니다. 정권을 뒤집을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어떠한 수(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일이 많았습니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전 노무현 대통령을 조용히 지지하고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써 이러한 논의를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보도되고있는 거의 모든 언론을 믿지 않는 입장으로서 그들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님이 죽기를 기다렸고, 그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연합뉴스가 노무현 대통령님 유서조작설에 대해서 지나치도록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조작설을 크게 떠들지 않았는데도 해명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네요. 참 수상하고도 어지러운 시절입니다.
9.
일반인이 병원에 왔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고 해도 전직 대통령이 그렇게 다쳐서 왔는데.. 당직 서는 의사는 없었나? 그럼 누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며..구급차에 의사가 한 명도 동승을 하지 않았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는 도착하고 보니 심장이 멎어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사망했다..? 그럼 가는 구급차에 아무도 타지 않았다는 얘기? 전직 대통령인데..? 그렇게 심하게 다쳐서 왔는데..?? 의문 투성이입니다...
10.
첫번째로 간단히 뉴스 내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뉴스에서 산까지 올라가는데 40분이나 걸리고 거기서 봉오리까지 올라갔다고 말을 한 것을 언뜻 들었습니다만..
(계산해보면 올라가는데 1시간씩이나 걸림...)
이후 다시 말하길 경호원이 노무현대통령님을 업고 마을까지 가서 경호원 차로 인근 병원으로 가는데 20분 정도
걸렸다고 보도 하였습니다.
보통 혼자 뛰어서 내려오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전직경호원이지만 60~70kg의 사람을 없고 1시간정도나 걸린 그 등산로를 도대체 몇분만에 돌파하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인근 병원이 그리 가깝습니까? 잘못알아서 보도가 그렇게 나온 것일수도 있을수 있지만 이 내용을 토대로 하자면 앞뒤가 전여 맞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자살하신 분들을 보면 주의에게 잘 알리지 않고 자살을 합니다만 어찌 다른 측근도 아닌 자신의 죽음을 경호원 1명에게만 보여 준 것일까요? 그리고 뉴스에서 그 경호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더 되어있지 않더군요.. 말로만 보도하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유서입니다. 그건 일반 시민들도 아는 상식적인 일을 전직 변호사였었던 노무현대통령께서 컴퓨터로
그것도 수정가능한 한글파일로 작성 하셨다는 것... (다들 아시겠지만 컴퓨터 작성 유서는 법적 효능이 없을뿐더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타살후 2여시간만에 유서발견? 그것도 컴퓨터에서? 보통 방을 뒤지거나 친필유서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까? 사망소식과 유서의 발견시간 시간상 너무 타이밍이 좋습니다.(뭐 그럴수도 있겠지요.)
네번째로 사건의 전개와 연결방식입니다. 처음 뉴스보도로만 듣고는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감을 느꼈습니다만...
그가 아침에 등산을 가서 추락후 경호원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고 이여서 유서발견 후 자살이라고 확정.
..................
필적 감정이 되는 자필유서도 아니고,
얼마든 조작가능한 컴퓨터에 작성된 유서다.
노무현이 아닌, 다른 자가 노무현의 유서같이 교활히 작성한 것이라면?
이럴 때는, 자판키와 마우스, 또는 자판키와 마우스를 꽃는 포트 주위에
노무현이 아닌 다른 자의 지문이 찍혀있겠지?
그 당시 즉각 컴퓨터 자판키와 마우스에 대한 지문 감식은 했었나?
감식을 해도, 수술용 고무장갑이나 면장갑을 끼고 했다면 지문이 안나타나겟지.
노무현의 죽음의 비밀은 경호원만이 안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경호원이 하는 말 모두를 그저 진실인양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모두가 명백하게 조사되고 의혹이 없는 상황에서 자살이 단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냉철하지 않으면,
또 사악한 자의 음모에 의해 온국민과 역사가 우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뛰어내리는 순간에 대한 기사 내용도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하면서 경호원의 시선을 돌리고 뛰어내렸다는 말도 있고,
다른 기사에서는
"여기가 부엉이 바위인데 실제 부엉이가 살아서 부엉이 바위인가"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고 이 경호관은 경찰에서 말했다.이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는 것이 이 경호관의 진술이다.---라는 것도 있다.
그 때 수행 경호원이 한 사람이라면 내용도 같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다르다니.
노통이 떨어진후 어떻게 병원으로 이송된건지? 경호원이 노무현이 굴러떨어진 곳까지 뛰어내려가서 업고, 병원까지? 아니면 집까지? 아니면 사저로 전화에서 노무현 사고사실을 알려서?
아님 119로? 나 참
자살인지 타살인지 실족사인지 판단에 가장 기본인 이런 내용도 나오지 않는데
무슨 자살로 단정할 수 있나.
컴퓨터에 적혀진 몇 줄 유서갖고 자살로 단정?
발표되는 유서내용도 여기 저기 조금씩 다르고.
어떤 유서 전문에서는 "난 돈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하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
없기도 하고, 다른 유서전문에서는 또 내용이 다르고, 중구난방
노통 죽음을 그 경호원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했는지?
가장 먼저 안 사람이 다른 경호원? 권양숙 여사? 아님 청와대?
뭔가 중요내용은 숨기는지 명백하지 않다.
결론해서
컴퓨터에 적혀진 유서?
그건 악의만 있으면 누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수행 경호원 조사에서 충분히 가려지지 않는 이상
아직 자살로 단정해선 안될 것이다.
하여튼 언론이나 정부놈들은 하는 짓이 무슨 꼭 토끼몰이하듯이
생각이 좀 모자란 조선눔들을 몰고가는 듯 하구나
[댓글들]
타살인거 같은데요 !!!!!!!!! 왜냐구요? 누구나 조작 가능한 컴퓨터 입력 유서, 그리고 자살하는데 있어서 꼭 그 경호원이 있는 앞에서 해야했을까요? 그 경호원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야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 경호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기위해 꼭 그 앞에서 자살해야했을까요? 의학적으로도 양팔 다발성 골절은 무언가의 저항에 의해서만 나타난다고도 의학계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이거 정말 이상해요 !!!!!!!!!!!!!
그 누가 컴퓨터에 허접하게 유서를 남기겠는가? 노통은 며칠전까지만 해도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결백을 주장하던 중이였다. 그분이 자결을 선택하여야 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조차 없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청와대 경호원의 행적은 둘째문제이다.
납득이 안갑니다. 몇해 전 어느 정치인의 추락사가 자살로 둔갑했던 음모가 있었습니다.
근데 이것만큼은 이해안되는건 최소한 경호교육을 받은사람이라면 실족한사람을 업고 병원에 갔다는것이 우선119 신고후 최소한의 응급처치후 들것에의해 이송이되어야 2차부상을 막을수있는데 뇌,척추,골절 된사람을 들고 뛰었다니 미친놈 아니고서는...하여튼 이해안감
문제는 어찌되었든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현장에서 구급처치를 해야지 경호처 차가 있는 곳까지 업고 간거예요!!
구급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극도로 당황했을 때나 하는 짓을 어떠한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최고의 구급 교육을 받았을 청와대 경호원이 그랬다는 것은 확실히 뭔가가 있어 보이네요.. 현 정부의 언론 플레이로 은근 슬쩍 넘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네요..
정부가 언론플레이 하기는 쉬운 일입니다. 특히 지금 이명박정부처럼 조중동을 끼고 있는 언론에서는요. 어제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타계하신 후 언론은 지금까지 계속 자살아니면 실족사로만 몰고 가고 있더군요. 어느죽음이건 그게 어느모로 보나 자살일 겨우라도 타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는데 이건 처음부터 무조건 자살, 실족사.. 이유가 컴퓨터에 유서가 있다고 해서...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전직 변호사였던 분입니다. 그런분이 자필이 아니면 유서로 인정 않된다는 것도 몰랐을까요. 그리고 컴퓨터에 유서가 있다는걸 너무 빨리 알아냈습니다. 컴퓨터가 켜져있고 유서가 모니터에 바로 보인다면 모를까...
그분의 평소 인품을 고려해봤을 때 자살하려고 했다면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경호원이 겪을 고통과 의심의 눈초리까지도 고려하셨을테니까요. 그리고 굳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구요.
아고라
.
노무현 대통령 타살 의혹
처음엔 충격에 멍했고.....밤에는 현실이 느껴져 한없이 슬펐다....
그런데.....지금은 많은 의문이 들고 있다....
1. 왜 유서를 워드로 썼을까? 난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 컴퓨터는 100% 조작가능하다...내가 배운 바로는 컴퓨터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컴퓨터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절대 컴퓨터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로그파일이 남지만 로그파일도 조작 가능한 것이 컴퓨터다. 노무현대통령 컴퓨터에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문서 하나 만들어 올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다. 자살을 앞둔 유서를 워드로 쓸 인간이 과연 있을까? 그것도 노무현대통령이? 그것도 겨우 14문장 이라니...유서 내용에도 많은 의혹이 들지만 일단은 유서를 워드로 쓴게 너무나 마음에 걸린다....게다가....쓸 말이 많아서....길게 쓰면 워드가 편하긴 하다... 근데 그까짓 몇자 되지도 않는걸 워드 작성 한다는게....웃기다...본인이 썼다는 증거가 있나? CCTV로 노무현대통령이 워드 작성하는 장면과 시간이 저장 시간과 일치하는 사진이 없다면 조작의 의혹이 있다. 정말 워드로 썼다면 왜 워드로 썼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다못해 출력해서 싸인이라도 해야 하는것 아닌가..워드로 썼다해도..그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2. 왜 1인하고 동행했나? 2인1조가 기본이라면서...그것도 위험한 산길을 가면서? 막말로 그 경호원이 저기 사람 지나가네....하고 노무현대통령이 보는 사이에 밀었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게다가 요즘 우울해 했다면서 특히나 더 여럿이 신경쓰면서 조심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3. 그 경호원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의 신분은? 그와 노무현대통령의 관계는 어떠했나? 그는 언제부터 경호했는지? 왜 그사람 혼자만 나선건지...언론에서 밝혀 주길 바란다... 노무현대통령 시계 1억짜리 받아서 논에 버린 그딴 별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거 말고..
그는 노무현대통령의 마지막을 본 1인이다....
4. 사건현장 훼손 문제...
왜 용산철거 사태처럼....현장을 치웠는가? TV에서 보니까 어떤 아저씨가...잠바를 그냥 손으로 집어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던데..... 일단 테이프 치고 현장 보존이 기본 아닌가? 대통령이 사고로 떨어진 현장인데... 그것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사고이든 간에 말이다...
5.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대처에 대한 의문점들
노무현대통령이 떨어진 이후....보통 119에 연락해서 기다리지 않는지....그것도 대통령이 추락했는데...
TV에 보면....등산하다가 떨어진 사람들은....다친 사람을 직접 옮기지 않고.... 외부에서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들것, 부목 등이 준비된 구급 요원들이 와서 헬기 등을 이용해서 병원으로 후송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추락했는데 (자살이든 타살이든 사고이든) 왜 헬기가 오질 않았나? 동네 병원으로 어떻게 후송했나? 교육받은 경호원이 설마 업고 뛴것은 아닐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인데..
처음 떨어지고 나서 병원으로 가는 최초 과정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이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6시 40분 추락...7시 10분 세영병원도착...7시 35분 세영병원 출발...8시 15분 양산병원 도착으로 알고 있다....6시 40분 추락 후.....7시 10분까지....어떤 과정이 있었는지가 모두 밝혀 져야 한다.....119에 신고는 되었는지..등등..다시 양산병원으로 옮길때는 왜 헬기를 부르지 않았나? 7시 30분에 세영병원을 나와서 8시 15분에 양산 병원에 도착했다는데...그럼 무려 45분을 길에서 보냈다는 얘기? 이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인가?
6. 일부러 인적이 드문 부엉이 바위를 선택했다고 한다.....사자바위는 사람이 많아서 선택하지 않은걸로 보인다고 하는데...죽는 장소는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 없는것 아닌가? 한강 다리에서 죽는 사람들은 사람이 없어서 죽었나? 사람 많아도 죽는데 상관없다..오히려 사람이 없는 곳은 죽이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닐지....
자살 하려면 아무도 없을때 혼자서 죽던가....차라리 목격자가 많도록 여럿이 있을때 죽었을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그 경호원이 의심을 받을 것을 생각해서 경호원 혼자 있을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건장한 경호원 1명과 본인....둘이 있는 시점에서 그런 일이 일어 났다는 것은...너무나 수상한 점이 많다...
7. 유서의 내용이 왜 최초 보도와 달라졌나? 나도 MBN에서 낮1시~2시 쯤 최초 보도되는 내용을 보고 들었을 때...돈에 대해선 깨끗하다...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그런데 왜 그 내용은 쏙 빠진건가? 뭔가 지시가 내려져서 그런것 아닌지..
8.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서 가장 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일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너무도 급작스럽고 황망해서....일단은 책임의 칼날이 이명박과 검찰을 향하게 되어 있다...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의 수사가 거의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고....곧 발표만 남았다고 하던데...그럼 금방 그의 무죄가 밝혀 질 순간이었다... 또한 박연차 게이트...천신일 등...이명박과 관련한 사건이 커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다 덮이게 됐다... 수사를 덮어야 만 할 필요를 느낀 사람은 노무현대통령이었을까? 이명박 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는것이....장기적으로는 이명박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노무현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왜 그의 죽음과 유서는 매치가 되지 않는가? 그가 죽음으로서 무엇이 밝혀 질 수 있단 말인가? 일단은 이명박에게 칼날이 향하겠지만..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작년에 촛불시위가 그랬듯이..그러면 눈에 가시같은 노무현도 없애고...게다가 그는 불명예 스럽게 죽었고.....사건도 다 덮었다....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다...
9. 그렇다면 타살의혹?
유서가 자필아닌 워드다...경호원 1명 수행....인적이 드문 곳에서 떨어짐...떨어지고 나서 응급조치가 수상함
죽음으로써 박연차,천신일 사건종료의 명분 얻음.. 노무현은 불명예 죽음..
*. 미네르바 사건을 보면서.....말도 안되는 조작을 해서 억지로 우기고 시멘트로 발라 버리는 것이 이명박 스타일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말도 안되고 억지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라를 파탄 내서라도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노무현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렇다면....우리가 끝까지 이뤄내야 할 것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10억사건을 덮는 것이 아닌....검찰들이 끝까지 그 사건을 마무리 해주었음 하는 것이다. 어차피 이제 발표만 남았다 하니...더 이상 조사할 것도 없쟎은가..
또 사고당시의 ...모든 의문에 대한 수긍이 가능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끌어내는 것이다...
추가로 드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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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까운 큰병원들 다 놔두고.....왜 그 먼 산골짝 출장소로 이송했나?
세영병원->농협중앙회 양산부산대학병원 출장소....언론에서 말하는 뉘앙스처럼 큰종합병원이 아님
( 다음 지도 검색 결과 농협중앙회 양산부산대학병원출장소로 나옴)
세영병원->김해중앙병원까지는 21분..(엄청 큰 종합병원임)
세영병원->농협중앙회 양산부산대학병원출장소 1시간 10분 (농협중앙회에 붙어있는 간이병원)
게다가 가는 길(10번 고속도로)에 경유할 수 있는 병원들이 우글우글 한데다가....길은 오로지 그거 하나인데... 왜 우글거리는 병원들을 지나쳐서 그 먼곳까지 가야했나?
시간은 다음 지도에 나오는 자동차 이동시간임...
[댓글들]
다른것은 몰라도 대통령 변호사까지 역임하신분이 자필이 아닌 워드로 자기의 생을 마무리 하시면서 워드로 유서를 썼다는것이 너무나 황당합니다
의문은 또 있습니다. 사고 직후에 당연히 제일 먼저 연락해서 사고 소식을 전해야 할 권여사님에게 바로 연락하지 않았는가?(청와대로는 7:20경에 연락이 갔다고 하는데)만일 즉시 연락을 했다면 왜? 그렇게 늦게 병원으로 달려가셨을까? 6:40 경에 추락하셨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시각이 7:10 경이라면 봉화 마을에서 인근 병원까지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라는 얘기 같은데... 그런 비보를 접하고 집에서 지체하셨을 리는 없고...
권여사님이 양산 병원에 도착하신 시간이 8:15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8:30경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고 하고...
하물며 산에서 발목을 삐어도 구급차가 와서 부목까지 해서 고이 눕여 가는데 의심투성이입니다.
갑자기 뛰어내렸다고 했는데 그럼 등산복 입고 뛰어내린거 아닌가?등산복 발견이라니, 또 등산화는 머지? 이건 뻔하자나요 안그래요?산밑에 사람들은 누구죠?봉화마을 사람들, 아님 외부사람들? 외부사람이라서 등산복과 등산화를 발견했나요? 그리고 경호관은 산밑으로 내렸왔을때 시간은 얼마걸렸나요? 통화기록도 조사해야 해요 그리고 병원이송 시간은 아~이상해 이상해
제일 말이 안되는 것은 추락환자를 우리나라 최고의 경호기관인 청대대 경호실 소속의 경호원이 구급차 없이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고의 구급 교육을 받았을 그 경호원이 업어서 자가용으로 병원으로 옮겼다?? 진짜 이렇게 했다면 그 경호원은 어찌 보면 살 수 있었을 환자에게 2차 손상을 일으켜 사망을 유발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구급법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렇게 환자를 응급실에 데리고 오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돌아가신 분만 결국엔 불쌍한거죠..ㅠㅠ
저도 너무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발성골절이 있었으며 두상에 11센티의 상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출혈또한 많았을진데 어찌 그리 경호원이 혼자 업고 안고 산에서 뛰어서 자기차를 태워서 병원까지 갈수있나요?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 병원보다 가까운 집을 놔두고 자가용으로 태워 간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산에서 내려서 병원까지 30분이 결렸다는데 그럼 산에서 노대통령을 업고안고 날아내려왔다는 걸까요? 내참!!!
이글만보면 정황상 100% 타살이네요. 이거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라면 정말 마음아프면 끝나지만 만약 타살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비통하고 꼭꼭꼭 반드시 밝혀야합니다.
저도 왜 양산 병원을 갓는지는 정말 의문이드네요.. 제가 마산 살고 친구때문에 진영을 자주갔었는데.. 마산 삼성병원도 20분 거리 밖에 안되는데.. 왜 그리루 갔지..?? 처음 뉴스 듣자 마자 바로 들엇던 의문이었어요.. 특히 고속도로 이용하면 ic 통과하고 딱 3분정도면 바로 마산에서 제일 큰 삼성병원입니다.
추락한 사람을 들쳐업고 뛰어다니고, 일반 승용차로 후송했다는건.....이건 중학교만 나와도 죽으라고 한 짓이라는것 압니다
왜 가족보다 개박이가 7:20분에 위독하다는 보고를 제일 먼저 받았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내려진 '진상을 파악하라'는 지시....뭘 파악하라는거지? 목숨이 완전히 끊어졌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라는건가? 진상파악...이라는거 이상하지 않아요?
병원에 후송하고 난 다음이라도 반드시 가족에게 연락이 가야하는 상황 아닌가? 쥐대가리 아이큐가 아닌다음에야
병원 후송과정이 정말 너무 이상하네요....옆에 있는 큰 병원을 다 지나쳐서 멀~리 있는 출장소 병원으로 갔다? 완전히 죽을때까지 시간을 번듯한 느낌...살떨립니다...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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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0일 화요일
건설 재벌이 용산에서 한 일을 알고싶다
국제빌딩 주변 도시환경정비구역 조감도 (용산구청, 2004)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 참사는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을 경찰 특공대가 과잉 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극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건설재벌과 부동산 소유자들이 더 많은 개발이익을 누리기 위해 세입자들의 알토란같은 재산을 사실상 빼앗는 탐욕이 드러난다. 용산구청과 용역깡패, 경찰 특공대가 세입자들을 짓밟고 폭력으로 내쫓은 것도 건설재벌과 부동산 소유자들의 개발이익을 보장해주거나 일부를 나눠가지려는 행위였다.
용산참사에서 건설재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참사를 빚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63-70번지 ‘국제빌딩 제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용산 4구역)의 시공은 삼성물산, 포스코, 대림 등 3대 건설재벌이 맡고 있는데, 이 가운데 주간사를 맡고 있는 삼성물산이 가장 많은 시공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 등 건설재벌은 자신들은 아직 철거가 끝나지 않아 공사를 시작도 못했기 때문에 용산참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용산참사 현장은 건설재벌 총출동한 초대형 개발공사 한복판
우선 참사가 일어난 용산 4구역이 어디인지를 보자. 2004년 1월 용산구청 자료 ‘21세기 희망찬 새용산 - 용산 개발현황’을 보면 서울역에서 한강에 이르기 까지 16개 개발지역이 망라돼 있어 말 그대로 초대형 개발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알짜배기 개발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즉 용산역세권 개발이다. 150층 빌딩 건축 등 사업비만 28조원에 달하는 탓에 엄청난 개발이익이 걸린 탓에 GS, 현대산업개발, 포스코, 금호, SK, 두산, 롯데건설 등 웬만한 건설재벌은 다 참여하고 있으며 주간사를 맡고 있는 삼성물산이 주도하고 있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역세권 개발 사업에서 삼성물산이 한 개 기업이 얻는 이익은 시공이익을 포함 무려 1조4천억 원에 달한다.
국제업무지구 뿐 아니라 16개지역 개발을 놓고 건설재벌간에는 피 튀기는 수주전쟁이 벌어졌는 데, 이 지역 중 국제빌딩 주변 개발은 규모가 큰 개발지역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4구역이 가장 크다. 삼성물산은 포스코, 대림과 함께 사업비 2조원 규모의 4구역 시공도 맡고 있는데 시공사들이 받는 시공비가 6천억 원에 달한다.
.용산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철거를 앞둔 5층 건물 옥상 농성장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의 과잉진압이었지만, 참사의 현장은 대한민국에서 내놓라 하는 건설재벌들이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노리고 총출동한 초대형 개발사업의 한 복판이었던 것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용산구청, 2004)
하루 500만 원 손해 보는 용역깡패?
그렇다면 삼성 등 건설재벌은 아직 철거도 끝나지 않았고 자신들이 맡은 시공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사가 일어난 용산 4구역에서 그동안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보도를 종합하면 건설재벌은 일찍부터 움직였다. 국제빌딩 주변 개발계획은 2002년 말 구청에서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용역에 착수하고 2003년 말부터 공람 공고를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2003년 6월 삼성물산 등은 용산 4구역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던 일부 주민들에게 입찰 보증금 명목으로 현금 10억 원을 송금하는 등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2007년 10월 삼성물산 등 건설재벌이 용산 4구역 공사를 6천억 원에 따낸 것도 경쟁입찰도 거치지 않은 채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건축비도 부가세를 빼고 513만 원에 달해 국토부가 정한 평당 400만 원 보다 100만 원이 비싸게 책정됐는데, 상세내역도 공개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등은 땅과 집, 건물주인들이 구성한 조합측에 이주비는 물론 운영비까지 빌려주었고, 심지어 200억 가까운 이자를 건설재벌이 부담하는 등 사실상 일찍부터 재개발 공사 비용과 추진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그 뿐 아니다. 이번 참사의 큰 원인이 됐던 강제철거와 용역깡패들의 폭력도 건설재벌과 무관하지 않다. 2007년 10월 조합과 철거업체가 맺은 계약서에 따르면 2008년 6월30일까지 철거를 끝내지 않으면 하루에 510만원씩 철거업체가 배상을 하도록 돼있으며, 이것이 철거시한에 몰린 철거업체가 용역깡패를 동원해 무리하게 강제철거를 밀어붙인 이유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철거업체, 삼성 등 건설재벌 통해 선정”
그런데 <시사인> 2009년 2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용산 4구역 철거업체 두 곳은 모두 삼성물산, 포스코, 대림 등 건설업체를 통해 선정되었다. 이 중 한 업체인 효○건설은 삼성물산이 재개발 사업을 하는 서울 종암동‧석관동‧길음동‧마포‧아현동의 철거를 도맡아 한 곳으로 업계에서는 “삼성 임원이 효○건설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다. 심지어 효○건설이 전남 목포의 조직폭력배 ㅅ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재개발 지역에서는 삼성이 낀 철거업체의 용역깡패가 독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뿐만 아니라 삼성 등 시공사는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의 이주 및 철거를 최초 이주비 지급일로부터 8개월 이내에 시공사의 책임 하에 완료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철거업체와도 공사감독관으로 철거 방해 행위에 대한 예방 및 배제 활동을 포함한 철거 전반에 대한 관리 위임을 받아 철거 진행 상태를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밝혀졌다.
보도를 종합하면 철거작업은 2008년 6월에 끝나야 하고, 시공사의 공사 착공은 2009년 2월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철거가 늦어지면서 51억에 맺은 철거비를 다 토해내야 할 처지에 몰린 철거업체는 2월로 예정된 착공 이전에 끝내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제철거를 밀어붙였고 결국 경찰 특공대까지 불러들인 끝에 1월20일 참사로 귀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재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모든 상황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건설재벌이 용산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재벌이 신규 분양 중심의 신도시 건설이나 이미 상당수의 분양자를 갖고 시작하는 재개발 재건축을 가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자 건설재벌은 서로 미분양 위험이 적은 재개발 재건축 물량을 놓고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물산의 경우 이미 주택수주 물량의 90%를 재개발 재건축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수주 경쟁은 대부분 상위 재벌건설사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08년 8월 기준으로 서울의 80개 뉴타운, 재개발 지구에서 건립될 주택 중 75%를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등 다섯 개 건설재벌이 수주했으며, 특히 공동수주를 포함해 삼성물산이 확보한 물량이 전체의 32%에 달한다고 한다.
철거민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의 집단 참사를 빚은 용산 참사가 재개발에 뛰어든 건설재벌의 거대한 돈벌이 한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 결코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보통 3∼4년 걸리는 재개발 사업이 1년여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철거민 농성에 테러진압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는 등 용산 4구역 재개발의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보이지 않는 손’ 건설재벌의 영향력으로 일어난 것은 아닌가. 용산참사 뒤에서 건설재벌이 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속 시원하게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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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은행이 쉬쉬하는 진짜 경제학 : 똑똑한 돈
드디어 오늘(2월 10일 화요일)부터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서 나선님과 제가 쓴 책이 발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고 계신 만큼 충분한 욕구를 충족시켜 드리고자 최선을 다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일부터 여러분에게 다가갈 책 "똑똑한 돈(Smart Money)"에 대한 소개를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도대체 경기침체가 어느 시기까지 계속될지, 언제쯤 회복될지,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돈>은 바로 이런 물음에 해답을 주고자 하는 책입니다.
<똑똑한 돈>은 현재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신용팽창과 신용수축이라는 경제주기의 큰 그림 속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왜 생기는지, 앞으로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그리고 각 시기, 특히 지금과 같은 디플레이션 시기에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제1장 ‘돈의 역사’ 에서는 우리가 벌고 쓰고 좋아하는 돈이 진정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경제의 흐름과 이 사회의 매트릭스를 이해하고, 내 돈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 지식이 될 것입니다.
제2장 ‘경제주기의 주범―신용 사이클’ 에서는 정부의 통화정책과 화폐 시스템이 신용팽창과 신용수축을 통해 어떻게 자산의 가격을 바꾸고, 경제주기를 만드는지 설명합니다. 현재의 디플레이션이 왜 일어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3장 ‘경제지표 바로보기’ 에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경제지표들과 그 참된 의미를 소개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현재 경제주기의 어느 순간에 있으며, 추세의 변화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제4장 ‘정부정책과 경제공황’ 에서는 디플레이션 자체보다도 정부나 중앙은행의 그릇된 대응이 불러온 경제공황과, 지난 대공황 시기의 실패한 정책들이 주는 교훈을 살펴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보고, 그를 바탕으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자산을 지키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5장 ‘혼돈의 시대에 자산 지키기’ 에서는 진짜 가격을 보는 방법을 통해 여러분의 자산을 지키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비교 가격을 통해 큰 추세를 읽는 방법과 경제 회복기를 파악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제6장 ‘정직한 돈, 정직한 마음’ 에서는 엄청난 신용 버블과 안이했던 금융 시스템으로 인한 지난 인플레이션 시기를 반성하며, 궁극적인 해결책인 정직한 돈을 위한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점쳐 봅니다.
현재의 극심한 경기침체가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의 중앙은행과 정부들의 잘못된 통화정책과 금융 시스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안다면, 쓸데없는 절망과 비관에서 벗어나 앞으로 있을 경제불황을 잘 준비하고 대응하며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왜 이런 일이 생겼나?
― 경제주기의 큰 그림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소개
이 책은 현재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신용팽창과 신용수축이라는 경제주기의 큰 그림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잘못된 금융 시스템으로 인해 빚(신용)으로 부풀려진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통해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울러 이 디플레이션이 최소 2012년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합니다.디플레이션이 왜 일어났는지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전체의 큰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미래의 퍼즐이 맞추어진다
필자는 현 시기를 과도한 부채(신용)로 인한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소개하면서, 부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기존 부채가 청산되고, 경제구조가 재조정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지난 대공황 시기 정부의 정책과 그 부작용을 소개하면서, 현재 각국의 금리인하, 금융권에 대한 통화량 주입 등의 리플레이션 정책들은 결국 실패할 것이며, 더 큰 폭락을 가져올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각국에서 환율 불안, 보호무역주의 팽배 등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난 대공황 시기 정부의 정책과 그 영향을 알면 섣부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상황의 변화를 예측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개인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필요한 것은 기다림, 인내심, 헤지 투자다
세계 각국의 금리인하, 통화공급, 윤전기로 돈 찍기 등 리플레이션 정책들로 인해 주식,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 상승할 수 있지만, 그 이후 폭락할 수 있으며, 이는 지난 대공황 시기에도 나타난 현상이므로 섣부른 투자를 자제하라고 경고합니다. 비교 가격으로 진짜 가격을 보는 방법을 통해 자산을 지키는 방법과, 경제 회복기를 파악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아울러 디플레이션 시기에 적절한 헤지 방법을 소개합니다.극심한 경기침체와 짧은 리플레이션이 혼재한 시기에, 독자들이 단기간의 투자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과 추세를 통해 자산을 지키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경제의 흐름을 보는 눈
― 꼭 알아야 할 주요 경제지표와 그 참된 의미
경기침체, 경기호황을 알 수 있는 주요 경제지표를 소개합니다. 한국의 경제지표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요 경제지표와 그 참된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경제지표를 가려내고,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 세계 경제 동향을 미리 알고, 자산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가 회복되는 시기의 신호를 일찍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그래서 한국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한국인의 시각으로 세계를 본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부족하여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고, 생산 능력에 비하여 내수 시장이 크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수출에 의존하는 소규모 국가 경제는 지금과 같은 극심한 세계 경제침체의 시기에 커플링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경제, 특히 미국이나 중국 경제 상황 및 미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국내 집필 경제서로는 드물게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해석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아울러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와, 한국인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6. 다양한 도표, 사진, 그래프로 일반인들의 눈에 쏙쏙
이 책은 경제주기의 해석, 다양한 자산 가격의 변동 등을 다채로운 도표, 사진, 그래프를 동원하여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다우, 나스닥, 국채금리 · 기준금리 등의 여러 금리 지표, 환율 · 금 · 석유 등 각종 원자재 지표 등, 한국과 세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자료, 사진과 그래프들은 독자의 경제를 보는 시각을 넓혀 줄 것입니다.
7. 불필요한 비관론에서 벗어나서 디플레이션과 싸울 힘을 줍니다.
디플레이션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상할 수 있다면, 디플레이션에 대한 극심한 공포, 불필요한 비관론에서 벗어나서 두려워하지 않고 자산을 지키며, 참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차례
제1장 돈의 역사
1. 돈의 탄생
돈의 탄생은 노동의 분업과 특성화의 시작이었다
2. 돈의 역사 = 권력의 역사
역사상의 권력자들은 화폐가치를 조절하여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경제를 파탄시켰을까?
3. 돈의 역사 = 세금의 역사
실제적인 물물교환 가치와는 상관없는
신용화폐가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4. 돈의 역사 = 신용부채의 역사
신용화폐의 역사는 어떻게 반복되었는가?
5. 돈의 역사 = 독점의 역사
부는 소리 없이 어디로 이동할까?
6. 인류의 마지막 실험과 실패
그들의 실험이 실패했을 때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은?
제2장 경제주기의 주범 — 신용 사이클
1. 가격의 결정 — 돈과 물물교환
임금은 별로 안 올랐는데, 왜 물건/서비스/자산의 가격은 팍 올랐을까?
2. 통화량과 가격의 결정
통화량은 어떻게 증가하고, 자산의 가격을 어떤 순서로 변화시킬까?
3. 이자율의 파라독스
“은행은 지구 전체뿐만 아니라 플러스 5%를 더 원한다.”
4. 빚과 돈, 신용창출의 메커니즘
왜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을수록 시중의 돈은 사라질까?
5.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조절
왜 주기적으로 경기 붐–침체 사이클과 공황 사이클이 오는 걸까?
6.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무슨무슨 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많지만,
대부분 필요 없는 말이고, 핵심은 딱 두 개의 단어이다.
7. 경제의 사계절
지금은 디플레이션의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디플레이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제3장 경제지표 바로 보기
1. 흥미 위주의 경제기사
경제기사 역시 수요/공급이다
2. 경제기사 반대로 이해하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왜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까?
3. 금융 세계화와 세계 경제 연동
‘It’s a small world.’
4. 경제지표의 참된 의미
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 경제지표는?
5. 통화량을 말해주는 지표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렸을까?
6. 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자율 지표
돈은 얼마의 가격에,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7. 외화 수급을 보여주는 지표
우리나라는 왜 세계 경기 동향에 더 민감할까?
8. 경제성장률의 착시 현상
경제성장률 집계에는 어떤 모순이 있을까?
9. 기타 주요 경제지표
경제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타 주요 경제지표는?
제4장 정부정책과 경제공황
1. 신용팽창의 끝, 신용 리부팅
대공황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2. 중앙은행의 정책과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정책은 때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3. 무의미한 논문들과 천재들의 실패
‘헬리콥터’ 버냉키의 시도는 성공할까?
4. 리플레이션 시도
리플레이션 시도의 끝은 어디인가?
5. 정부와 중앙은행의 두려움
미국 국채는 왜 ‘마지막 버블’이라고 불릴까?
6. 수요와 공급의 붕괴
왜 구매자의 파업이 계속되는가?
경기회복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는?
7. 미국 대공황기의 뉴스 헤드라인
시장은 바보와 천재 모두의 희망을 계속 짓밟았다.
제5장 혼돈의 시대에 자산 지키기
1. 이자율과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금리를 인하하면 통화량이 늘어나 경기가 살아난다고?
2.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
중앙은행의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일까?
3. 주식의 추세선 그리기
가격 결정에서 중요한 통화량과 신용팽창의 추세를 읽으려면?
4. 진짜 가격 보기 — 비교 가격
돈이 어느 섹터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5. 불-베어 마켓 사이클
다음 시기 불 마켓을 견인할 기관차는 어느 섹터에서 나올까?
6. 베어 마켓의 섹터 회전
베어 마켓에서 각 섹터의 하락 순서, 그리고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7. 원자재 및 석유 가격과 주식
스마트 머니의 발자국을 탐색하라!
8. 다우 이론
추세를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9. 디플레이션 헤지
디플레이션 시기에 돈은 어디로 흐르는가?
10.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헤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되면 주식과 부동산이 오른다고?
11. 헤지로서 금, 금의 미스테리
과연 금이 인플레이션 시기의 헤지 수단일까?
12. 금의 향방Quo Vadis Gold?
금에 헤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13. 거짓 정보와 시장 개입
하락기에 미디어와 정부,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정보를 왜곡할까?
14. 한국의 아파트 가격과 화폐가치/인플레이션
시장에서 인정하는 수준까지 하락은 계속된다.
15. 디플레이션 시대에 한국인이 주목해야 할 경제지표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제6장 정직한 돈, 정직한 마음
1. 포스트모던 사회가 주는 가상가치
가상가치인 돈, 좌절, 그리고 희망
2. 경제적 자유와 정직한 돈
우리의 자산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3. 세계 단일통화 시도와 예상되는 실패
원칙은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다.
4. 금융권의 정권교체
아무리 마녀사냥을 해도 추세는 이미 정해져 있다.
5. 시장이 정하는 이자율
이번에도 바보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거품이 생길까?
6. 부채와 정부의 역할
시장이 원하는 것은 투명한 정보다.
7. 불필요한 비관론에서 벗어나야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번에도 인류는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8. 새롭게 시작하는 자산 지키기
중요한 것은 기다림, 인내심, 헤지 투자다.
이책을 쓰는 내내 하루라도 빨리 많은 사실을 여러 독자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많은 경제 현상들이 그들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소중하게 벌었던 재산을 지켜갈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읽어가면서 과거의 흐름을 대비하여 생각해보고, 이와같은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혜안을 갖는데 작지만 큰 도움을 드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많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미쳐 나선님과 제가 보지 못했거나 포함시키지 못했던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하실 때마다 질책과 격려로 우리에게 힘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고맙습니다.
나선/상승미소드림
블로그는 http://blog.daum.net/riskmgt
메일은 honbee@nate.com 입니다.
2009년 2월 6일 금요일
미네르바와 정보당국의 미묘한 침묵
FOR YOUR EYES ONLY ...
위의 도장이 찍혀있는 문서는 제1급 극비문서라는 뜻이다. 복사는 커녕 지정된 장소 외에는 원본이 절대로 유출될 수 없고 단지 문서 감독관의 입회 아래 잠시 열람만 할 수 있는 문서. 그것은 결코 법적 증거물로 사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근거한 어떠한 정보나 행위 또한 불법이 된다. 아예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사실. 70년이 지난 후에나 역사의 뒷이야기로 겨우 공개될 수 있을 자료, 미네르바가 이런 극비문서와 같은 존재라면, 지금 현재 대한민국 떡찰과 수구언론이 벌리고 있는 미네르바의 진실게임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춰야 할 진실마저 이미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의 소동은 재미없는 삼류 코메디가 된다.
대한민국을 한동안 꿈꾸게 했던 아고라의 미네르바는 어차피 서버 하드디스크 상의 바이너리 전기신호로만 존재한다. 사이버라고 불리우는 그 공간에서는 어떠한 정보도 오직 가상이다. 모든 기록은 완전히 조작될 수 있으며 조작된 사실 마저도 조작될 수 있는 완전범죄가 가능한 곳. 진실은 그러므로 미네르바를 처음 만났던,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하여 그의 글을 만났던, 아니... 그렇게 만났다고 믿고 있는 여기 저기의 네티즌들, 그들의 추억 속에만 잃어버린 사랑 편지의 한 귀절처럼 남아 있다.
아무도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없고 진짜 미네르바 자신도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였는지 증명할 수 없다. 아고리언들은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그저 느낄 수만 있다.
"정보당국"이 (진짜) 미네르바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처음 보도한 것은 지난 해 11월 11일 매일신문이었다. 미네르바는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증권사에 다녔고 또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라고 소개되었으며, 그가 활동을 중단했기에 "정부와 청와대는 이 문제에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과 또 "이후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협박까지도 신문은 친절하게 덧붙였다. 나는 그 이후 개인적인 루트를 통하여 "정보당국"이 파악한 (진짜) 미네르바가 (진짜) K임을 들었고, 그에 따라 동년 동월 21일에 "정부와 청와대"는 (진짜) 미네르바에게 결코 손대지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였다. 나의 경고는 정상적인 정보 수집과 분석의 능력이 있는 정상적인 정보기관이 내릴 수 있는 결론과 당연히 일치할 것이다. 즉 "정보당국"은 미네르바에 관한 모든 것을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여론과 정책수행을 위해 유익하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당국 관계자"가 미네르바의 신상 파악을 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매일신문에게 답해야 했던 해프닝은 매일신문에게 처음 미네르바를 노출시킨 측이 "정보당국"이 아니라 바로 "청와대 관계자"의 나불거리는 입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는 "정보당국"의 보고 내지 경고를 무시하였다.
과연 이처럼 무식하고 무모한 짓이 대한민국에서 더구나 남북대결의 냉전이 계속되는 이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정상적인 통치행위에서는 정보라는 것이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최고 통치자라는 자가 그것도 스스로 눈과 귀를 틀어 막고 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었을까? 국가의 위기는 커녕 제 목숨 아까운지 조차 모른다는 말이었을까?
국민들은 이후 "정보당국"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게 된다. 미네르바 소동에는 "떡찰"과 "쉰동아"의 업치락 뒷치락만이 지루하게 계속될 뿐이다... 물론 모든 해결의 관건은 "정보당국"이 갖고 있다. 하지만 "정보당국"은 침묵해야 한다. 그것이 "정보당국"의 입장이며 임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말한 바와 같이 미네르바가 아고라에 흘렸던 고급정보는 한국은행도 재경부도 정보유통업자도 아니라, 당연히 "정보당국"의 손들이 수집했어야 할 정보들이다. 그래서 그런 정보를 가지고 누가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무슨 조작을 할 것인지, 그것이 파급하는 영향이 무엇이며, 만일 국가경제에 부정적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사전에 그 요소를 무력화시킬 것인지, 또 무리한 작전이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나 않을지, 이런 면밀한 분석들이 사전에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도곡동인가 어느 높은 빌딩에 무슨 문제연구소라는 게 있었다. "정보당국" 산하에서 쟁쟁한 경제학 무역학 박사들이 연구하는 곳이다. 그 연구소 같은 곳에서는 산업은행이 리먼의 함정에 빠져들 때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경제파탄이라는 위기 앞에서 국가안보를 위하여 그 국제 사기꾼들을 사전에 물리적으로라도 제거해버릴 그런 비밀의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까? 아니면 "정보당국"의 정상적인 활동이 외국계 "컨설턴트"로 스카우트(포섭)된 "정보당국" 출신 두뇌들이나 "청와대"의 정치적 압력으로 저지되어 잊혀져버린 것인지...
안타깝다.
사실 미네르바 소동에서 미네르바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 된 (진짜) K도 - 비록 50대라지만 이 바닥에서는 퇴직도 넘긴 원로급이겠지 - 미네르바 소동에 다시 끼여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고라에 글 쓰고 싶으면 필명 또 바꿔서 쓰면 되지 뭐... 미네르바 이름으로 상표 등록한 것도 아니잖아 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경제를 아는 것이니까.
그러나 미네르바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아마 "정보당국"이 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더 중요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침해가 될 것이다. 국가와 경제 안보의 전초병으로서 "정보당국"의 가장 중요한 보고와 경고의 기능이 최고 통치자의 오만과 아집 아래 묵살되고 마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모멸을 경험했을 것이다.
정부 내에서 조차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정보당국"에게 돌아온 것은 아닌 밤에 홍두깨... 최고 책임자의 경질. "정보국장"의 자리를 군기피자가 차지할 것이라니! 독재든 민주든 적어도 국가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변이 생길 수 있다니! "정보" 출신도 아니고 "군" 출신도 아닌 도대체 정보 INTELLIGENCE 의 아이 I 자도 모르는 자가, 오직 유일한 능력이라고는 구청장과 서울시장의 딱까리로서 건설 이권에 개입하여 조삼모사했던 경험... 군기피자가 "정보당국"에 들어와서 할 일이란 구조조정이란 핑계 아래 공무원 군기 잡는답시고 곱게 있는 사람들 모가지나 자르려 하겠지. 마치 구청 청소부 일용직 쫒아 내듯이. 외적에 대항하여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사찰이나 해먹는 견찰과 떡찰의 하수인이 되어야 하나. 제임스본드의 멋진 첩보와 작전이 아니라, 겨우 "청와대"의 스피커로서 백색선전이나 틀어줘야 하나.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눈이요 귀여야 할 "정보당국"에서 "정보 전문가"들은 모두 쫒겨나고, 위에 아부하는 소위 "행정가"들만 살아 남아서, 모든 대외정보는 일본과 미국에 의존하며 눈멀고 귀먼 대한민국은 서서히 잡아먹혀야만 하나.
안타깝다.
그러므로 "정보당국"의 관계자들이 진정 국가의 안전을 염려한다면, 바로 그 관계자들이 앞장서서, 어떠한 수단을 쓰든지 간에, 군기피자 이명박에 의한 군기피자 원세훈의 국가정보원 장악과 파괴 음모를 반드시 저지해야만 한다. 국민들은 김석기의 뒷 편에 원세훈이라는 문제가, 국가의 존망이 매달린 엄청난 문제가 가려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이 국민의 "정보당국"을 보호하여, 국민을 위한 "정보당국"이 미네르바처럼 또 제임스본드처럼 경제와 국방을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고라 / read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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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일요일
이명박의 숨겨진 가족사
놀라운 이명박 가족사
이명박의 출생이명박은 위 두 권의 책에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은 이충우, 3형제 중 막내였다. 할아버지의 땅뙈기는 두 형이 차지했고 아버지 혼자서 친구들과 함께 1935년에 총각으로 일본에 갔다. 자리 잡고 저축하여 한국에 나와 반야월 채씨 여인과 결혼을 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6남매를 낳았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유교풍을 이어받은 양반타입이었다. 남자 돌림자는 ‘상’자, 여자 돌림자는 ‘귀’자인데 나 혼자만 돌림자를 이탈했다. 명박이라 지은 것은 어머니 태몽꿈에 크고 밝은 달이 치마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
그러나 이는순 거짓이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일본 호적과 기타 자료에서 찾은 사실들을 보면 위 이명박이 밝힌 가족사는 맞는 게 하나도 없는 100% 거짓말입니다. 제가 찾아낸 진실은 이러합니다.
“아버지 이름은 원호적에 덕쇠(德釗)였고 33세에 일본에서 법원의 허락을 득해 충우로 바꾸었다. 덕쇠라는 이름은 떡쇠, 마당쇠, 돌쇠와 같은 계열의 이름으로 양반과는 거리가 멀다. 두 형들의 이름은 무특(무디기)과 경특(경디기)이다. 일본에는 이덕쇠 혼자 간 게 아니라 맏형 경특과 함께 오사카로 가서 이웃에서 살았으며 형제가 대가족을 이루면서 ‘스키야마’로 성을 바꾸어 씨족단위로 살았다.”
“어머니는 반야월 채씨가 아니라 인천 채씨다. 총각으로 일본에 갔다는 1935년에는 이미 3남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귀선, 상은, 상득. 현 국회부의장인 이상득이 이덕쇠의 3째 아이였는데 1935년생이다. 덕쇠는 6남매를 모두 일본에서 낳은 게 아니라 4번째인 ‘귀애’는 포항에 건너와 1938년에 낳았다. 이 때 3남매는 4, 6, 9살이었고, 학령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 채씨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뒷바라지를 했으면 포항에 계속 눌러 있었다는 것이 된다. 만일 그랬다면 이명박(1941)과 바로 밑의 여동생인 이말분(1945)을 일본에서 낳은 여인은 다른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돌림자를 이탈한 것은 명박이만이 아니라 말분까지다. 이를 속이기 위해 이명박은 위 두 책에 ‘말분’이를 ‘귀분’으로 썼다. 이복형제설이 끼어들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자서전과 어머니를 읽으면 명박과 말분은 서자 취급을 받았다. 학교도 못 가게 하고, 돈만 벌라 했으며 종국에는 둘만 남겨두고 모두가 상경했다. 둘은 배고픔에 못 이겨 무작정 상경했다. 이런 서자 취급을 받았으면서도 ‘어머니’라는 책을 써서 띄우는 것은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정략적으로 보인다.”
“채씨는 1964년 56세로 타계했다. 이 때 아버지 나이는 58세. 상은과 상득의 나이는 33세와 30세. 그런데 만 8년간 사망신고를 하지 않다가 채씨와 동거했던 맏사위가 1972년에 했다. 사망 장소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지금의 타워팰리스 격이다.”
이명박의 호적세탁
호적도 세탁했습니다. 이명박은 1974년에 멀쩡한 호적을 세탁하여 아버지 이덕쇠의 이름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습니다. 이명박은 호적이 유실될 우려가 있어 1974년에 재작성 하였다고 변명하지만 영일군에서 보관하는 호적이 수만 명에 이를 터인데 유독 이명박의 호적만 유실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한 똑같이 영일군에서 보관하는 호적인데 구호적은 유실우려가 있고, 신호적은 유실우려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어이가 없습니다. 또한 기록을 옮기려면 원래 것대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가에서 새로 만든 신호적에는 그의 부친이 33세까지 유지해온 ‘덕쇠’라는 이름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구호적에는 이덕쇠(德釗)가 이충우로 개명됐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있는데 신호적에는 이 개명사항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명사항은 호적에 필수 기록사항입니다. 구호적에는 이덕쇠(德釗)가 7남매중 위의 4남매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신호적에는 7남매 모두를 이충우가 낳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호적세탁 자체도 대통령 할 사람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호적세탁의 이유에 대해 호적이 유실될 우려가 있어서 재기록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더욱더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의 자서전 내용은 호적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거짓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이명박 가는 왜 호적세탁을 하여 이덕쇠리는 이름을 없애 버렸을까요? 일본 총독부가 양반과 상놈의 계급을 없애면서 양반가에만 유지돼 오던 호적을 하류계급에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불리던 노비들의 이름이 공식문서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똥이’는 ‘개동(介童)’이로, ‘이쁜이’는 이분(伊粉)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명박 가문에게는 ‘덕쇠(德釗)’라는 이름이 싫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명박의 자서전 내용은 호적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자서전을 거짓말로 써서야 되겠습니까?
이명박의 병역부정
‘신화는 없다’와 ‘어머니’에서 이명박은 자신의 병역사항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이후 나는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 어디 하나 정상적인 곳이 없는데다 결정적으로 기관지가 확장되어 있어 군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군대에서 쫓겨났다. … 치료를 받고 다시 오라는 말에 군생활을 하며 치료를 받고 싶다고 사정했지만 군의관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임마, 군대가 무슨 요양원인 줄 알아? …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청소를 하고, 청소 후 나온 쓰레기를 이태원 시장에서 지금의 잠수교 근처까지 리어카로 날라야 했는데 … 그렇게 2년을 보내자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쉬고 싶다. 단 하루라도 이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찾은 탈출구는 군대였다. … 그런데 남들 다 가는 군대에서조차 퇴자를 맞은 것이다. …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나를 덥석 끌어안고 울먹이셨다, 미안하다. 명박아. … 어릴 때 술지게미만 먹여 키워서 그런가 보다. 다 내 탓이다. … 어미가 잘못했다. 그 몸으로 새벽마다 리어카를 끌었다니 ….”위 인용된 글을 읽으면 이명박은 군대를 가고 싶어 했지만 술지게미만 먹고 거기에다 이태원에서 리어카를 끌었기 때문에 몸이 성한 곳 없이 만신창이가 됐으며, 군의관에게 군대 생활을 하면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며 졸랐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는 애절한 사연으로 쓴 것입니다.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은 물론 독자들의 동정심까지 이끌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황당한 거짓말입니다. 그에 대한 병무청 기록은 1961년 갑종, 1963년 입대 후 귀가(질병), 1964년 징병처분 미필, 1965년 병종(활동성 폐결핵 및 기관지 확장증).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명박은 대학 1학년시절인 1961년에 이미 갑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갑종 판정이란 몸이 최고(A급)로 건강하여 군대에서 대환영한다는 뜻입니다. 이명박이 위 자서전과 ‘어머니’ 책에서 표현한 것은 1961년에 A급 판정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고, 1964년과 65년 기록에 대해서도 함구했습니다. 오직 1963년도에 기관지확장증고도와 악성축농증 판정을 받아 귀가조치 받았다는 사항만 크게 연극적으로 부각시킨 것입니다.
위 두 개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이명박을 아주 훌륭한 사람이고 그가 했던 고생에 대해 동정을 합니다. 가난과 병마를 극복하고 신화를 이룩한 그를 한 없이 존경합니다. 거짓입니다.
이명박은 1961년에 갑종 판정을 받았고, 1963년 왕성한 선거운동을 통해 학생회장이 되었고, 1964년에는 박정희 정권을 뒤엎기 위한 학생운동을 하다가 건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피생활을 했고, ‘내란선동죄’로 만3개월간 감옥살이를 했고, 1965년에 여름, 현대에 들어가 술의 천하장사가 됐고, 40도를 웃도는 열대지역에서 콘크리트 가루를 마시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여 1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하는 신화를 이룩한 600만 달러의 슈퍼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술에 천하장사가 되었다는 것은 1965년 여름 정주영 회장이 강릉 경포대에서 208명의 신입사원과 함께
“저 달이 질 때까지 마시자”며 술 대작을 했는데 다 쓰러지고 이명박 혼자만 남아 술에 천하장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는 이명박 자서전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1963년과 1965년 봄에 있었던 2차례의 병역관계 신체검사에서만 당시에는 ‘죽는 병’으로 알려진 기관지확장증 중에서도 최고의 위험수위라는 ‘고도’ 판정을 받았고, ‘악성축농증’ 판정을 받았고 또 다른 죽을병인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비리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데도 그리고 병역비리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슈퍼맨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려서 술지게미만 먹고 자란데다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느라 몸이 걸레처럼 망가져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고 자신을 미화했습니다.
이명박이 병역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데 대한 논리는 2개입니다.
1)'국가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라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명박의 이런 주장에 의하면 대한민국에 병역비리는 단 한 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병무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는 단 1%의 부정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명박이 내세우는 유일한 해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의 자서전 제64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을 동원해 군에 안 가려고 하는 마당에, 나는 군에 가고 싶어도 병들어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병역비리를 저질렀는데 자기만 깨끗했다는 말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와 결탁하여 병역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해놓고, 자기를 향한 의혹에 대해서는 “국가는 절대로 병역비리를 저지를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말이 통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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